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후라이까지 말라”로 뜬 '불시착' 북한병사 “외모 덕 좀 봤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랑의 불시착’에서 북한군 표치수 상사 역할을 연기한 양경원 배우. 최정동 기자

‘사랑의 불시착’에서 북한군 표치수 상사 역할을 연기한 양경원 배우. 최정동 기자

“에미나이, 후라이까지 말라.”
지난 16일 케이블 최고 시청률(21.7%)을 기록하며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사랑의 불시착’(박지은 극본, 이정효 연출)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대사 중 하나다. 재벌 사업가 윤세리(손예진)가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하면서 “나는 원래 하루 세끼 중 두끼는 고기를 먹는다”고 할 때 북한군인 표치수(양경원)가 “거짓 선전하지 말라”며 반박할 때 주로 사용됐다. 하지만 그를 포함한 리정혁(현빈) 중대장 휘하 5중대 대원들이 서울 땅을 밟게 되고 나서부터는 “그것이 참말이었구나” 놀라면서도 부정하고픈 마음이었을 게다. 부대원 4인방 중에서도 가장 맛깔나게 북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표치수 상사는 단번에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랑의 불시착’ 표치수 역 양경원 # 감칠맛 나는 북한 사투리로 인기

19일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평양술집에 양경원(39)이 들어서자 ‘표치수 동무’를 향한 환호성이 쏟아졌다. 북한 콘셉트로 꾸며 놓은 술집으로 테이블마다 ‘리정혁 중대장, 표치수 상사 등 북한 고위층들이 즐겨 마시는’ 진달래 맥주가 놓여 있던 터라 반응은 더욱 뜨거웠다. 2010년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로 데뷔해 10년 만에 전성기를 맞은 그는 “아직 적응이 잘 안 된다”면서도 이 같은 반응을 즐기는 듯했다. 방송 초기에는 북한 미화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정치색이 없는 로맨틱 코미디이고,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시청자들도 사택마을이나 부대원들이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라며 공감해주실 것이라 믿었다”고 했다.

“태닝, 흉터 빼고는 메이크업도 안해”

양경원은 진짜 북한군 같은 외모와 찰진 북한 사투리로 화제를 모았다. [사진 tvN]

양경원은 진짜 북한군 같은 외모와 찰진 북한 사투리로 화제를 모았다. [사진 tvN]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이하 간다) 소속인 그는 공연을 자주 보러 오던 캐스팅 디렉터의 추천으로 오디션을 봤다. 처음엔 보험사 직원 박수찬(임철수) 역과 홍보팀장 홍창식(고규필) 역까지 세 배역으로 오디션을 봤으나 2, 3차는 표치수 역할만 봤다고. “일단 외모가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작가님이 새로운 얼굴을 원했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야 더 북한 사람이라고 믿기가 수월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까무잡잡해 보이기 위해 태닝을 하고, 눈 옆의 흉터를 만든 것 빼고는 메이크업도 거의 안 했거든요. 원래 처음엔 흉터가 더 컸는데 작가님이 보시고는 인상도 곱지 않은데 너무 심하다면서 줄여주셨어요. 다행이죠.”

일찍이 외형을 갖춘 그는 표치수의 내면을 만들어가는 데 집중했다. 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겉으로는 강한 척, 가진 척, 무서운 척, 괜찮은 척하지만 사실은 나약한 사람이잖아요. ‘후라이’ ‘개나발’ 같은 말을 달고 사는 것도 자기가 믿고 있던 체제가 무너지면 그동안의 삶이 부정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흉터에 대한 전사도 만들었다. 본인은 “17 대 1로 싸우다 마지막에 방심하고 있던 순간 칼날을 피하지 못해 생긴 흉터”라고 맘먹었지만, 다른 부대원들은 “17명 중 한 명으로 기세가 밀리니 도망가다가 나뭇가지에 긁혀서 생긴 흉터”라고 놀렸다고.

서울 서교동 평양술집에 마련된 북한 소품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최정동 기자

서울 서교동 평양술집에 마련된 북한 소품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최정동 기자

북한 사투리를 입에 붙게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 “(북한어) 선생님이 배우마다 모든 대사를 다 녹음해서 주셨어요. 계속 들으면서 자기 역할에 맞게 뱉어 보면 너무 잘 맞더라고요. 촬영장에도 항상 상주해계시면서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자연스러워졌죠.” ‘귀때기’ 김영민까지 자칭 ‘F5’는 모바일 메신저 단체방을 만들어 틈날 때마다 함께 연습하기도 했다. “천사장 역의 홍우진 형도 간다 출신이고, 철수도 작품을 같이 많이 했어요. 다들 많이 챙겨주셔서 초반에 기댈 곳 없을 때 촬영 현장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죠.”

“너는 카메라를 무서워하지 않는구나”

'사랑의 불시착'에서 아련하게 옥수수를 먹는 모습. [사진 tvN]

'사랑의 불시착'에서 아련하게 옥수수를 먹는 모습. [사진 tvN]

평양술집에서 진달래 맥주 설명에 등장한 '표치수' 이름을 보고 환하게 웃고 있다. 최정동 기자

평양술집에서 진달래 맥주 설명에 등장한 '표치수' 이름을 보고 환하게 웃고 있다. 최정동 기자

아직 별도 소속사가 없는 그는 극단 간다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연기를 놀이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놀이터 같은 곳”이자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공간”이라 설명했다. “민준호 대표를 비롯해 다들 가치관이 참 올바르게 정립된 사람들이에요.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보니 외부에도 많이 열려 있고요. 진선규, 이희준 등 형님들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활약하면서도 다시 무대에 오르면서 귀감이 되어주기도 하고요. 덕분에 고여있지 않고 다들 흘러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들의 추천으로 오디션을 통해 영화 ‘로봇, 소리’(2016), 드라마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2017) 등 스크린과 TV에 진출하기 시작한 그는 “연기의 근간은 같지만 제한적인 무대와 달리 프레임 안에서 모든 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아스달 연대기’(2019)에서는 와한족 터대로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칭찬인지는 모르겠는데 ‘로봇, 소리’ 감독님께서 ‘너는 카메라를 무서워하지 않는구나’ 하시더라고요. 저는 제가 평범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가 봐요. ‘아스달 연대기’에서 와한족 모인 걸 보니 다들 비슷하게 생겼더라고요. 하하. 이렇게 꾸며 놓으면 와한족 같고, 저렇게 하면 북한사람 같고, 좋은 것 같아요.”

탭댄스 빠져 건축회사 사표 내고 입단  

'사랑의 불시착'에서 서울에 처음 방문한 북한군 5인방. 고층빌딩을 보고 놀라고 있다. [사진 tvN]

'사랑의 불시착'에서 서울에 처음 방문한 북한군 5인방. 고층빌딩을 보고 놀라고 있다. [사진 tvN]

국민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 설계 일을 하다 뒤늦게 연기를 시작한 양경원은 탭댄스부터 특공무술로 다져진 숨은 재주꾼이기도 하다. 중학교 때부터 라킹ㆍ팝핀 댄스 등을 즐겨 추던 그는 “댄스 동아리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했다. “김종국 형이 고등학교(안양 신성고) 선배신데 그 댄스 동아리가 엄청 유명했어요. 중3 담임 선생님께서 ‘너는 들어갈 성적이 안 된다’고 했는데도 열심히 공부해서 그 동아리 회장까지 했어요.” 학창시절 내내 댄스와 건축 중 고민하다 “그래도 안정적인 직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취업을 택했지만 극단에서 무료 탭댄스 강의를 듣다가 사표를 썼다. 다시 무대로 온 게 “결국 다시 만날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한다.

2018년 결혼한 아내 천은성(38)씨도 뮤지컬 배우이자 베테랑 탭 댄서다. 대본 연습부터 모니터링까지 꼼꼼히 챙겨주는 연기 동반자이기도 하다. 집에서도 곧잘 춤을 추는 두 사람은 “층간소음 걱정 없는 곳으로 이사 가서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춤추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동안 행사부터 연기강사까지안 해본 게 없는데 이제 연기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에요. 표치수는 정말 감사한 역할이지만 그 이미지로 굳어지지 않게 여러 장르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