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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키퍼서 4번타자 된 조한선 “특별출연? 독기 품고 연습했다”

중앙일보

입력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드림즈 4번 타자 임동규 역할을 맡은 조한선. [사진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드림즈 4번 타자 임동규 역할을 맡은 조한선. [사진 SBS]

“열 받긴 해도 팀 세탁은 죽어도 못하겠다.”
미우나 고우나 응원하는 팀을 쉽사리 바꾸진 못하는 야구팬들이 하는 얘기다. 이 말은 지난 14일 종영한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이신화 극본, 정동윤 연출)에도 등장했다. 4년 연속 꼴찌를 기록한 드림즈가 모기업 재송을 떠나 PF에 새롭게 둥지를 틀어도 드림즈를 응원하는 팬들은 그대로 따라올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드림즈는 그해 가을 보란 듯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팬들의 오랜 성원에 응답했고, ‘스토브리그’는 시청률 19.1%(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면서 “스포츠 드라마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오랜 불문율을 깨는 데 성공했다.

19.1%로 종영한 드라마 ‘스토브리그’ #미운 손가락 임동규 역할로 큰 사랑

그중에서도 4번 타자 임동규(조한선)는 특히 더 ‘아픈 손가락’이다. 동기들 가운데 가장 마지막 순서로 입단해 피나는 노력을 거듭한 결과 드림즈의 간판스타가 됐지만, 팀원들과 불화로 바이킹스로 드래프트 된 것도 모자라 원정 도박으로 72경기 출전 정지까지 먹고 다시 드림즈로 돌아온 ‘비운의 사나이’다. 가을에 펄펄 날아다니며 팀에 적잖은 승리를 안겨줬지만 안하무인 태도와 걸핏하면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으로 한동안 ‘욕받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극 중 임동규는 바이킹스로 트레이드됐다가 다시 드림즈로 돌아온다. [사진 SBS]

극 중 임동규는 바이킹스로 트레이드됐다가 다시 드림즈로 돌아온다. [사진 SBS]

하지만 배우 조한선(39)의 입장에서는 정반대였다. 2001년 모델로 데뷔해 시트콤 ‘논스톱3’(2002~2003)와 영화 ‘늑대의 유혹’(2004)에서 활약한 이후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던 그에게 ‘굴러들어온 복덩이’가 되어준 것. 서울 한남동에서 만난 조한선은 “작품 끝나고 이렇게 인터뷰 요청이 많았던 적이 없는데 얼떨떨하다”고 종영 소감을 밝혔다. 1~4회 대본을 받고 출연을 결정한 그는 “분량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2회까지만 나오는 역할이라 고민되긴 했다”며 “감독님과 작가님이 이후 재등장할 것이라고 말씀해주셔서 믿고 기다렸다. 단순한 스포츠 드라마가 아니라 한 팀을 만들기 위해 뒤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점도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한화 이글스 팬, 김태균 선수가 도와줘”

보다 매서운 인상을 만들기 위해 두 달 동안 7㎏을 감량한 그는 촬영이 없는 동안에도 훈련을 쉬지 않았다. LA 다저스의 코디 벨린저 같은 키가 크고 마른 선수들의 영상을 찾아보며 타격폼을 익혔고, 빙그레 시절부터 한화 이글스 팬이었던 그는 평소 친분이 있는 김태균 선수에게 자세를 물어보기도 했다. 드라마를 제작지원한 SK와이번스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가운데 하루 1~2시간은 실내 야구연습장에서 코치와 맞춰보며 연습에 매진했다. 야구에 미쳐 있는 캐릭터인 만큼 부담감이 컸던 탓이다.

조한선은 ’집에서 TV로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나오지 않아서 아쉬운 장면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잘되고 있어서 흐름을 꺾으면 안되겠다 싶어 더 연습에 매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 미스틱스토리]

조한선은 ’집에서 TV로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나오지 않아서 아쉬운 장면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잘되고 있어서 흐름을 꺾으면 안되겠다 싶어 더 연습에 매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 미스틱스토리]

“제가 골프도 안 쳐서 처음엔 허리 돌리기도 너무 힘들더라고요. 배트를 쥔 손은 자꾸 까지고, 멍들고. 그래도 최소한 제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 모습이 자연스러워야 시청자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전작 ‘빙의’(2019)도 4회 출연이고, ‘가면’(2015)도 특별출연이었는데 이번에도 이렇게 잊혀지면 안된다, 잘 나가는 드라마에 폐를 끼치면 안 된다 싶었죠. 3~9회는 저도 시청자 입장에서 봤는데 치욕스럽게 트레이드 당하는 걸 보면서 독기가 잔뜩 올라서 혼자 머리까지 바짝 잘랐어요. 심적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려면 외형도 변해야겠구나 싶었거든요.”

당초 특별출연으로 알려진 조한선이 10회에 재등장하자 팬들의 응원이 쏟아졌다. 드라마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까지 찾아와 욕하던 일부 팬들은 “임동규 욕해서 미안하다” “돌아와 줘서 고맙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캐릭터에 과몰입하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뷰 도중에도 “제가 11년 동안 드림즈에 있으면서”라고 입을 뗐다가도 “아니 제가 아니고, 임동규가”라고 몇 차례나 정정했던 그는 촬영장 분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아직도 임동규 같아…서로 극중 이름 불러”

드림즈로 돌아온 임동규를 환영하는 팀원들. [영상 스토브리그 갤러리]

드림즈로 돌아온 임동규를 환영하는 팀원들. [영상 스토브리그 갤러리]

“임동규가 드림즈로 돌아왔을 때 팀원들이 부르는 노래도 서영주(차엽)가 만들어준 거예요. 원래 대본에는 환영해준다, 축하해준다는 정도로 쓰여 있었는데 영주가 ‘동규 동규 임동규~’ 노래에 춤까지 만들어준 거죠. 워낙 분위기 메이커거든요. 그게 1시간짜리 연속 버전 영상까지 만들어질 줄 알았으면 춤을 좀 잘 출 걸 그랬어요. 아마 전지훈련 가서도 계속 놀릴 걸요?” 아직도 서로 극 중 이름으로 부르는 이들은 17일부터 3박 4일간 사이판으로 떠나는 포상휴가도 ‘전지훈련’이라 칭했다. 실제로도 공을 잘 던지는 강두기(하도권), 장진우(홍기준) 등이 글러브를 챙겨간다고 해서 본인도 배트를 가져가야 하나 고민된다고.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선수(골키퍼)로 활약한 그는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고 했다. 2000년 부천 SK 지명을 받을 만큼 유망주였지만 허리부상으로 축구를 그만두고 모델로 전향한 터였다. “운동선수라면 승부욕, 독기, 집요함 같은 게 없을 수가 없거든요. 임동규가 선수로서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때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합숙생활도 오래 했고, 선후배 규율도 분명했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연기하는 데도 도움이 됐겠죠. ‘열혈남아’(2006) 때는 촬영 한 달 전부터 벌교에 내려가서 살고 그랬는데 그 후엔 너무 치열하게 하지 못한 게 아닌가, 다시 돌아가면 더 열심히 파고들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2004년 ‘늑대의 유혹’을 통해 청춘스타 반열에 오른 조한선, 이청아, 강동원. [사진 쇼박스]

2004년 ‘늑대의 유혹’을 통해 청춘스타 반열에 오른 조한선, 이청아, 강동원. [사진 쇼박스]

‘늑대의 유혹’에 함께 출연한 강동원과 동갑인 그를 아직 미혼인 줄 아는 사람도 많지만 2010년 결혼해 1남 1녀를 둔 가장이다.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장으로서 더 책임감을 많이 느끼게 됐다”고. “잘생긴 배우들도 많고,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도 너무 많잖아요. 이제 저는 멋있게 보이고 싶어도 그러긴 힘들죠. 대세를 따라가기도 역부족이고. 뭔가 변화를 주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했는데 이번엔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연습에 매진한 게 더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뭔가를 더 보여줘야지 하면 과해지고, 그러다 보면 더 부자연스러워지잖아요.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게 이제 조금씩 몸으로 받아들여지게 됐나 봐요. 그동안 뚜렷한 색깔이 없다는 얘길 많이 들었는데 이런 색깔을 낼 수 있으면, 이제 다른 색깔도 낼 수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죠.”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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