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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 나도 세금 낸다고?…떨고 있는 암호화폐 투자자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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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4호 14면

2018년 1월, 당시 스물세 살이던 조모씨는 비트코인 979개를 갖고 있었다. 시세로 약 200억원 규모였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조씨는 “단돈 8만원으로 시작했다”고 밝혔다. 조씨는 비트코인에 투자한 지 불과 1년여 만에 시쳇말로 대박을 낸 것이다.

빗썸 803억 추징 계기 논의 활발 #기재부, 7월 세법 개정안에 담기로 #“복권처럼 기타소득으로 간주해야” #‘거래세 도입 후 양도세’ 주장도 #거래소·개인·해외거래 등 방식 다양 #매수·매도금액 파악 어려운 게 문제

당시엔 조씨 같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 수백, 수천만원을 투자해 수억, 수십억의 시세차익을 거둔 사례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비트코인에 투자해 많은 돈을 벌었지만, 이들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 투자자에게 세금을 걷을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르면 내년부턴 세금을 내야 할 것 같다. 기획재정부는 7월 말 공개 예정인 ‘2021년 세법 개정안’에 암호화폐 관련 과세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지난해 말 국세청이 암호화폐거래소인 빗썸에 803억원 규모의 세금을 추징하면서 암호화폐에 대한 과세 논의가 한창이다. 일각에선 시기상조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조세전문가들은 대체로 과세에 이견이 없다. 암호화폐를 ‘가상자산’으로 규정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도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소득세법상 암호화폐를 소득 범위 안에 추가하면 과세 근거는 마련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세금을 얼마나 매길 것인지 정하면 된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전문가마다 의견이 갈린다. 암호화폐로 얻은 소득에 양도소득세를 물릴 것인지, 일시적인 기타소득으로 보고 세금을 매길 것인지 등이다.

전문가들은 암호화폐를 사고팔아 얻은 차익에 대해 양도세를 물리는 게 합리적이라는 목소리를 낸다. 정승영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블록체인협회가 4일 주최한 ‘암호화폐 과세방안’ 심포지엄에서 “양도세 분리과세로 가는 게 과세 성격상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독일 등이 우리의 양도세와 비슷한 세금을 물리고 있다. 그런데, 현재 실정상 양도세를 물리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양도세는 자산을 양도하면서 발생한 차익에 대한 세금으로, 암호화폐에 양도세를 물리려면 매수·매도금액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암호화폐 거래 패턴으로는 이게 쉽지 않다. 김용민 블록체인협회 세제위원장은 “거래소뿐 아니라 개인 간 거래나 해외 거래 등 방식이 다양해 매수·매도금액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며 “매수·매도금액을 파악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기까지 적어도 3~4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양도세는 국제조세협약에 따라 거주지의 과세 원칙을 적용하는데, 거주자만 과세하고 비거주자는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그래서 낮은 수준의 거래세를 우선 도입한 후 양도세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 세제위원장은 “주식처럼 거래세를 도입한 후 매수·매도금액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면 그때 양도세로 전환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정부는 상장주식에는 0.25%, 비상장주식에는 0.5%(4월부터는 최고 0.45%)의 증권거래세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거래세도 한계는 있다.

#개인 간의 거래 등을 파악이 어려운 데다 세금이 낮은 수준이라고 해도 이를 피하기 위한 음성적 거래가 늘어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암호화폐 거래로 얻은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보고 과세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도 암호화폐 과세 관련 담당 조직을 양도·증여세 등을 총괄하는 재산세제과에서 기타소득을 관장하는 소득세제과로 바꿨다. 기타소득은 상금·사례금과 복권 당첨금처럼 일시적으로 발생한 소득으로, 세율이 꽤 높은 편이다.

로또 당첨금(5만원 초과~3억원 이하)에는 20%의 세금을 부과한다. 하지만 기타소득세 역시 거래세와 유사한 형태여서 거래세와 동일한 문제점을 갖는다. 투자자가 암호화폐 투자로 손실을 본다면 손실에다 적지 않은 세금까지 이중 부담을 지게 된다는 것도 문제다. 이 때문에 정부도 신중한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타소득세로 기울었다는 건 너무 앞서간 얘기”라며 “여러 부서와 충분한 논의를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등 관련 업계는 최근의 과세 논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암호화폐의 제도권 진입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세금 부과로 인한 투자자 이탈 등 시장 위축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투자 손익과 무관하게 적지 않은 세금을 물리면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암호화폐 투자자는 금융거래 등에 따른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관련 산업의 생태계를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연초 800만원 수준이던 비트코인은 이달 초 1000만원을 돌파하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 격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중앙정부의 관리를 받지 않는 비트코인이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금과 같은 일종의 안전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미·일·독·영·스위스 등 암호화폐 수익 나면 적극적 과세

미국 소득세 신고 양식(Form 1040)에 암호화폐(virtual currency) 취득·처분 등을 묻는 문항이 새로 생겼다. [중앙포토]

미국 소득세 신고 양식(Form 1040)에 암호화폐(virtual currency) 취득·처분 등을 묻는 문항이 새로 생겼다. [중앙포토]

세계 주요국은 이미 암호화폐에 대한 세금 부과를 시작했다. 특히 미국과 일본이 가장 적극적이다. 2014년 암호화폐 과세 가이드라인 초안을 내놨던 미국은 달러 등 법정화폐로 환전 가능한 암호화폐에만 세금을 매긴다. 암호화폐를 사고팔아 차익이 생겼다면 최고 39%의 세금을 내야 한다. 암호화폐를 통해 다른 자산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소득도 과세 대상이다. 올해부턴 소득 신고 양식도 바뀐다. 미국 국세청은 ‘2019년 암호화폐를 받고, 보내고, 교환해 금전적 이득을 봤느냐’는 질문 등 암호화폐 거래 관련 질문을 추가했다.

일본은 암호화폐로 얻은 차익의 절반가량을 세금으로 떼 간다. 암호화폐를 사고팔아 생긴 차익이 연간 20만엔(약 215만원)을 넘으면 차익 규모에 따라 15~55%(주민세 10% 포함)의 세율을 적용한다. 암호화폐를 법정화폐로 바꾸거나 물건을 사는 과정에서 생긴 차익에도 세금을 물린다. 암호화폐 채굴로 소득이 발생했을 때는 전기요금 등 채굴에 들어간 경비를 제외한 나머지 차익을 소득으로 간주한다. 유럽에선 독일·영국·스위스 등지가 암호화폐 과세에 적극적이다. 독일은 암호화폐 등장 초기 암호화폐를 ‘상품’으로 보고 부가가치세를 부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럽사법재판소가 암호화폐는 부가가치세 대상이 아니라고 판시한 이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자산’으로 보고 세금을 매긴다.

개인이 연간 600유로(약 77만원) 이상의 암호화폐를 사고팔면 차익에 대해 26.375%의 자본이득세 등을 부과하고 있다. 다만 암호화폐를 1년 이상 보유하면 세금을 일부 감면해준다. 영국은 암호화폐 거래 성격에 다라 세금을 부과하는데 금융거래 때는 소득세를, 차익을 목표로 한 투자 때는 자본이득세를 매긴다. 스위스는 암호화폐로 임금을 받거나 자영업자가 물건 값으로 암호화폐를 받을 때만 세금을 부과한다. 개인이 암호화폐를 사고팔아 얻은 차익에 대해선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다만 암호화폐가 재산세 합산 대상으로, 전체 암호화폐 보유액을 다른 자산과 합쳐 1년에 한 번 재산세를 납부해야 한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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