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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젊으면 괜찮을까? 면역력 강해 독 되는 아이러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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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은 전 세계적으로 500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1918년 ‘스페인 독감’과 최근의 ‘신종플루’(H1N1), ‘조류인플루엔자’(H5N1)의 주요 사망 원인으로 간주된다. 계절성 독감이 어린이와 노인에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과 달리, 이런 전염병에서 사망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환자들은 면역반응이 뚜렷이 강한 젊은 성인이다.”

과면역 부작용 ‘사이토카인 폭풍’ #감염병 유행 때 대규모 사망 원인

2014년 2월 미국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데일리가 스크립스 연구소(TSRI) 연구팀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이다. 스페인 독감·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볼라 등 치사율 높은 전염병이 돌 때마다 대규모 사망의 원인을 설명하는 병리기전으로 언급됐던 ‘사이토카인 폭풍’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신종코로나감염증(코로나19) 때문이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진인탄 병원에서 13일 의료진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진인탄 병원에서 13일 의료진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젊고 건강하면 자연 치유”…‘사이토카인 폭풍’ 안심 못 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클리브 쿡슨 사이언스 에디터는 지난 8일 “신종 코로나의 초기 증상으로는 발열과 기침 등이 있다. 폐에 염증이 생기면 폐렴으로 이어진다”며 “가장 심한 경우 과면역반응이 나타나면서 다른 장기를 파괴하는 사이토카인 폭풍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썼다.

신종 코로나 환자 3명을 격리 치료한 경기 명지병원의 이왕준 이사장도 사태 초기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사이토카인 폭풍이 가장 우려스러운 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중국 의료진은 지난달 말 신종 코로나 초기 확진 환자 41명을 조사한 논문에서 일부 중환자에서 감염병 진행 속도가 빠르고 항바이러스제 등 치료가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이 '사이토카인 폭풍'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H1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현미경 사진. [사진 위키피디아]

H1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현미경 사진. [사진 위키피디아]

사이토카인은 병원균 등 외부 침입자가 체내로 들어왔을 때 신호전달에 관여하는 단백질 분자다. 염증반응을 유도하기도 하고 억제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이토카인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많은 염증이 생겨 폐를 망가뜨리고 신장 등 다른 장기에도 손상을 주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사이토카인 폭풍이라 부른다. 심할 경우 쇼크가 오기도 한다. 강한 면역체계 때문에 사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1918년 '스페인 독감' 환자를 격리 수용한 미국 캔자스주의 임시병동 모습. [중앙포토]

1918년 '스페인 독감' 환자를 격리 수용한 미국 캔자스주의 임시병동 모습. [중앙포토]

역대 감염병 대유행 때 관찰…젊은 층 사망 높인 것으로 추정 

면역 부작용 현상은 신종 전염병에서 종종 관찰된다.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5000만명 가운데 70% 이상은 25~35세의 건장한 젊은이였다.

미국 미시간대 암센터가 1993년 스페인 독감 당시 젊은 층의 사망이 다른 대유행 감염병보다 20배 이상 높았던 이유를 연구한 결과, 사이토카인 폭풍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2003년 중국에서 출현한 사스에서도 사이토카인 폭풍이 발견됐다.

2009년 미국에서 신종 인플루엔자A(H1N1)가 유행했을 때도 사망자 다수가 사이토카인 폭풍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외신에 따르면 2013년 중국과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 연구진은 2009년 당시 확진자 50명의 폐 조직 샘플에서 사이토카인 폭풍이 사망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당시 연구진은 “독감과 같은 호흡기 감염으로 면역체계가 과도한 양의 사이토카인을 생산하면 폐에 너무 많은 체액축적(fluid buildup)을 야기해 병을 악화할 수 있다. 조류인플루엔자(H5N1) 사례에서 발생됐고, 1918년 스페인 독감의 높은 사망률에 기여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돌보고 있는 중국 의료진. [중국 환구망 캡처]

신종 코로나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돌보고 있는 중국 의료진. [중국 환구망 캡처]

이런 이유로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일부 30대 환자의 상태가 갑자기 위중해지자 사이토카인 폭풍이 이슈화됐었다.

방지환 중앙임상태스크포스(TF) 팀장은 “사이토카인 폭풍은 모든 감염질환에서 일어날 수 있다”며 “감염증에서 몸이 망가지는 기전은 두 가지"라고 지적했다. 방 팀장은 "우선 바이러스가 증식돼 몸이 망가질 수 있다. 또 다른 경우는 우리 몸의 면역력이 바이러스와 싸우면서 바이러스만 잡아내는 정밀폭격이 아니라 융단폭격이 이뤄질 때로, 바이러스도 죽이지만 정상적인 조직도 죽여 몸이 손상되는 것"이라며 "면역기능은 양날의 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신종코로나 사태가 사이토카인 폭풍으로 번질 가능성은 아직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방 팀장은 “젊고 건강한 사람은 대부분 저절로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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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방 팀장은 “감염병의 파괴력은 중증도가 얼마나 높은 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걸리느냐의 두 가지로 결정된다”라며 “신종 코로나의 중증도는 사스와 메르스보다 떨어지고 인플루엔자보다 훨씬 높다. 전파력이 얼마나 높을지 모르지만, 전파력이 높으면 심각한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도 걸릴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사망환자도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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