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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봉테일, 친절한 선생님…“봉준호 자체가 장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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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003년 ‘살인의 추억’ 촬영 당시 봉준호 감독. ‘살인의 추억’은 봉 감독이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스릴러를 피해온 것이 내 동력이자 호흡 방식“이라며 그 출발점으로 꼽은 작품이다. [중앙포토]

2003년 ‘살인의 추억’ 촬영 당시 봉준호 감독. ‘살인의 추억’은 봉 감독이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스릴러를 피해온 것이 내 동력이자 호흡 방식“이라며 그 출발점으로 꼽은 작품이다. [중앙포토]

봉준호(51) 감독은 “하나의 장르가 됐다”고 평가받는 감독이다. 기존의 장르 규칙을 따르지 않고 한 작품 안에서 여러 장르를 뒤섞는 과감한 상상력을 발휘한다. “난 원래 좀 이상한 사람”(9일 아카데미 시상식 직후  인터뷰에서)이라며 그 스스로 인정하는 독창성이다. 여기에다 사회 현실에 대한 예리한 비판 의식,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란 별명에 걸맞은 치밀한 구성을 더해 ‘봉준호’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평단과 관객, 모두를 열광시키는 새로운 장르다.

아카데미 4관왕 봉준호 감독은 #중학생 시절부터 영화감독 꿈 꿔 #첫 장편 실패 뒤 괴물·옥자 신기록 #“영감 주는 아내에 감사” 수상 소감

중학교 때 ‘스크린’ ‘로드쇼’ 등 영화 잡지를 보며 영화감독을 꿈꿨다는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연세대 사회학과)해 ‘노란문’이라는 영화 동아리를 만들며 본격적으로 영화 인생에 발을 디뎠다. 이후 한국영화아카데미에 11기로 들어갔고, 1999년까지 충무로에서 조연출과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다. 장편 데뷔작은 블랙코미디 ‘플란다스의 개’(2000). 흥행은 실패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제작한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는 손실을 보고도 봉 감독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그와 손잡고 2003년 ‘살인의 추억’을 제작, 525만 관객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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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은 봉 감독이 지난해 칸영화제 직후 귀국 기자회견에서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스릴러를 피해온 것이 내 동력이자 호흡 방식”이라면서 그 출발점으로 꼽은 작품이다. 그와 ‘괴물’ ‘설국열차’ ‘기생충’ 등 네 편의 작품을 함께한 배우 송강호와 첫 호흡을 맞춘 작품이기도 하다. ‘살인의 추억’ 당시 촬영 현장 취재를 했던 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는 “봉 감독은 현장에서 카리스마 있는 스타일은 아니다. 친절하게 설명을 잘 해주는 선생님 같았다”고 회고했다.

이후 그의 이력은 신기록 행진이다. 2006년 ‘괴물’로 1301만 관객을 모으며 당시 역대 흥행 신기록을 달성했고, 2013년 다국적 프로젝트로 제작한 ‘설국열차’는 167개국에 판매돼 한국 영화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다. 2017년 ‘옥자’는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가 제작비 전액을 투자한 영화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4관왕을 이룬 ‘기생충’(2019)의 신기록 행진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는 예술가 집안으로도 유명하다. 2017년 작고한 그의 아버지는 우리나라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인 봉상균씨, 외할아버지는 월북 작가인 박태원(1909~1986)이다.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작가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등을 썼다. 형은 봉준수 서울대 영문과 교수, 누나는 연성대 패션산업과 교수인 봉지희씨다. 봉 감독이 9일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 무대에서 “언제나 많은 영감을 주는 아내에게 감사한다”며 언급한 아내는 그의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인 ‘지리멸렬’(1994)에 스태프로 참여한 정선영씨. 1995년 결혼했다. 2017년 YG케이플러스의 웹무비 ‘결혼식’을 연출한 봉효민 감독이 아들이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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