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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 연설시간? 잡담 타임? 시간낭비하는 회의 어쩌나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최인녕의 사장은 처음이라(12)

회의 많은 A사, 회의는 부장님들과 이사님의 잡담시간? 사장님의 연설시간?

“이번 우리 회사 광고 모델은 정우성씨나 강하늘씨가 유력 후보예요… 고대리, 동백꽃 필 무렵 봤나? 강하늘씨 연기 너무 잘해.… “
“광고 모델료가 얼마나 되나요? 연예인은 좋겠네요. 우리 개발팀에 그 정도 예산이 지원되면 몇 명을 더 채용할 수 있는데… 고대리, 혹시 주변에 괜찮은 개발자 없어?
“네,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조부장님”

영업부 고대리는 고객 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유관 부서와 협업해서 진행해야 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거의 매일 회의로 오전 시간을 보낸다. 고대리는 오늘도 마케팅, 개발, 재무부서의 부서장들과 함께하는 회의로 하루를 시작한다.

고대리는 회의 시간을 1시간으로 정했지만, 각 부서장의 이런 저런 얘기로 이미 30분이 훌쩍 지난 후에 프로젝트 계획을 발표할 수 있었다.

“고대리, 이번 프로젝트로 매출이 더 증가할 수 있을 것 같아? 작년에 시작한 프로젝트에도 계속 투자비용이 필요하거든. 도대체 왜 그 프로젝트를 시작했는지 몰라. 내 지인 얘기로는 그 분야가 전망이 없다는데?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반대했었잖아. 고대리도 기억하지?”

“네…정이사님…”

고대리가 다니는 A사는 회의가 많기로 유명하다. 회의 시간을 1시간으로 정했지만, 각 부서장들의 이런 저런 얘기로 이미 30분이 훌쩍 지난 후에 프로젝트 계획을 발표할 수 있었다. [사진 pexels]

고대리가 다니는 A사는 회의가 많기로 유명하다. 회의 시간을 1시간으로 정했지만, 각 부서장들의 이런 저런 얘기로 이미 30분이 훌쩍 지난 후에 프로젝트 계획을 발표할 수 있었다. [사진 pexels]

경영지원본부 정이사의 발언을 시작으로 다른 부장들도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고대리는 오늘도 별 피드백이나 결과 없이 오전 내내 회의로 시간을 보냈다. A사의 소통 과정이 늘 그렇듯이, 사장 보고 전에 부서장들에게 보고해야 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런 회의로 업무가 밀리다 보니 실무를 하는 직원들은 잦은 야근을 한다. 고대리는 오늘도 야근하면서 내일 있을 사장님 회의 브리핑 자료를 준비했다.

다음날 사장이 참석한 회의에서 고대리는 프로젝트 계획을 설명했다. 사장은 각 부서장과 프로젝트 관련 간단한 질의응답을 마친 후, 열정에 관한 장황한 얘기를 시작했다.

“일할 때는 직원들의 열정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꼭 성공해야 한다는 단단한 각오와 의지가 필요합니다. 예전에 내가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안 좋은 환경이었지만…. 그래서 열정이 있는 사람에게 기회가 오는 것이고,…”

오늘도 오전 내내 회의를 하고 나온 고대리는 밀린 업무를 처리하면서 생각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도대체 왜 회의가 필요한 거지?’

회의 많은 B사, 모든 회의는 효율성과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한다. 애자일 조직문화를 실천하는 B사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업무 실행을 중요하게 여긴다. 협업을 해야 하는 의사 결정과 실행을 위해 B사도 A사 못지않게 많은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B사의 모든 회의실 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붙어 있다. Do not open this door without a meeting objective and an agenda. 신대리는 ‘회의 목표와 의제 없이 회의실 문조차 열지 말라’는 이 경고성 메시지를 한번 보고 회의실 문을 열었다.

“신대리, 고객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재구매 고객 대상 할인 프로그램을 마케팅과 협업하면 좋겠네요”
“마부장님,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그런데, 할인 프로그램을 위해서는 먼저 고객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사전에 메일로 회의 목표와 의제를 공유했듯이, 고객 데이터 관련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개발팀에 고객 행동 분석 자료가 있습니다. 고객 데이터 수집에 필요하다면 오후에 공유 폴더에 올려놓을게요.”
“조부장님 감사합니다. 내일까지 검토해서 피드백 드리겠습니다. 오늘 회의에서 나온 의견들을 정리해 보면…… 계획된 회의 시간이 다 되어서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고, 경영지원 관련 부분은 정이사님과 별도로 10분 정도 스탠딩 미팅을 했으면 합니다.”
“좋아요. 신대리, 회의 끝나고 바로 봅시다.”

직급과 관계에 의한 수직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목표와 의사결정 없이 반복되는 회의는 나쁜 조직의 증상임에 틀림없다. [사진 pxhere]

직급과 관계에 의한 수직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목표와 의사결정 없이 반복되는 회의는 나쁜 조직의 증상임에 틀림없다. [사진 pxhere]

회의 참석자들은 회의를 마친 후, 회의실 안쪽 문에 있는 문구를 보면서 회의실을 나갔다.
▶ 직급과 나이에 상관없이 상호 존중했나요?
▶ 계획된 시간 내에 끝났나요?
▶ 실행안을 정했나요?

B사는, 회의실 문구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효율성과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여긴다. B사에는 회의 규칙이 있다. 첫째, 회의 시작 최소 4시간 전에 참석자들에게 회의 목표와 의제를 미리 공유해서 사전에 회의 안건에 대한 의견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둘째, 가급적 3분 이내로 목표와 의제에 맞는 발언을 한다. 셋째, 계획된 회의 시간을 초과하여 회의가 필요할 경우 회의실 밖에 있는 스탠딩 테이블을 이용한다. 넷째, 회의를 통해 얻은 결과를 공유한다. 다섯째, 직급과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 존중하면서 자유롭게 의사 표현을 한다.

회의의 빈도수는 비슷하게 많은 A사와 B사,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나는 걸까?

A사 고대리의 회의 목표는 부서장들에게 ‘프로젝트 진행 여부에 관한 피드백’을 듣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피드백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장시간의 회의가 반복되었다. 회의 참석자들은 회의 목표를 잊고 불필요한 주변 얘기로 업무시간을 보낸 셈이다. 관계에 의한 커뮤니케이션, 즉 수직적인 의사소통 방식에 따라 고대리는 회의 목표에서 벗어나는, 직급 높은 부서장들의 발언을 통제할 수 없었다.

A사 사장 역시 회의의 본질에 집중하기보다는 회의 목표에서 벗어난 얘기로 회의를 진행했다. A사의 임원진이나 부서장들도 사장의 소통 방식대로, 회의 시간을 이용해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거나, 회의 목표와 맞지 않는 얘기를 하는 것이 ‘사장님도 하니까 괜찮다’고 여기게 된다. 결국, 사장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회사의 업무 처리 방식으로 귀결된다.

요즘 많은 회사가 B사처럼 신속하고 효율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위해 ‘애자일 조직’을 추구한다. ‘애자일 조직’이란 부서 간 경계를 허물고 팀원에게도 의사 결정권을 부여하며 신속하고 민첩한 방식으로 일하는 조직이다. B사 신대리는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부서장들과 목표 지향적 회의를 주도했다. 또한 부서장들도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 분위기에서 회의 주최자인 신대리를 존중하면서 회의에 임했다.

B사 회의실 문 앞뒤에 있는 문구가 B사의 회의 문화를 잘 보여주듯이, 직원들은 회의 규칙을 잘 숙지하고 실천하고 있다. 효율성, 뚜렷한 목표와 신속한 의사 결정을 지향하는 회사 문화에는 직급과 나이에 상관없는 자유로운 의사소통, 상호 존중하는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자리 잡고 있다.

‘회의는 나쁜 조직의 증상이다'. 경영학계의 대부, 피터 드러커의 명언이다. A사 사례처럼 직급과 관계에 의한 수직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목표와 의사결정 없이 반복되는 회의는 나쁜 조직의 증상임이 틀림없다.

흔히 ‘회의 많은’ 회사는 발전이 없다고 하지만, 적절한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한 회사는 발전한다. 중요한 것은 회의를 ‘얼마나 자주하는가’ 보다 ‘어떻게 하는가’다. 우리 회사는 어떻게 회의하고 어떤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면 어떨까?

INC 비즈니스 컨설팅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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