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언론자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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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레이건 과 고르바초프가 언론의 자유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다. 레이건 이 말했다. 『우리 미국의 기자들은 나의 정책에 관해 무엇이든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내 테이블을 꽝꽝 치는 친구도 있지요.』
이 말을 듣고만 있을 고르바초프가 아니었다. 그도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기자동무들도 내책상을 주먹으로 치며 나를 마음놓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왜 당신은 당신의 정책을 비판하는 다른 기자들을 혼내주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짓궂은 기자들이 만들어낸 농담이지만 그 속엔 따끔한 가시가 있다. 요즘 소련은 기자들의 취재권을 인정하는 새 신문법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그 법안은 취재의 자유뿐 아니라 발행의 자유, 외부로부터의 간섭배제등도 포함하고 있는가보다. 법과 현실이 어떻게 다른지는 어디 두고볼 일이다.
그러나 소련과 중국이 어떻게 다른지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소련은 글라스노스트로 불리는 개방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것에 반해 중국은 경제개방을 외치면서도 정보, 보도의 자유는 굳게 닫아 놓고 있다. 서로는 개방의 질이 다르다. 그 결과, 중국에선 천안문 시위로 나타났고 소련내부에선 옐친선풍으로 나타났다. 한쪽은 피를 보았고 다른 쪽에는 군중의 환호가 있었다.
최근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지금과 같은 첨단기술시대에는 어떤 사회에서도 독재정치는 더 이상 어렵다는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독재를 거부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저항도 있지만 그것을 더욱 부추기는 것은 바로 정보소통의 혁명을 가져온 전자문명이다.
지난여름 북경의 천안문시위사태는 바로 팩시혁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중국의 정보당국이 제 아무리 보도를 막아도 중국의 젊은이들은 시위사태를 팩시밀리를 통해 전세계에 전송했고 해외의 화교들은 그것을 역시 팩시밀리를 통해 중국의 대도시 친지들에게 역송했다.
아무리 넓고 넓은 중국대륙이지만 전자문명앞에선 좁은 땅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더구나 사회주의 국가에서 경제자유화 조치와 정보소통의 자유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경제의 자유화 조치는 필연적으로 언론의 자유가 선행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정보가 흐르지 않는 「개방」 은 있을 수 없다. 물론 그 점에서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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