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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도 온도차, 방사선…최악 환경 시험으로 우주산업 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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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대형오븐처럼 생긴 지름 2m의 진공챔버에 인공위성 부품을 넣고 온도를 섭씨 220도까지 올린다. 이후 영하 80도까지 다시 온도를 내린다. 8~16t급 대형 부품은 크레인으로 옮겨 진동시험기 위에 고정한다. 1초에 200번에 달하는 진동을 견디는지 지켜보기 위해서다. 인공위성 한 대당 10만개 이상 들어가는 초소형 부품은 도금·접합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현미경으로 일일이 확인한다.

국내 최초 우주부품시험센터 개소 #부품시험 소요시간·비용 대폭 단축 #미국 NASA·유럽 ESA 규격 충족 #“우주부품 국산화 앞당길 것”

열진공챔버 등 궤도환경 시험장비, 진동시험기와 충격시험기 등 발사환경 시험장비, 전자파 환경 시험장비….

경남 진주시 우주부품시험센터 내 발사환경 시험장비. 5~200 헤르츠(hertz) 진동을 테스트할 수 있다. 송봉근 기자

경남 진주시 우주부품시험센터 내 발사환경 시험장비. 5~200 헤르츠(hertz) 진동을 테스트할 수 있다. 송봉근 기자

생소한 이름의 22종 30개 장비로 가득 찬 2층 건물(연면적 4149.37㎡, 약 1255평)이 지난 5일 경남 진주 상대동에서 문을 열었다. 민간업체를 위한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부품시험센터다. 우주발사체나 인공위성에 사용되는 부품이 발사 및 우주 환경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지를 테스트하기 위해 극한의 우주 환경을 지상으로 옮긴 실험실이다. 그동안 항우연과 KAIST에서 담당해온 민간기업의 우주 부품시험을 앞으로는 이곳에서 한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국내 우주산업 관련 기업의 시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한국항공우주연구원·진주시가 각각 105억원·10억원·16억원을 투입했고, 국비도 100억원이 지원됐다. 중앙일보 취재진이 지난 7일 현장을 찾았다.

3년 6개월 만에 구축된 이 우주부품시험센터에서는 미국 NASA와 유럽우주국(ESA)의 시험규격을 충족하는 시험을 할 수 있다. 우주 부품은 최악의 환경을 견뎌야 한다. 발사체 부품은 발사할 때 발생하는 강한 진동과 충격에 정상 작동해야 한다. 인공위성 부품의 경우 대기가 존재하지 않는 우주 환경과 매일 영하 150도와 영상 100도를 넘나드는 극한의 온도변화를 이겨내야 한다. 인공위성 1기에 사용되는 10만 개 이상의 소자급 부품 하나하나도 마찬가지다. 작은 부품 하나가 망가질 경우 수십~수백억 원에 달하는 인공위성 전체를 못 쓰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진주시에 들어선 우주부품시험센터 덕분에 앞으로 민간 우주항공업체는 부품 시험에 드는 소요시간과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됐다. 예컨대, 열진공시험의 경우 1회 시험 수수료가 기존 3300만원에서 2200만원으로 낮춰졌다. 궤도·발사·전자파환경 시험 등 대기시간은 기존 평균 45일에서 15일로 단축될 전망이다.

우주부품 시험센터 전경. 송봉근 기자

우주부품 시험센터 전경. 송봉근 기자

특히 소자급 우주 부품 국산화를 위한 기틀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전기·전자장치의 기본인 다이오드·트랜지스터·저항 등 소자급 부품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다. 해외에서 시험인증을 받을 경우 소요시간과 비용문제로 사실상 국산화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동희 KTL 원장은 “KTL의 시험평가 노하우와 기술력을 기반으로 국내 우주부품 중소·벤처기업의 기술개발과 국산화를 적극 지원할 것”이라며 “경남 항공국가산업단지 조성과 연계해 우주부품시험센터가 지역균형발전에 기여하고 국가 우주산업 발전을 적극 뒷받침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우주 개발 사업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고 있다. 과거 신냉전 시절 거대 국가자본을 바탕으로 한 군비경쟁의 일환이었던 우주개발은 오늘날 민간 기업의 신성장 동력으로 개념이 바뀌었다. 김경희 우주부품기술센터장은 “몇 년 전만 해도 불가능해 보였던 민간인 우주여행이 가까운 미래로 성큼 다가오며, 기업의 비즈니스적인 우주개발 접근이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277조원에 달하는 세계 우주산업 시장 규모는 2040년 1100조원 이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우주산업 규모는 수 조원 대로 미미하다. 과기정통부가 추산한 국내 관련 산업 규모는 2021년 약 3조7000억원 정도다.

이에 발맞춰 ‘항공우주산업 도시’ 육성에 나선 진주시는 지난해 혁신도시클러스터와 경남항공국가산업단지 등 2.17㎢가 항공우주부품·소재산업 강소연구개발특구로 지정되면서 새로운 성장엔진을 마련하게 됐다. 진주시는 경상대를 중심으로 KTL과 한국세라믹기술원·한국생산기술연구원·진주뿌리기술지원센터 등 공공연구기관의 협업으로 기술이전과 인력 양성을 본격화할 방침이다.

우주부품시험센터 바로 옆에는 국내 항공분야 제품을 시험·평가하는 항공전자기기술센터가 들어설 예정이어서 위성발사체의 추진체를 개발중인 에이엔에이치스트럭쳐(진주시 소재)와 시너지 효과가 예상된다. 이들 기관에서 15㎞ 정도 떨어진 사천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에서는 국산 위성발사체를 개발하고 있다.

류장수 한국우주기술진흥협회 회장은 “우주부품시험센터 개소로 국내에서 우주 부품에 대해 국제 기준을 충족시키는 우주환경 시험이 가능해지면서 우주 부품 국산화를 더욱 앞당길 수 있게 될 것”이라며 “향후 동남아 등 우주개발 신흥국 대상으로 우주환경 시험평가 사업을 확대하고, 시험센터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시험 인프라 구축 컨설팅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주=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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