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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때 박세리처럼, 22세 임성재 코로나 극복 응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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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PGA 투어 50번째 도전 끝에 혼다 클래식에서 첫 우승을 거둔 임성재 선수. [AFP=연합뉴스]

PGA 투어 50번째 도전 끝에 혼다 클래식에서 첫 우승을 거둔 임성재 선수. [AFP=연합뉴스]

IMF 외환위기에 박세리가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우승으로 국민에 희망을 선사했듯,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힘들어하는 시기에 임성재(22)가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 혼다 클래식에서 첫 우승의 소식을 전했다. 임성재는 “한국 선수로서 한국인 모두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소식을 전하게 돼 기쁘다”며 “(코로나19)상황이 빨리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50번째 도전서 PGA투어 첫 우승 #코피 틀어막고 연습하는 악바리 #쇼트게임 코치 없어 곁눈질로 배워 #엄마 “사진 찍듯 정확한 기억력”

2일 끝난 혼다 클래식에서 임성재는 합계 6언더파로 매킨지 휴즈(캐나다·5언더파)를 1타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2018년 6월 US오픈을 통해 첫 PGA 투어 대회에 나선 뒤 꼭 50개 대회 만에 거둔, 49전 50기의 승리다. 한국 선수론 최경주, 양용은, 배상문, 노승열, 김시우, 강성훈에 이어 7번째 PGA 투어 우승이다. 상금 126만 달러(약 15억2000만원)를 받고 페덱스컵 포인트 2위, 다음 달 열릴 마스터스 출전권도 확보했다. 곧장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도 나선다. 임성재는 지난해 PGA 투어 신인상을 받았다. 우승 없는 신인왕이란 ‘옥에 티’를 이번 우승으로 없앴다.

임성재는 중요한 순간, 무대가 커질수록 수퍼맨 같은 힘을 낸다. 천재적인 관찰력도 가졌다. 6세 때 골프를 시작한 임성재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레이디 티에서 90타를 깨지 못했다. 그런데 시험 삼아 나간 초등학생 대회에서 80대 타수를 뛰어 넘어 77타를 쳤다.

고교생이던 2016년, 한국과 일본 투어 출전권을 동시에 딴 임성재는 목표가 버거웠는지, 시드 탈락의 위기에 처할 정도로 부진했다. 그럴 때마다 몸속의 슈퍼맨이 나왔다. 임성재는 “경기 출전 자격이 없어지는 마지막 경기에서 4등했고 다음 경기에 나갈 자격을 얻었다. 그다음 경기에선 또 10위 안에 들어 조건부 출전 자격을 따냈다. 그다음 더 큰 경기에서 11등을 해 전 경기 출전권을 땄다”고 했다.

2017년 말 미국 2부 투어 1차 퀄리파잉 스쿨에서도 2언더파로 하위권이던 그는 마지막 날 8언더파를 기록, 2차 대회에 나갔고 2차 대회에서도 탈락하는 듯하다가 마지막 날 8언더파를 쳤다. 3차 대회에서는 3라운드에 무려 60타를 쳤다.

이번 혼다 클래식에서도 마지막 홀 88야드를 남기고 친 웨지샷이 그린 옆 벙커에 들어가고 말았다. 보기를 한다면 연장전에 가야 할 상황. 임성재는 20m 벙커샷을 홀 60cm 옆에 붙여 파세이브에 성공하며 우승했다.

아버지 임지택 씨는 “성재는 승리욕이 대단하다. 어릴 때부터 흐르는 코피를 틀어막고 연습했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울거나 화를 내곤 했다. 그런 기를 꺾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관찰력도 임성재의 특별한 능력이다. 어머니 김미씨가 전한 아들의 어릴적 이야기다. “저 차는 어제 본 그 차 같네.” “아니요. 엄마 어제 그 차는 바퀴에 작은 빨간 점이 있었는데, 이 차는 그게 없어요.” 마치 사진을 찍어 놓은 것처럼 정확히 기억했다고 한다. 김미씨는 “글자를 모를 때도, 글자를 유심히 보고 받아쓰기 100점을 받아 왔다”고 했다. 임지택씨는 “어릴 때 해리 포터 영화를 한두 번 보고 나서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는 동작을 흉내 냈다. 화면을 보지 않는데도 해리 포터가 방향을 바꿀 때 동시에 바꾸고, 회전할 때 똑같이 돌더라”고 했다. 임성재는 쇼트게임 코치가 없다. PGA 투어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다른 선수들의 스윙을 보면서 혼자 배웠다고 한다.

임성재는 지난해 12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2020년 새해 큰 목표는 1승과 도쿄올림픽 출전”이라고 밝혔다. 그 첫 꿈을 3월에 이룬 셈이 됐다.

성호준·김지한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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