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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표현의 자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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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마음이 아프다. 민주당이 앞으로 더 잘하겠다.”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의 ‘민주당만 빼고’ 칼럼 사태 와중에 눈에 띈 건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사과였다. 기자가 주목한 건 그의 이력이다. 남 의원 역시 불법 논란을 무릅쓰고 특정인들에게 표를 주지 말자고 목소리 높였던 전력이 있어서다.

남 의원은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이던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부적격자들에 대한 낙천·낙선 운동을 벌였던 총선시민연대의 상임집행위원장 중 한 명이었다. 400여 개 시민단체의 집합체였던 총선연대는 부적격자 86명의 실명과 비위 사실을 낱낱이 공개했고 결과적으로 이 중 59명이 낙선했다.

논란이 없었을 리 없다. 법원은 이를 불법으로 규정했고, 청와대 결탁설 등의 음모론도 숱하게 제기됐다. 하지만 정치판에 염증을 느꼈던 많은 국민은 지지를 보냈다. 불법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적극적인 선거 참여 및 표현의 자유 신장 측면에서 의미 있는 사례로 지목되는 이유다. 어찌 보면 총선연대는 임 교수의 대선배였다.

그런데 총선연대의 주역 중 남 의원 이외에 임 교수 지지·격려 또는 민주당 비판 입장을 밝힌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미 상당수가 범여권에 투신했기 때문이라면 오해일까. 실제 박원순 서울시장을 필두로 이번 총선 출마를 선언한 하승창 전 청와대 사회혁신수석. 민주당 의원 출신의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김제남 청와대 기후환경비서관, 김혜정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 등이 줄줄이 범여권으로 향했다. 권력의 편이 되고 보니 표현의 자유보다 합법이라는 가치가 더 중요해진 걸까. 아니면 임 교수의 비판 대상이 ‘제 편’이라서일까. 한때 사회의 소금 노릇을 톡톡히 했던 시민운동가들이 정치권과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히는 바람에 스스로의 ‘표현의 자유’까지 잃은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박진석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