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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도 30%” 복불복 키트···우한 주민도 못믿는 코로나 검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동네 의사는 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게 확실하다고 말하는데, 당국 검사에선 음성이라고 하네요."

4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의심 환자가 중국 우한 지역의 격리된 호텔에서 핵산 검사를 받고 있다. [EPA=연합뉴스]

4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의심 환자가 중국 우한 지역의 격리된 호텔에서 핵산 검사를 받고 있다. [EPA=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중국 우한(武漢)에 사는 두 아이의 엄마 주춘샤는 기침을 심하게 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정된 우한 내 병동에 들어가기 위해선 바이러스 양성 결과가 필요하다. 그녀는 꼼짝 없이 집에 되돌아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 우한 현지 주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검사에 대한 의심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의사가 맞다는데 검진 키트는 '음성'…불안한 주민들 

지난해 12월 발병해 중국 우한 지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는 11일까지 후베이(湖北)성에서만 누적 확진자가 3만 3300여명, 사망자는 1068명이 나왔다. 중국 내 확진자는 4만 명을 넘었다.

하지만 질병 전문가들은 중국 당국의 신종 코로나 감염자 수 통계가 축소돼 있다고 의심한다. 우한 지역에서만 수만 명이 감염됐을 거란 분석도 있다. 런던 임페리얼 콜리지 연구소는 실제 감염자 19명 중 1명 정도만 확진 검사를 받았을 것으로 예상했다.

7일 우한 국제회의센터에 긴급하게 마련된 팡창 병원에 진료를 받기 위한 환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중국일보망 캡처]

7일 우한 국제회의센터에 긴급하게 마련된 팡창 병원에 진료를 받기 위한 환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중국일보망 캡처]

우한 당서기 마궈창도 11일 언론 브리핑에서 당국의 확진 검사에 대한 의심을 드러냈다. 마궈창은 “음성 판정을 받은 이들도 재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진 방식, 키트 품질 따라 결과 달라져

현재 시행 중인 확진 검사는 코와 목에 면봉을 넣는 방식이다. 분비물에서 DNA 혹은 RNA를 채취해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파악하는 핵산 검사의 일종이다. 그러나 우한 지역의 대형 병원에 근무하는 한 의사는 "검사를 시행하는 의료진이 이 방식에 모두 능숙한 게 아니기 때문에 일부 검진 결과는 왜곡됐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검사 키트 품질도 문제다. 현재 중국 당국에서는 키트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여러 업체에 생산을 허가해주고 있다. 중국 내에서만 100개 가까운 기업이 신종 코로나 검사 키트를 개발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한 의료 기구 업체 관계자는 "긴급 상황이라서 시중에 유통 중인 제품 일부는 등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콜롬비아대학교 전염질병학과 이안 립킨 교수는 "제품마다 성능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앞서 왕천 중국공정원 부원장은 지난 5일 국영 중국중앙방송(CCTV) 인터뷰에서 "진단키트 검사의 정확성은 30~50%에 불과하다"고 말한 바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우한에서는 아직도 많은 환자가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우한에서는 아직도 많은 환자가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검진 방식에 따라 결과가 갈린 사례도 있다. WSJ는 뚜렷하게 질병 증세를 보임에도 바이러스 음성 판정을 받은 수십 명의 주민을 찾을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들 중 일부는 그 후 다른 방식으로 이뤄진 검사에서 양성 확진 판정을 받기도 했다.

57세 우한 주민 웡완진은 집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흉부 스캔을 찍어보니 심각한 폐 감염이 보였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검사에선 음성이 나왔다. 웡완진의 아내 후 리훠는 "의사가 이건 불가능한 결과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틀 후 재검사를 받아보니, 그제야 양성이 나왔다.

현지 의사들은 또 면봉 검사가 폐 아래쪽이 오염된 경우를 잡아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우한 중앙 병원의 펭즈융은 "검진할 때 폐 아래쪽까지 내려갈수록 양성 판정을 받을 확률이 높지만 키트 검사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펭즈융은 오직 30%의 환자만 상부 호흡기 검진에서 양성 반응이 나온다고 말했다.

바이러스 입증 못하면 입원 못 해…보조금도 배제  

WSJ가 직접 확인한 일부 검진 사례 중에서는 핵산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담당 의사가 폐 하부에서 감염을 발견해 뒤늦게 양성 진단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폐 상부보다 하부를 더 자주 감염시키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중국 국가보건위원회는 지난주 흉부스캔을 진단용으로 쓸 수 있다고 말했지만, 환자 수용 능력이 떨어지는 일선 병원에선 여전히 환자들에게 핵산 검사를 권하고 있다.

중국 신종 코로나 확진·사망자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중국 신종 코로나 확진·사망자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신종 코로나 국가별 확진·사망자 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신종 코로나 국가별 확진·사망자 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자신의 병을 '입증'하지 못한 환자들은 사실상 당국 관리에서 방치돼 있다. 증상이 있지만 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지 못한 환자들이 아픈 채로 집으로 돌아가 주변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지 못한 이들은 금전적 부담에도 노출된다. 남편이 폐 감염에도 불구하고 신종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은 왕홍얀씨는 가족들이 의료비로 1만 위안(169만원)을 지불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들에게 지원되는 정부 보조금도 받지 못한다.

왕씨는 "지금 우한에는 수많은 '가짜 음성' 환자들이 있다"고 말했다. 당국으로부터 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지 못했지만, 사실상 신종 코로나 환자로 의심되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왕씨는 "지금 병원에 가면 90%의 사람들이 나랑 비슷한 처지"라고 말했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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