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엘 루비니
‘닥터 둠(Dr. Doom)’이 돌아왔다. 미국 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로 꼽히는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60)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가 여러 매체를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發)’ 글로벌 경제 위기를 강력하게 경고하고 나섰다. 세계 주식 시장이 대폭락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전망까지 내놨다.
2008년 금융위기 예측한 비관론자 #코로나발 최악 위기 아직 안 왔다 #현금 보유하거나 국채 투자하라 #각국 경기부양 정책 쓸 여력 없어 #중국 올해 성장률 2.5~4.0% 예고 #월가 ‘중국 4월 V자 회복’은 오판 #브렉시트 겹쳐 퍼펙트 스톰 올 것
미국 증시전문 인터넷 매체 마켓워치는 1일(현지 시간) 루비니 교수가 “코로나19 여파로 세계 증시의 시가총액이 올해 30~40% 사라질 것”이라며 “증시에서 돈을 빼 현금으로 보관하거나 안전한 국채에 투자하라”고 조언했다고 전했다. 루비니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정확하게 예측한 바 있다.
지난달 26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도 루비니 교수는 “올해 중국 성장률이 아무리 좋아도 4%, 최악의 경우 2.5%”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그는 “코로나19 여파로 중국 경제가 1분기에만 타격을 입고, 남은 2·3·4분기 내내 선방한다는 지나치게 낙관적 시각으로 분석해도 중국은 올해 4% 성장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루비니 교수가 제시한 중국 성장률 최대치인 4%는 1990년대 중국이 시장을 개방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지난해 중국 경제는 6.1% 성장했다. 중국 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지면 한국의 성장률도 0.5%포인트 하락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루비니 교수는 중국의 경제 둔화가 세계적인 금융 위기를 몰고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코로나19가 촉발한 세계 증권 시장 매도세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최악의 위기는 아직 안 왔다”고 경고했다. 그는 “투자자들은 코로나19의 파장이 얼마나 심각할지에 대해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며 금융시장이 여전히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루비니 교수에 따르면, 월가의 투자자는 네 가지 잘못된 판단 때문에 코로나19의 위험성을 낮게 보고 있다. 첫째, 코로나19의 확산이 중국에 국한될 것. 둘째, 코로나19 확산이 1분기가 끝나기 전 정점에 도달해 4월부터 수그러들 것. 셋째, 생산 설비가 정상화되면서 중국 성장률이 2분기 강하게 반등해 ‘브이(V)자’를 그릴 것. 넷째, 각국 정책 결정자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부양책을 쓸 것.
루비니 교수는 이 네 가지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는 팬더믹(pandemic·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이라는 사실이 분명해 지고 있다”며 “앞으로 얼마나 많은 국가가 심각한 확산을 경험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 경제가 ‘V자’ 형태로 빠르게 회복할 것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도 루비니 교수는 “터무니없다”며 일축했다. 그는 “코로나19의 확산이 3월 말 정점을 찍고 진정된다는 이상적인 시나리오에서도 1분기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2% 위축될 것”이라며 “연율로 따지면 8% 위축이고, 이를 상쇄하는 경기 회복은 어렵다”고 분석했다. 올 2~4분기 동안 중국 성장이 급반등해 올해 연간 성장률을 낙관적으로 봐도 4% 수준에 불과할 것이고, 현실적으로 2.5%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루비니 교수는 예상했다.
중국 성장률 급락이 세계 성장에 주는 충격은 막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글로벌 공급망이 심각하게 손상되며 순차적으로 국가별로 피해 사례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이 전 세계 총생산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2003년 4%에 불과했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와는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의 차원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루비니 교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등 각국 중앙은행들이 경기를 살리기 위해 경기부양에 나설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미 연준의 경우 금리를 인하한다 해도 1.5%포인트밖에 여지가 없고, 2분기에 금리를 인하해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이라며 “더군다나 코로나19 확산사태는 생산설비가 무너지고 물가를 상승시키는 공급 측면의 충격을 일으키는데, 통화정책으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특히 그는 코로나19 사태는 올해 세계 경제를 강타할 많은 부정적 충격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란 갈등, 대선을 앞둔 미국의 정치적 혼란, 미·중 무역 전쟁,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등 수많은 이슈가 합쳐져 경기 침체 리스크를 높이고 있다”며 “올해 세계 경제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여러 위험 요인들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엄청난 파괴력을 몰고 오는 현상)’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닥터 둠’ 별명이 붙은 루비니 교수에 대해 ‘매번 경기침체를 경고하다가, 몇 년에 한 번씩 운 좋게 얻어걸린다’는 비난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루비니 교수가 매번 비관론만 설파한 것은 아니다. 그는 2015년 “미 연준이 검토하는 금리 인상 조치의 파장이 크지 않을 것”이라며 세계 경제를 낙관한 바 있다. 연준 금리 인상 속도는 점진적이고, 유럽과 일본의 양적 완화 정책 덕분에 세계 유동성이 충분해 미 장기금리가 낮게 유지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봤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