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숨은 주역 이미경 “난 봉준호 모든 게 좋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9일(현지시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무대에 올라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9일(현지시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무대에 올라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92년 아카데미 역사를 새로 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숨은 주역은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다. 기생충의 책임프로듀서(CP) 자격으로 9일(현지시간)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이 부회장은 ‘기생충’이 작품상 부문 수상작으로 호명되자 봉 감독, 배우들과 함께 무대 위에 올라 “저희의 꿈을 만들기 위해 항상 지원해 준 분들 덕분에 불가능한 꿈을 이루게 됐다”고 말했다. 통역 없이 영어로 소감을 밝힌 그는 “난 그(봉준호)의 모든 것이 좋다. 그의 웃음, 독특한 머리 스타일, 걸음걸이와 패션 모두 좋다”며 “그가 연출하는 모든 것들, 그중에서도 특히 그의 유머 감각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며 동생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 영화 글로벌 도전 지원해온 CJ #문화산업 투자 25년간 7조5000억 #“아낌없이 지원 이재현 회장에 감사” #아카데미 대비 500곳 홍보행사도

이 부회장과 이 회장은 영화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에서 25년 동안 CJ그룹의 영화사업을 진두지휘하며 한국 영화의 글로벌 도전을 물밑 지원해 왔다. 그동안 CJ가 문화산업에 투자한 누적 금액은 7조5000억원 규모. 그러면서 봉준호 감독과 자연스레 인연을 맺었다. 그의 영화 ‘마더’ ‘설국열차’ 그리고 ‘기생충’까지 모두 CJ가 투자 배급을 맡았다. 봉 감독이 지난해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대단한 모험, 많은 예술가를 지원해 준 CJ 식구에게 감사드린다”고 황금종려상 수상 소식을 밝힌 배경이다.

영화계에선 이 부회장 남매의 투자·지원이 없었다면 이번 쾌거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CJ는 ‘오스카 캠페인’이라고 불리는 ‘아카데미 수상을 위한 사전 홍보작업’에만 거액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아카데미상은 심사위원 10여 명이 최고상을 선정하는 여타 영화제와 달리 약 8400명의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이 때문에 할리우드 주요 스튜디오엔 수천만 달러의 예산으로 글로벌 인맥, 공격적인 프로모션 등을 총동원하는 전담팀이 조직 내에 따로 있다. 한국 영화론 처음 캠페인에 뛰어든 CJ는 500곳 이상의 외신 인터뷰, 여러 영화제 및 시사회, 관객과의 대화, 파티 등으로 아카데미 투표권을 가진 배우·감독·프로듀서 등 할리우드 회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나섰다.

아카데미가 추구해 온 ‘변화’도 작품상 수상의 또 다른 배경으로 꼽힌다. 각종 수상 예측 사이트에서 수상 가능성 1위로 꼽힌 작품은 영국 거장 샘 멘데스 감독의 제1차 세계대전 영화 ‘1917’이다. 그러나 ‘기생충’은 이를 뒤집었다.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은 최근 5년간 아카데미상이 추구해 온 다양성에 주목했다. 5년 전부터 백인과 남성 위주 시상식에 반기를 든 ‘#오스카는 너무 하얗다(OscarsSoWhite)’ 해시태그 저항이 거세지며 아카데미는 다양한 국적·인종의 AMPAS 회원을 확충해 개방화·다각화에 힘써 왔다. 감독 임권택·봉준호·박찬욱·홍형숙 등과 배우 최민식·송강호·이병헌·배두나 등도 이런 흐름 속에 회원이 됐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는 “아카데미가 흑인 배우, 여성 감독, 퀴어영화 등에 상을 주며 태생적으로 지녀온 장벽을 하나하나 해체해 가는 과정”이라며 “‘기생충’은 아카데미가 최후의 보루처럼 남겨 놨던 언어적 장벽을 넘어 미국 바깥 타인들의 이야기에 상을 줬다는 게 큰 의미”라고 설명했다.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기생충’이 일으킨 세계적 신드롬도 한몫했다. 빈부 양극화란 주제는 국경을 넘어 공감대를 얻었다. 봉 감독 자신의 표현대로 “자본주의의 심장 같은 나라” 북미 반응은 더욱 뜨거웠다.  지난해 10월 고작 3개 관에서 개봉했지만, 결정적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 방지,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놀이처럼 퍼졌다. 봉 감독의 이름에 황금종려상(Palm d’Or)을 합한 ‘봉도르’ 코미디와 비극·호러가 절묘하게 뒤섞여 “장르가 봉준호”란 말까지 나왔다. 봉 감독의 솔직한 유머도 호감을 더했다. 미국 NBC 토크쇼 ‘지미 팰런의 투나잇 쇼’에선 한국어 통역을 끼고도 청중을 웃겨 통역사 샤론 최의 통역 실력까지 화제가 됐다.

곽재민·나원정 기자 jmkwa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