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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페이 싫어요, 돈을 주세요…재기발랄 피가로의 등장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15)

1816년에 로시니가 초연한 〈세비야의 이발사〉는 로시니의 대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에요. 이 대단한 오페라를 단 13일 만에 작곡했다니 믿기 어렵답니다. 하긴 곰국처럼 시간을 두고 우려내야 제맛인 것도 있지만, 아주 짧은 시간에 맛난 음식이 만들어지기도 하지요.

18세기 이후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자본주의가 발전하게 되고, ‘돈’이라는 권력이 등장합니다.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에는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풍자가 곳곳에 숨어, 아니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거실에서 아이들이 깔깔대며 장난치고, 주방에선 엄마의 떡볶이가 보글대는 듯 경쾌하고 재치 있는 서곡이 연주됩니다. 막이 오르면, 로지나의 창문을 향해 알마비바 백작이 세레나데를 부릅니다. 아무 반응이 없어 실망하고 있는 백작에게 이발사인 피가로가 나타나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하지요. 이집 저집 다니며 이발을 해주는 그는 집마다 숟가락이 몇 개인지를 알 정도랍니다.

의사 바르톨로가 로지나의 후견인인데 지참금을 많이 소유한 그녀에게 흑심을 품고 있답니다. 외출도 통제하고 있고요. 그러자 백작은 신분을 감춘 채 그녀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피가로에게 도와달라고 합니다. 그는 공짜로는 곤란하다고 하네요. 이런, 감히 백작이 말씀하시는데, 냉큼 바닥에 엎드리질 않고 돈을 달라니! 허나 시대가 바뀌었으니 할 수 없지요. 금화를 받아 든 피가로는 그녀의 집에 들어가는 꾀를 내놓습니다.

로지나는 방금 세레나데를 부른 남자를 생각하며 유명한 ‘방금 들린 그 목소리’를 부르는데, 아주 화려하고 아름다운 노래랍니다. “그 남자 정말 멋져! 바르톨로가 방해하더라도 내 남자로 만들어야지”라며 결연한 의지를 당차게 노래합니다. 로지나는 미리 그에게 전할 편지까지 써둔답니다.

로지나의 음악선생인 바질리오는 동네에 백작이 나타나 로지나를 탐내는 것 같으니 나쁜 소문을 퍼트려서 쫓아버리자고 바르톨로에게 권합니다. 이때 부르는 아리아 ‘비방이란’은 ‘로시니 크레센도’라는 기법을 활용하여 점차 빠른 템포와 멜로디를 반복하며 웅장해지는 노래랍니다. 그 내용도 정말 교묘해서 소름이 돋기도 하지요. 바르톨로는 비방보단 로지나와 빨리 결혼을 해버려야겠다고 합니다.

로지나에게 피가로가 나타나 밖에서 노래한 사람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촌 린도로라고 소개합니다. 그러자 로지나는 기뻐하며 미리 써둔 편지를 전해달라고 합니다. 군인으로 위장한 백작이 들어와 바르톨로의 집을 임시 주둔숙소로 사용하겠다며 허위 군령을 통지하는데, 바르톨로는 자신에겐 징발 의무가 면제된다는 증서를 내보입니다. 이때 진짜 군인들이 들어와 백작은 체포될 위험에 처합니다. 백작이 그의 신분을 슬쩍 밝혀 간신히 난관을 모면하는 등 어수선한 상태에서 1차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답니다.

진짜 군대가 나타나 1차 작전은 실패! [사진 Flickr]

진짜 군대가 나타나 1차 작전은 실패! [사진 Flickr]

백작이 음악강사로 변장하고 바르톨로 집에 왔네요. 바질리오가 아파서 대신 왔다고 둘러댑니다. 물론 피가로가 또 다른 꾀를 낸 것이지요. 바르톨로가 의심하자, 로지나의 편지를 주웠다고 보여주며 그의 신임을 얻게 됩니다. 로지나는 음악강사를 보고는 그가 린도로임을 알아채고, 백작은 피가로가 알려준 대로 밤에 다시 올 것이며, 같이 도망칠 계획임을 그녀에게 알려줍니다.

아뿔싸, 하필 아프다고 둘러댄 바질리오가 레슨을 하려고 나타났네요.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안색이 안 좋다, 오늘은 아프신 거다”라며 억지로 내보내려 합니다. 버티는 바질리오에게 백작이 돈을 쥐여주니, 마침내 눈치 빠른 그가 슬쩍 나간답니다. 이 과정을 보여주는 5중창 ‘큰일 났네, 바질리오다’는 아주 코믹한 장면으로 관객들은 배꼽을 잡게 되지요.

우여곡절 끝에 상황을 눈치챈 바르톨로에게 백작과 피가로가 쫓겨납니다. 바르톨로는 백작이 전해준 로지나의 편지를 내밀며 “그 녀석들이 너를 꼬여내어 알마비바백작에게 팔아먹으려 농락했다”며 로지나에게 자신과 결혼할 것을 재촉합니다. 피가로와 린도로에게 속은 것으로 오해한 그녀는 배신감에 바르톨로와 결혼하기로 합니다. 신난 그는 결혼계약서를 써줄 공증인을 부릅니다.

이런 줄도 모르고 밤에 되자 백작이 피가로와 사다리를 타고 로지나의 발코니로 들어옵니다. 로지나는 린도로(백작)에게 꼴보기도 싫다고 화를 내지요. 하지만, 곧 린도로가 백작임을 알게 된 로지나는 사랑을 쟁취했다는 행복감에 빠집니다. 게다가 평민인 자신이 백작 부인이 되는 거잖아요. 대박 났습니다.

오해 끝에 사랑을 쟁취한 로지나. [사진 Flickr]

오해 끝에 사랑을 쟁취한 로지나. [사진 Flickr]

이제 같이 탈출하려는데, 사다리가 없어졌네요. 바질리오는 공증인을 데리고 오고, 바르톨로의 신고로 경찰도 함께 오고 있답니다. 이 급박한 순간에 백작은 바질리오를 또 돈으로 매수하고, 피가로는 기지를 발휘하여 공증인 입회하에 백작과 로지나의 결혼을 공증하도록 해버렸답니다.

바르톨로는 어안이 벙벙합니다. 자신을 위해 결혼 공증인을 불렀는데, 엉뚱하게 백작의 결혼증명서에 서명을 하다니! 허나, 로지나의 지참금을 모두 가지라는 백작의 말에 바르톨로는 순순히 그들의 결혼을 인정해 줍니다. 그가 원했던 재산을 손에 넣었으니 목적 달성한 것이지요. 모두가 결혼을 축하하며 막이 내려집니다.

작곡가 로시니는 24세 때 이 오페라가 대성공하고 37세 때 〈윌리엄 텔〉을 마지막으로 오페라 작곡을 폐업하였는데요, 거듭된 오페라의 성공으로 큰 부자가 된 그는 파리 사교계에서 미식을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가 궁정소속 작곡가로서 풍족하지 못했던 것과 비교하면, 그는 자본주의의 큰 혜택을 입었다고 할 수 있겠죠?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를 꼭 한 번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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