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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예상 깬 기준금리 동결…'4월 인하'는 코로나 장기화에 달려

중앙일보

입력

경제 활동이 사실상 중단됐다. 내수·수출할 것 없이 기업이 흔들린다. 코스피는 급락했고, 원·달러 환율은 급등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국내에 상륙한 지 약 한 달. 실물 경제에 미친 충격은 상당했다. 한국은행이 금리인하라는 처방전을 꺼내리란 예상이 우세했다. 채권시장 전문가도 80% 이상이 인하를 전망했다. 하지만 결론은 동결이었다.

예상 외 동결에 금융시장 흔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한은이 27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1.25%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기준금리를 1.5%에서 1.25%로 인하한 뒤 세 번째 동결이다. 7명의 위원 중 5명은 동결, 2명은 인하(소수의견)를 택했다. 의외의 결정에 시장은 적잖이 놀란 분위기다. 동결 소식이 들리자 코스피와 코스닥은 하락 전환했고, 국고채 금리는 급등했다.

한은은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 기준금리를 각각 0.5%포인트 낮췄다. 경제 충격이 이미 메르스 때를 넘어섰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동결 결정이 나온 것이다. 금리인하는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는 걸 막는 대응 조치 중 하나다. 이창목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금리인하와 추가경정예산이 맞물리면 어느 정도 경기 방어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봤는데 의외의 결정”이라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발병은 일부 지역에 집중됐지만, 경제적 악영향은 관광·항공업계부터 제조업까지 광범위하다”며 “경제 전반에 미치는 우려가 큰 만큼 통화정책이 역할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금리인하 대신 중기에 자금 지원 

한국은행 기준금리.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국은행 기준금리.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은도 성장세 둔화는 인정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날 금통위 직후 간담회에서 “국내 경제는 당초 예상과 유사한 흐름을 보여왔으나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발발과 확산으로 어려움 겪고 있다”며 “소비가 위축되고, 수출이 둔화했다”고 말했다. 이를 반영해 이날 한은은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1%로 낮춰잡았다. 지난해 11월 전망치(2.3%)보다 0.2%포인트 내렸다. 그런데도 금리 인하를 택하지 않은 건 코로나19가 3월 중 정점에 이르고 이후 진정될 것이란 전제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상황이 진전할지 아니면 좀 더 장기화할지 엄밀하게 살펴보겠다”면서도 “현시점에서는 취약 부문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미시적 정책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은은 이날 금리인하 대신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 5조원의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발표를 내놨다.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를 25조원에서 30조원으로 늘리는 방식이다. 금융중개지원대출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을 촉진하기 위해 한은이 연 0.5~0.75%의 낮은 금리로 은행에 자금을 빌려주는 제도다.

이번 자금은 도·소매, 음식·숙박, 여행, 여가, 운수업과 중국 수출입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 제조업체 등에 우선 지원할 계획이다. 5조원 중 4조원은 대구·경북을 비롯한 지방 소재 중소기업에 배정하기로 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 “현 상황에선 금리를 낮출 게 아니라 돈을 공급하는 게 맞는 방향”이라며 “금리는 경제 전반에 효과가 퍼지지만 지금은 생산업체나 자영업자 등에게 빠르게 자금을 지원하는 게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인하 여부는 코로나 장기화 보고 결정"

원/달러 환율.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원/달러 환율.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애초에 0.25%포인트 인하로는 경기 회복 불씨를 되살리긴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 총재는 “가계대출 증가세가 여전히 높고, 부동산 대책 이후에도 주택가격 안정 확신하지 못한 만큼 아직은 금융안정에도 유의할 필요 있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금리를 내려도 소비·투자 확대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풀린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이 총재는 “관광산업, 음식, 숙박, 도·소매업 등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데 1분기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며 “기준금리 인하 여부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것인지 좀 더 면밀하게 보면서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향후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은 열어둔 것이다.

코스피 지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코스피 지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하지만 이는 곧 장기화하지 않으면 금리인하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지난해) 두 차례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금융시장 원활히 파급됐다’, ‘임시 금통위까지 염두에 둘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와 같은 이 총재의 발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만약 한은의 예상대로 코로나19 사태가 3월 중 진정국면으로 돌아선다면 4월 9일로 예정된 다음 금통위에서도 또다시 동결 결정이 나올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2013년과 2014년 추경 편성 이후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사례에 대한 질문에도 이 총재는 “그때와 상황이 다르고,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답했다.

얼마 안 남은 금리인하 카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진행된 통화정책방향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진행된 통화정책방향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은으로서는 이미 역대 최저(1.25%)인 기준금리를 한차례 인하하면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 1.00% 시대가 열린다는 점이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주열 총재는 과거 여러차례“한국은 기축통화국(미국·유로존 등)보다 기준금리를 높게 유지해야 한다”며 0%대 금리에 대한 부담을 드러내왔다.

한은은 기준금리의 실효하한이 얼마인지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시장에선 0.75~1.00%로 추정한다. 한은 입장에선 남은 카드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금리 인하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날도 제로금리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지금 현재 기준금리가 1.25%인데 0%까지 인하하는 것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장원석·정용환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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