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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집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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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애란
한애란 기자 중앙일보 앤츠랩 팀장
한애란 금융팀장

한애란 금융팀장

‘실면적 721제곱피트 2780만 달러’, ‘실면적 1282제곱피트 4600만 달러’.

지난해 8월 홍콩에 출장 갔을 때다. 도심 한복판 부동산중개사무소 앞에 걸린 아파트 매매 광고를 보고 발을 멈췄다. 홍콩달러 환율 계산이 익숙지 않아서 그런가. 가격이 뭔가 이상했다.

계산해보니 전용면적 66㎡(20평) 소형 아파트 매매가격이 42억원, 전용면적 119㎡(36평) 중대형 아파트는 70억원이었다. 바닷가 대저택이 아닌, 사진으론 평범해 보이는 시내 고층 아파트 한 채 가격이 말이다.

“내가 한달에 미국 달러로 1만 달러(약 1180만원)를 버는 데도 집을 못 산다고요. 홍콩 집값은 완전히 미쳤어요.”

홍콩에서 탑승한 우버차량의 기사가 묻지도 않았는데 하소연을 했다. 3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그는 항구 변에 늘어선 고층 아파트 옆을 운전해 지나가며 ‘크레이지(crazy)’란 말을 되풀이했다.

홍콩 주재원 A씨는 “요즘 홍콩에선 결혼은 했는데, 각자 부모님 집에서 따로 사는 신혼부부들이 생겨난다”고 전했다. 신혼부부 형편으로는 같이 살 집을 마련할 수가 없어서라고 했다. 그럼 그 신혼부부는 언제쯤 자기 집을 마련해서 같이 살 수 있을까.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돌아온 답이 충격적이었다. “둘 중 한쪽의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집을 물려받으면 그때 같이 살 수 있게 되는 거죠.”

얼마 전 온라인 부동산카페에 올라온 글이 눈길을 끌었다. 카페에서 ‘투자고수’로 인정받는 회원 B가 과거에 했던 조언이 지금 보니 틀렸다는 내용이었다. 글쓴이는 “B는 30억원은 있어야 애들한테 10억원씩 주고 나머지로 노후준비한다 했는데, 10억원을 줘봤자 자녀는 서울 외곽으로 가야 할 뿐 아니라, 본인도 살던 집 팔고 서울을 떠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거엔 30억원쯤 자산을 쌓으면 남 부럽지 않은 노후준비가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이젠 서울 강남의 인기 아파트 한 채 살까 말까인 세상이 됐다는 한탄이었다.

글쓴이가 말하고자 한 결론은 무엇일까. 30억원으로는 어림없으니, 그 두배인 60억원 쯤을 모으자? 아니면 미친 집값의 시대엔 무자식이 상팔자다? 홍콩의 사례를 보면 아무래도 후자 쪽이 더 합리적인 결론이라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한애란 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