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스·메르스 땐 급등···코로나만 금융위기 급 증시 쇼크,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돈의 흐름은 바이러스보다 빨랐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가 세계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진앙지 중국과 감염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한국은 물론 북미, 유럽까지. ‘코로나발(發)’ 돈의 탈출이 세계 증시를 휩쓸었다. 과거에도 바이러스 대유행은 세계 시장을 충격으로 몰아넣었을까.

1일 본지는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ㆍSARS)부터 2016년 지카 바이러스까지 주요 감염병이 휩쓸었을 때의 세계 주가 흐름을 분석했다. 전 세계 1600여 개 주요 기업의 주식 가치를 종합해 산출하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세계지수를 기준으로 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분석 결과 코로나19 이전 다른 바이러스 대유행과 세계 증시의 연관성은 그리 크지 않았다. 시장은 바이러스 전파의 위험성에 흔들리기보다는 그 당시 세계 거시경제 흐름에 따라 움직였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신종 플루) 대유행 시기엔 주가가 오히려 급등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사스가 확산하기 시작한 2003년 2월 이후 6개월간 세계 주가는 13.72% 뛰었다. 12개월 후 누적 상승률은 35.86%에 달했다. 2009년 북미ㆍ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번진 신종 플루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종 플루가 대유행하기 시작한 2009년 4월 이후 6개월 동안 증시는 34.80%, 12개월간 48.26% 상승하는 대호황을 누렸다. 2008년 금융위기를 딛고 세계 경제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던 때다.

2013년 메르스(MERSㆍ중동호흡기증후군),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2016년 지카 바이러스 유행 때도 같은 흐름을 보였다. 바이러스 확산 시점을 기준으로 1년간 MSCI 세계지수는 메르스 때 18.04% 올랐고 에볼라(6.45%), 지카(5.32%) 유행 때도 상승세였다.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등장과 확산은 과거 감염병 대유행 때와 확연히 다른 충격을 시장에 가져다줬다. 아시아·북미·유럽 등 지역도 가리지 않는다.

지난 한 주 사이에만 미국 다우존스산업지수는 12.4% 급락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7일 하루 다우지수가 1200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는데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수치”라며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공포가 투자자 사이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코로나19 확산지역이란 오명을 쓴 한국의 코스피는 2000선 아래로 미끄러졌다. 영국 언론 가디언은 “영국 FTSE 100지수는 2008년 12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내려왔다”며 “2011년 유럽 재정위기를 뛰어넘어 2008년 금융위기 수준의, 10년 만의 증시 충격”이라고 진단했다. 코로나19가 세계 경제와 산업에 미친 악영향이 2008년 금융위기에 버금간다는 얘기다.

주식시장은 외환·채권·현물시장까지 안전지대가 없다. 원유 가격(미국 텍사스산 원유 기준)은 배럴당 50달러를 넘어 40달러 선도 위태로운 상태다. 미국 국고채 금리는 연일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사스, 신종 플루, 메르스 등 이전 감염병 대유행 때 비교해 무엇이 다른 걸까.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①오랜 경기 침체에…약해질 대로 약해진 세계 경제 면역력

2008년 금융위기, 2011년 재정위기 등 이후 세계 경제는 ‘성장률 둔화’란 고질에 시달렸다. 오랜 경기 침체로 세계 경제 체력은 이미 바닥이다. 작은 위험 변수에도 쉽게 흔들리는 이유다. 그동안 세계 산업이 중국 경제에 과도하게 의존해온 점도 위기를 키웠다. 소비와 생산 중심지인 중국의 경제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마비 상태에 빠지자 금융시장이 즉각 반응했다.

미 경제전문지 마켓워치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최근 주가 폭락의 여러 원인 중 하나일 뿐”이라며 “경기 불황이 다시 닥칠 수 있다는 불안이 시장을 다시 지배하고 있다”고 짚었다.

②이미 많이 풀린 돈, 유례없는 초저금리…경제 대응 카드 ‘부족’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코로나19 대응 차원의 정책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선 아직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악화할 경우 금리 인하를 포함한 대규모 부양책을 Fed와 미 행정부에서 단행할 것이란 시장 예측이 나온다. 하지만 미국 기준금리(연 1.5~1.75%)는 이미 1%대 수준인 데다 미 국고채 10년물 금리 같은 시장 금리는 역대 최저치를 연일 경신하는 중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과 재정 당국은 금리 인하, 재정 확대 등 다양한 부양책을 지속해서 쏟아냈다. 돈이 시장에 이미 과도하게 풀린 데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더 내릴 금리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Fed와 트럼프 행정부에선 경기 대응책에 대한 내부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따라 산업 공급망에 문제가 생긴다면 대책을 시행한다 하더라도 제대로 효과를 보긴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2월 28일 중국 상하이 증권거래소. 코로나19가 세계 금융시장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로이터=연합뉴스]

2월 28일 중국 상하이 증권거래소. 코로나19가 세계 금융시장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로이터=연합뉴스]

③예방ㆍ치료제 ‘오리무중’ 과거 감염병과 다른 코로나19

이전 감염병과 다른 코로나19 확산 양상도 시장 불안을 키우는 요소다. 지카(중남미), 에볼라(서아프리카), 메르스(중동), 사스(중화권) 등 이전 감염병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기보다는 국지적인 양상을 주로 보였다. 신종 플루의 경우만 북미, 아시아 지역을 넘나들며 전 세계적으로 확산했다. 대신 타미플루 같은 신종 플루용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돼 경제ㆍ산업계의 공포감은 덜했다.

코로나19는 아직 확실한 예방법도 치료제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무시무시한 전파력도 문제다. 바이러스 확산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한 지난해 11월 이후 불과 4개월여 만에 인근 아시아 국가는 물론 중동(이란), 유럽(이탈리아) 지역에서 대유행하는 파괴력을 보였다.

국제금융센터는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다. 당초 예상보다 확산 통제가 쉽지 않아 상당 기간 증시 조정과 변동성 확대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