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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니, 탄핵 찬성한 첫 여당 상원의원…“역사에 기억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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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5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표결에서 공화당 의원 중 유일하게 탄핵 찬성표를 던진 롬니. [로이터=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표결에서 공화당 의원 중 유일하게 탄핵 찬성표를 던진 롬니.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상원 투표에서 반대 52 대 찬성 48표로 탄핵의 굴레를 벗었다. 상원의 공화당 소속 의원 숫자는 53. 공화당 의원 중 유일하게 탄핵에 찬성표를 던져 반란을 일으킨 인물이 밋 롬니(유타주)다.

미국 상원 트럼프 탄핵 결국 부결 #정통 공화당원, 독실한 모르몬교도 #“헌법 의무에 등돌리면 안 돼” 호소 #롬니, 트럼프 출마 때 “사기꾼” 비판 #트럼프, 롬니 장관 시키는 척하다 #다른 사람 임명해 복수…앙금 쌓여

탄핵 표결이 부결됐지만 롬니는 미국 정치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찬성표를 던진 여당 상원의원으로 기록됐다. 그는 트럼프와 ‘정치적 앙숙’이란 악연을 이어갔다.

롬니는 과거의 악연 때문에 트럼프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진 게 아니라고 강조해 왔다. 우크라이나 스캔들 등 트럼프가 국가원수로서의 자신의 지위를 남용해 정적(政敵)을 공격하려 했다는 의혹은 대통령으로서 탄핵당해야 마땅하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것이다.

롬니는 5일 표결 전 주어진 연설 기회에서도 “트럼프의 혐의는 매우 심각하다”며 “탄핵소추안에서 배심원 격인 우리 상원의원들이 헌법의 의무에 등을 돌린다면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해야 할 것이며, 양심의 가책에서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감정이 북받치는 듯 3~4초간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롬니의 반란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공화당 내에서 반역자 낙인이 찍혔다. 우선 트럼프가 비난에 나섰다. 트럼프는 5일 “롬니가 (나를 탄핵하기 위해 쏟았던) 에너지를 오바마와의 대결에 쏟았다면 (2012년) 대선에서 이겼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트윗을 올렸다. 트럼프는 “롬니는 민주당의 비밀병기”라고 주장하는 동영상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당내에선 롬니의 출당 주장까지 나온다. 트럼프의 아들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트위터에 “롬니는 당시(2012년) 민주당을 이기기엔 너무 약했기에 지금 민주당에 합류하고 있다”고 비꼬았다. 제명 여부에 대해 공화당 소속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롬니의 행동은) 실망스러웠다”면서도 “그래도 국민을 위해 해야 할 많은 일이 남아 있다”고 반대 뜻을 밝혔다.

WP “역사에 족적” … 공화 “롬니 출당을”

지난해 11월 청소년 흡연과 전자담배 규제 회의에서 발언하는 밋 롬니 상원의원. [UPI=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청소년 흡연과 전자담배 규제 회의에서 발언하는 밋 롬니 상원의원. [UPI=연합뉴스]

롬니는 반(反)트럼프 진영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워싱턴포스트(WP)는 “롬니 의원은 공화당에서 외로운 목소리를 냄으로써 역사에 자신의 발자국을 뚜렷이 남겼다”고 평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롬니에 대해 “고독한 남자”라며 “한때 공화당과 자신을 동일시했던 롬니가 당에 반기를 들고 나섰고, 역사에 길이 기억될 것”이라고 전했다.

롬니는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적수로 나섰던 인물이다. 독실한 모르몬교도이고 가정에 충실하며 보수적 신념에 투철한 정통 공화당원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워 당 경선에서 후보로 선출됐다. 파괴력은 크지 않지만 ‘점잖은 보수’로서 모든 특징을 갖춘 후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그가 이례적으로 원색적 표현을 동원해 비난했던 인물이 트럼프다. 2016년 대선에 트럼프가 후보로 출마하자 롬니는 “사기꾼”이라며 “트럼프는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해 대선에서 롬니는 “내 아내의 이름을 투표용지에 적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차마 민주당 후보를 찍을 순 없고, 그렇다고 트럼프에게 한 표를 주기도 싫으니 의도적으로 사표(死票)를 만들었다는 의미였다.

지난해 9월에는 롬니가 2011년 만든 트위터 가명 계정을 이용해 때때로 트럼프 대통령을 공격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트럼프도 그동안 롬니를 향해 ‘거만한 멍청이’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롬니의 2012년 대선 실패와 4년 후 자신의 대선 성공을 비교하는 동영상을 올려 조롱했다.

트럼프는 롬니가 2018년 11월 상원의원 도전에 나서자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히고 롬니 역시 “감사한다”고 말해 한때 해빙 무드가 조성되는가 했지만, 이후 껄끄러운 관계를 피하진 못했다. 트럼프는 대통령 당선 후 롬니를 두 차례 면담해 그가 국무장관 1순위로 떠올랐지만, 그 자리는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렉스 틸러슨이 낙점을 받았다. 미 언론에선 트럼프가 롬니를 띄운 뒤 좌초시키는 복수극을 펼친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미국 상원이 탄핵 심판에서 ‘무죄’ 판단을 내리며 지난해 9월 민주당 주도로 하원이 탄핵 조사를 시작한 지 4개월여 만에 탄핵 정국이 막을 내리게 됐다. 면죄부를 받은 트럼프는 탄핵이란 짐을 벗고 대통령 재선 가도를 달릴 수 있게 됐다. 민주당은 무리한 탄핵 조사를 추진한 것 아니냐는 의혹 속에 역풍을 맞을 위기에 놓였다.

트럼프 “미국의 승리 … 내일 대국민 성명”

트럼프는 탄핵안 부결이 확정된 뒤 트위터에서 “탄핵 사기극에 대한 우리나라의 승리”라고 규정하고 “내일 낮 12시(한국시간 7일 오전 2시) 백악관에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백악관은 성명을 내고 민주당의 탄핵 추진이 “마녀사냥”이었으며 “엉터리 탄핵 시도는 완전한 입증과 무죄로 끝났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탄핵 시도가 2016년 대선 결과를 뒤집고 2020년 대선에 개입하기 위한 시도였다고 비난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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