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리구두 대신 팔찌…신데렐라 판박이 ‘라 체네렌톨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오래] 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18)

요즈음 살기 힘들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요? 입에 담기 곤란할 정도로 험악한 사건도 꾸준히 많이 발생하는것 같구요. ‘3포세대’니 ‘5포세대’, 심지어 ’7포세대’까지, 경제적인 문제가 복합된 사회 이슈로 확장하는 현상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상황이 복잡다단 할수록 단순미 또는 순수함에 더욱 끌리기도 하지요. 황금만능 사회일수록 역설적으로 인간미를 강조하고 순수함을 인정받아 신분 상승하는 ‘신데렐라’ 드라마에 열광하곤 한답니다. 최근에 지안이가 나온 ‘황금빛 내 인생’, 도란이로 대표되는 ‘하나뿐인 내편’이 40~50%를 넘는 시청률을 보인 것이 대표적인 사례겠네요.

1817년 로시니가 초연한 오페라인 ‘라 체네렌톨라’는 ‘재투성이’라는 뜻으로, 동화 ‘신데렐라’를 원작으로 3주만에 작곡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오페라에는 호박마차도 생쥐도 요정도 나오지 않고, 유리구두 대신 팔찌가 등장하지요. 다소 소재는 다르지만 내용은 영락없이 신데렐라 이야기입니다.

재혼한 엄마를 잃고 양아버지인 돈 마니피코 남작에게 구박받던 착한 안젤리나가 돈이나 신분보다 사랑을 선택하는 순수함으로 인해 마침내 돈 라미노 왕자의 왕자비가 된답니다. 막이 열리면 남작의 두 딸은 몸단장을 하며 서로 자랑질하고, 하녀 신세인 안젤리나는 집안일로 바쁩니다. 일하면서 이태리민요 ‘옛날에 어느 왕이’를 부르는데, 안젤리나는 오페라에서 자주 이 노래를 기도하듯 부른답니다. 가사를 보면 오페라의 전체 내용을 암시해 주는 듯 하지요.

마침 거지가 들어오는데, 두 딸은 냄새 난다고 야단이지만 착한 안젤리나는 그에게 슬쩍 먹을 것을 쥐어 주지요. 사실 이 거지는 일부러 변장을 하고 왕자비 간택에 나선 왕자의 스승이랍니다. 그는 안젤리나에게 선한 자에게 분명 좋을 일이 있을 거라 말하고 갑니다.

거지에게도 따뜻한 자비를 베푸는 안젤리나. [사진 Flickr]

거지에게도 따뜻한 자비를 베푸는 안젤리나. [사진 Flickr]

스승의 조언에 따라 진실한 신부를 찾기 위한 라미로 왕자의 작전이 시작됩니다. 시종과 신분을 바꾸어 변장하고 왕자비 후보를 구하러 나서지요. 시종으로 변장한 라미로 왕자는 스승이 진실된 처녀가 있다고 알려준 남작의 집을 먼저 방문합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왕자는 한 눈에 반하고 안젤리나의 심장도 쿵쾅거립니다.

참 청춘 남녀의 일이란! 모든 인연은 찰나의 순간에 결정지어지지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순수한 사랑은 원수도 신분도 잊게 만드는 마법 같은 것이잖아요. 메마른 가슴들을 촉촉히 감동에 젖게 만들구요.

뒤이어 신하들을 거느리고 등장한 시종 단디니는 아주 과장되게 왕자 흉내를 내며, 왕이 위독해 왕자비를 빨리 골라야 한다고 선언하지요. 그러자 남작의 두 딸은 호들갑을 떨며 가짜 왕자에게 매력을 어필하려 애쓰고, 왕자는 간택 무도회에 모든 처녀를 초청합니다. 안젤리나도 계부인 남작에게 무도회에 가고 싶다고 애원하나 거절당합니다. 왕자의 스승이 호적부를 가져와 가족 중 모든 딸이 무도회에 참석해야 한다고 하였지만, 계부는 셋째 딸은 죽었다며 끝내 그녀를 무도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했답니다. 결국 우울하게 혼자 남은 안젤리나에게 왕자의 스승이 나타나 예쁜 드레스와 팔찌를 주고 무도회장에 가도록 해줍니다. 마치 마술을 부린 듯 말이지요.

예쁜 드레스와 팔찌로 치장하고 나타난 기품있는 안젤리나. [사진 Flickr]

예쁜 드레스와 팔찌로 치장하고 나타난 기품있는 안젤리나. [사진 Flickr]

무도회장에 안젤리나가 베일을 쓰고 나타나자 왕자는 그녀의 음성을 듣고는 남작의 집에서 만난 여인임을 알고 반가워합니다. 베일을 벗자 그녀의 아름답고 품위 있는 모습에 모두들 감탄하는데, 두 딸은 안젤리나와 닮은 모습에 놀라지만 설마 그녀라고는 상상도 못한답니다.

기품 있는 미인의 출현으로 불안해하는 두 딸에게 남작은 왕자비 간택을 확신하며 자신에게 몰려들 아첨꾼과 청탁, 뇌물 등을 상상하며 노래합니다. 가사 내용은 정말 불량해, 지금 같으면 모두 ‘김영란법’에 걸릴만한 내용이에요. 허나 이미 라미로 왕자는 시종을 만나 두 딸이 겉만 번지르하다는 보고를 받았는걸요. 남작은 헛물을 켜고 있는 것이랍니다.

한편 시종이 왕자 행세를 하며 안젤리나에게 청혼을 하는데, 그녀는 왕자의 시종을 사랑하기에 왕자의 구혼이라도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숨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왕자는, 시종 신분의 자신을 사랑한다는 그녀의 고백을 듣고는 너무 기뻐 신분을 드러냅니다. 이제 진짜 왕자가 그녀에게 결혼하자고 청혼합니다. 허나 안젤리나는 왕자가 자신의 참 모습을 알지 못한다며, 차고 있던 팔찌 중 한 개를 줍니다. 자신을 찾아와 그 처지를 알고도 원한다면 그 때 청혼을 받아드리겠다며 달아나지요. 왕자는 ‘맹세코 그녀를 찾으리’라는 격정적인 아리아를 부르고는 마차를 타고 비 오는 밤에 안젤리나를 찾아가지요.

드디어 모든 진실이 밝혀졌으며, 왕자와 왕자비의 결혼식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남작과 두 딸은 그동안의 악행 때문에 두려움에 떨면서 안젤리나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왕자비는 떨고 있는 그들에게 말 못할 상처도 받았지만, 달콤한 마법의 힘으로 모두 사라졌다며 그들을 용서합니다. 남작과 두 딸의 손을 잡으니 모든 사람이 왕자비의 자비를 찬양하며 막이 내려집니다.

로시니의 ‘라 체네렌톨라’는 특히 앙상블이 화려하답니다. 오페라 부파(희극적인 오페라)의 특성상 주연 이외의 가수들이 중요한데, 그들의 5중창, 6중창은 물론 7중창까지 아주 흥겹습니다. 로시니 특유의 톡톡 튀고 빠른 템포의 경쾌한 음악이 오페라 전반을 흐르며 관객을 즐겁게 해주지요. 또 어찌 보면 뻔한 권선징악 스토리이지만, 해피엔딩이어서 우리는 더욱 행복하답니다.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