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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에 막힌 중국몽…글로벌 반중 정서가 치명타

중앙일보

입력

반중(Anti-China) 정서가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빨리, 더 멀리 확산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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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뉴욕타임스(NYT)와 로이터통신의 기사 제목이다. NYT에 따르면 프랑스 지역 신문 ‘르 쿠리에 피가로’의 최근 1면 머리기사 제목은 ‘황색경보(Yellow Alert)’다. 중국인을 노란색에 빗댄 인종차별적 표현이다. 로이터 통신은 “캐나다 토론토의 공공기관과 학교들에 중국계 캐나다인을 차별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고 전한다. 두 나라 모두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환자가 나온 곳이다.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반중(反中) 감정도 커지고 있다.

한 중국인이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라는 프랑스어 메시지와 함께 이 글을 든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트위터 캡처]

한 중국인이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라는 프랑스어 메시지와 함께 이 글을 든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트위터 캡처]

감정은 중국인을 넘어 아시아인에 대한 적대감으로 번지는 중이다. 영국 맨체스터대 대학원생 샘 판은 가디언에 쓴 기고문에서 “내가 버스 좌석에 앉자 바로 옆 좌석에 앉아있던 남성은 허둥지둥 짐을 챙기더니 일어서버렸다”며 “대학 도서관에 있던 친구도 책상에 앉자마자, 맞은편에 앉아있던 사람이 가방을 싸서 사라졌다”는 경험을 털어놨다. 프랑스 르몽드는 “동양인이 길에서 코를 풀고 있다고 신고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에선 중국인과 아시아인들이 SNS에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JeNeSuisPasUnVirus)’라는 해시태그를 사진과 함께 올리고 있다.

서구(西歐)사회의 동양에 대한 공포는 연원이 있다.

19세기 중국 이민자들을 문어발에 비유한 호주의 한 시사 만평 삽화.[사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도서관]

19세기 중국 이민자들을 문어발에 비유한 호주의 한 시사 만평 삽화.[사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도서관]

1700년 전 동아시아의 흉노(匈奴)족이 서진(西進)해 유럽을 뒤흔든다. 서구인이 ‘훈족’으로 불렀던 이들은 5세기 전반 오늘날 프랑스 중부까지 진출하며 로마제국을 위협하고, 게르만족을 ‘대이동’ 시킨다. 훈족의 왕 아틸라는 유럽의 각종 예술 작품에 끊임없이 등장한다. 800년 뒤 러시아, 동유럽을 넘어 이탈리아까지 들어선 몽골도 유럽엔 큰 충격이었다.

이 두 번의 사건은 19세기 말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주창한 ‘황화론(黃禍論·Yellow Peril)’의 기원이 됐다. 빌헬름 2세는 “황인종이 유럽 문명을 위협하므로 세계 활동무대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속내는 청일전쟁 승리로 급부상한 일본을 견제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럼에도 훈족과 몽골로 인해 생긴 동양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은 서구사회에 황화론을 각인시켰고, 이후에도 아시아가 부상할 때마다 여러 형태로 변주돼 나타났다.

21세기 들어 황화론이 다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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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은 중국이다. 2010년대 들어 중국이 미국과 더불어 ‘G2’로 자리 잡았다. 중국 패권에 대한 서양의 두려움이 커졌다.

중국이 시진핑 국가 주석 집권 후 '세계 최강의 꿈'을 대놓고 드러내면서 우려는 더 커졌다. 시 주석은 2013년 ‘위대한 중화를 부흥시킨다’는 중국몽(中國夢)을 선언하고 그 수단으로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 해상 실크로드) 건설에 나섰다. 일대일로는 유럽으로 발을 뻗고 있다. 지난해 3월 중국과 이탈리아가 이탈리아 트리에스테항과 제노바항 개발에 협력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하자 유럽 언론은 이탈리아를 중국의 ‘트로이 목마’로까지 비유하며 우려했다. 그럼에도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유럽 국가들은 중국의 현금과 인프라 투자 공세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폴란드·헝가리·그리스·포르투갈 등이 일대일로에 참여 의사를 밝혔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주도국가들은 이런 중국의 행보를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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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을 느끼는 미국은 중국 경계론의 선봉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중국은 일자리를 훔치고, 기술을 빼내기 위해 스파이 짓을 하는 적”이라며 중국 공포증인 ‘시노포비아(sinophobia)’를 확산시켰다. 집권한 뒤에도 중국에 무역 불균형 문제를 제기하며 관세를 부과하고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의 미국 활동을 막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 나타난 서구의 반중 정서를 코로나바이러스 때문만으로 봐선 안 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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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는 “중국이 세계의 경제·군사 강국으로 부상함에 따라 서구 경쟁국에서 불안감을 느꼈고, 이것이 코로나바이러스의 등장과 함께 중국인에 대한 편견으로까지 연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반중 정서는 아시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베트남의 한 네일샵에 붙여진 중국인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안내문.[로이터=연합뉴스]

베트남의 한 네일샵에 붙여진 중국인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안내문.[로이터=연합뉴스]

NYT에 따르면 일본에선 해시태그 #중국인일본출입금지(#ChineseDon’tComeToJapan)가 트위터에서 유행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수만 명의 주민이 중국인의 입국을 금지해 달라는 탄원서에 서명했다. 한국에서도 국민청원 신청이 수십만 명을 넘기도 했다. 베트남과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선 중국 고객과 관광객을 출입 금지한다는 팻말이 여러 매장에 나붙었다.

단순히 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만은 아닌 듯 보인다.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에선 남중국해 영유권을 두고 중국과 대립 중이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동남아시아 관리와 학자 등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약 60%가 중국을 불신한다고 답했다”며 “40%는 중국이 동남아시아를 자신의 영향 하에 두려고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실제 그런 우려가 등장하고 있다. 크리스티 고벨라 하와이대 교수는 NYT에 " 중국의 주변국들은 중국에 대한 광범위한 정치적, 경제적 긴장감과 불안감을 갖고 있다"며 "이런 정서는 코로나바이러스 전염 공포로 인해 더욱 강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만으로 주변국에서 중국을 두려워하거나 꺼리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중국은 2017년 한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를 배치하자 경제적 보복 조치를 가했다. 이후 한국 사회에선 반중 감정이 커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중국인의 입국을 금지해 달라는 청원에는 2월 1일 현재 60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하지만 '혐중(嫌中)'은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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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나라에 갑자기 닥친 불행은 안타깝게 여겨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고통받는 중국 국민은 죄가 없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중국 또는 중국인 전체를 비난한다면 아시아인을 '잠재적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로 취급하는 일부 유럽 사람들의 행동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어려울 때 도와야 진짜 친구로 인정받는다. 1월 30일 외교부는 우한 지역에 마스크 200만장, 의료용 마스크 100만장, 방호복·보호경 각 10만 개 등 의료 물품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우한에 인접한 충칭시 등에도 30만 달러(약 3억5600만 원) 상당의 지원품을 제공하는 계획도 세웠다. 필요한 일이다. 2003년 사스 사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해 중국의 찬사를 받은 경험도 있다. 당장 이웃 일본은 우리보다 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1월 27일 중국에 "(신종 코로나 확산 방지와 관련해) 일본이 도울 것이 있으면 전면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의 한 기업은 마스크 100만장을 중국 우한시로 보내기도 했다.

다만 중국 정부는 이번 사태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당장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에 대해 1월 31일에야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을 두고 말이 많다. WHO가 중국의 눈치를 보다 늑장대응을 했다는 것이다. 왜 이런 비판이 나올까.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가진 이미지가 영향을 준 건 아닐까.

세계 질서를 주도하겠다는 시진핑의 중국이 '코로나 역병(疫病)' 앞에 휘청이고 있다. 위기를 잘 넘기려면 코로나바이러스 퇴치도 중요하지만, 역병만큼 만연한 ‘안티 차이나’ 정서를 어떻게 해소할지도 생각해야 한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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