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얄타체제」는 끝났다|시라크 전 불 총리 르몽드에 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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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자크 시라크 파리시장(56·불 공화국연합당수·전 수상)이 20일 프랑스의 르몽드지에「얄타이후」란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기고해 화제가 되고있다.
지난 86년 3월 미테랑 대통령(사회당) 에 의해 수상으로 발탁돼 좌파 대통령에 우파 수상이 들어선「동거정부」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장본인이기도 한 시라크 전 수상은 이 기고 문에서『전후 유럽을 지배해온 얄타체제는 끝났다』고 지적하고,『전쟁억지를 위해 필요한 만큼의 핵은 계속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다음은 기고문의 요약.
『20세기의 끝에 선 우리유럽인은 전후체제에서 벗어나「얄타이후」를 준비할 수 있는 역사적 기회를 맞고 있다.
소련·폴란드·헝가리·동독…유럽의 모든 구석에서 얄타체제는 삐그덕 거리고 있으며 실로 우리는 비상한 전환국면에 들어섰다.
이러한 전환의 여파는 동구에 한정되지 않고 프랑스 운명과 단일 유럽의 장래 등 유럽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유럽평화라는 명분아래 독일과 중부유럽에 부자연스러운 운명을 강요하며 편법적으로 유지돼온 현재의 얄타체제가 영구히 지속될 수는 없다.
자유라는 고유한 가치에 비추어서도 우리는 지금 동구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청난 전환 앞에서 수동적일 수만은 없다. 이러한 전환을 도와주는 것 외에 우리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소련이나 일부 미국인들에 의해 제시되고 있는 유럽의 비핵지대화구상이나 대대적 군축제안은 위험하고 비현실적이다.
어떤 이는 이데올로기로서의 공산주의는 이미 패배했으며, 우리는 역사의 끝에 살고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오늘날 동구의 변화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고 누가 과연 장담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역사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의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다.
현재 소련과 동구국가에서 추진되고 있는 개혁정책이 모두 성공적인 것이라고 일단 동의하더라도 이들 나라의 경제구조가 현대화되고, 「경영자」가 양성되고, 진정한 가격과 경쟁의 체제가 확립되려면 소련지도층 스스로 시인하듯 적어도 한 세대는 걸러야한다.
얄타이후의 유럽을 생각한다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이 같은 난제들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지금까지 우리에게 평화를 유지시켜준 도구를 필요한 동안만큼은 계속 보유하자는 것이다.
전쟁억제에 필요한 만큼의 핵과 군사방위조약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둘째는 공동의 유럽을 건설하여 서유럽 반목만의 유럽통합이 안되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대서양에서 우랄산맥에 이르는 유럽 전체가 똑같은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은 절대적으로 성공할 필요가 있으며, 그래서 동과 서의 구별 없이 전체유럽의 시민이 똑같은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길을 하나하나 밟아나가야 한다.【파리=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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