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합의 위반" … 철회 요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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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기구(ILO).국제자유노련(ICFTU) 등 대표적인 노동 관련 국제기구와 한국의 민주노총이 갈등을 빚고 있다. 8월 29일~9월 1일 부산에서 열리는 ILO 아시아.태평양 총회 개막일에 맞춰 열릴 예정인 민주노총의 대규모 집회를 둘러싸고서다. 이번 총회는 지난해 10월 부산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거부해 올 8월로 연기된 것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총회에 참석하는 외국 귀빈들에게 한국의 노동 탄압 실상을 알리고, 한국 정부에 국제적인 압력을 행사해 달라는 취지"라고 집회 목적을 설명했다. 민주노총은 공무원노조와 KTX 비정규직, 포항지역 건설노조 사태를 한국 정부의 노동탄압 사례로 부각할 계획이다.

집회 계획을 알게 된 ILO와 ICFTU는 이달 초부터 수차례 민주노총에 집회를 취소할 것을 요청했다. 대신 워크숍을 통해 의견을 제시할 것을 요청했다. 집회 때문에 총회 진행과 운영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해서다.

민주노총은 20일 ICFTU 사무총장에게 집회 강행 의사를 통보했다. 민주노총의 조준호 위원장은 서한으로 "ICFTU의 우려를 이해한다. 평화적으로 할 테니 행사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ILO는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5월 제네바에서 아태총회 기간 중 어떠한 집회나 시위도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며 "집회 개최는 이 합의를 위반하는 것"이라며 집회 철회를 다시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ICFTU도 "민주노총의 집회 계획은 지난해 10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의 결의, 올해 5월 제네바에서 한 약속과 다르다"며 "집회는 한국노총의 지지도 받고 있지 못한 점 등을 감안해 계획 중인 집회를 속히 재검토해 달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10월 총회를 연기할 당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ICFTU 아시아.태평양 집행위원회에서 'ILO 아태총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었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도 이달 초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나 총회 기간 중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 위반으로 비칠 수 있다"며 집회를 열지 말도록 요청했다. 한국노총은 ICFTU에 21일 서한을 보내 민주노총의 집회가 철회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26일 경기도 과천 그레이스호텔에서 열린 'ILO 아태총회 준비기획단 실무협의회'에서도 참석자들은 민주노총에 집회 철회를 강하게 요구했다. 이날 협의회에는 노동부와 한국노총.민주노총.한국경영자총협회.부산시.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ILO와 ICFTU의 걱정은 이해하지만 집회는 의견을 개진하는 방법일 뿐 행사를 방해할 목적이 아니다"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ILO 총회는 한국의 노동계.재계.정부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행사"라며 "민주노총의 집회계획은 행사 주최자가 손님을 불러놓고 잔칫상을 훼손하는 것이어서 국제적인 망신을 살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기찬 기자

◆ 국제노동기구(I LO) 아시아.태평양 총회=4년마다 한 번씩 열리며, 부산총회는 14차 회의다. 이번 회의의 주제는 '아시아에서의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다. 이 회의는 그동안 ILO 아태사무소가 있는 태국 방콕에서 열렸으며, 태국 이외의 국가에서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총회에는 각국의 국가원수와 노동부 장관, 국제사용자기구(IOE).ILO.ICFTU 대표, 아시아개발은행.이슬람은행.이슬람회의기구.아랍리그.태평양포럼.아세안, 각국 노사정 대표 등 43개 아태지역 회원국 인사 6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 국제자유노련(ICFTU)=반공적 성격을 띤 노동조합의 국제조직. 미국의 산업별 조직회의와 영국의 노동조합회의가 주도해 1949년 결성했다. 우리나라는 창설 당시부터 가입했다. 최근 한국의 공무원노조와 건설노동자에 대한 권익보호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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