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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새싹 채소, 부럼, 봄동으로 차린 2월 식단, 활성산소↓면역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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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면 할아버지께서는 경사롭고 복이 가득하라는 축문(祝文)을 기둥이나 문설주에 붙여 놓으셨다. 우리말 이름 ‘봄 설’인 입춘이 되면 동풍이 불어서 쌓인 눈을 녹이고 겨울잠을 자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절식(節食)으로 오신반(五辛盤)이라 하여 움파, 산갓, 당귀 싹, 미나리 싹 그리고 무 싹과 같은 시고 매운 새싹 채소를 살짝 데쳐 초장에 찍어 먹었다. 요즘에야 사시사철 푸른 채소를 손쉽게 구할 수 있지만 묵은김치 하나로 긴 겨울을 보내던 시절에 겨우내 언 땅을 비집고 싹을 틔운 새싹 채소는 입맛을 돋우는 건강식이다.

한영실의 작심3주

첫째 주, 피토케미컬 가득한 입춘 절식
 새싹 채소의 초록색 색소에는 피토케미컬이 들어 있다. 피토케미컬은 식물의 대사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화학물질로 사람이 먹었을 때 건강에 유익한 생리활성 물질을 제공한다. 주요 기능은 항산화 작용으로 유해 활성산소가 생기지 않게 하거나 활동을 억제한다. 산소는 우리 몸의 정상적인 에너지 대사 과정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이 과정 중에서 일부는 화학적 반응성이 강한 활성산소로 변환된다. 자외선·식품첨가물, 그리고 각종 환경 오염물 등에 의해 발생이 촉진된다. 과다 축적된 활성산소는 세포나 단백질, 유전자를 손상해 세포 구조나 기능에 문제를 일으킨다. 젊은 나이에는 신체가 활발한 생체 방어능력이 있어 그 영향을 적게 받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활성산소에 대한 노출도가 증가하는 반면 그에 대항하는 항산화 능력은 약화해 세포의 노화가 빠르게 진행된다. 유해 활성산소는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퇴행성 뇌 질환, 암 등 각종 노인성 질환의 주원인이다. 새싹 채소에 풍부한 비타민C 또한 쉽게 산화돼 다른 물질의 산화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비타민C 섭취는 다양한 스트레스 증상을 감소시키고 병균이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항체의 수준을 높인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부신에서 스트레스 방어 호르몬이 분비돼 스트레스에 대응하게 되는데, 비타민C는 스트레스 물질의 농도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둘째 주, 단백질·지방 많은 견과류 부럼
어릴 적 대보름 전날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하여 졸음과 씨름을 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머리맡엔 생밤·호두·잣·땅콩 등이 놓여 있었다. 껍질째 깨물어 “부럼 깨물어 버립니다”고 소리치며 힘껏 던져 버리는 것이 보름날 연례행사였다. 부럼 깨물기 풍습은 1년 내내 종기·부스럼이 생기지 않고 치아가 튼튼해지길 바라는 뜻을 지닌다. 견과류 섭취를 통해 겨우내 부족한 단백질이나 양질의 지방을 섭취하는 지혜도 들어 있다.잣·땅콩·호두와 같은 견과류에는 마그네슘이 풍부하다. 마그네슘은 체온 조절, 신경 전달 및 근육의 수축과 같은 생화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그네슘이 부족하면 근육 경련이 자주 일어나고 과도하게 예민해져서 쉽게 화를 내거나 불면증을 초래한다. 마그네슘은 동맥을 이완시켜 혈압을 떨어뜨리고 심장의 정상적인 박동을 돕는다. 심장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혈액을 온몸에 보내준다. 몸은 혈액을 통해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받기 때문에 심장 기능이 약해지면 에너지 대사에 이상이 생겨 각종 질병에 걸리게 된다. 따라서 심장 기능을 강화하는 것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에서도 견과류 섭취량과 심장병 사망률은 반비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견과류에 들어 있는 리놀산·리놀레산·올레인산과 같은 질 좋은 불포화지방산은 동맥의 탄력성을 높여준다. 동맥 중에서도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관상동맥의 기능이 좋아야 심장이 더욱 튼튼해진다. 미국 심장학회지에 보고된 연구에 따르면 호두와 같은 견과류를 섭취한 사람의 관상동맥의 탄력이 월등히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잣·호두·땅콩 같은 견과류는 열량이 높아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체중 조절에 좋지 않다. 하루에 땅콩과 잣은 25~30알, 호두는 5~8개 정도 먹는 것이 비만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심장도 튼튼하게 하는 적절한 양이다.

셋째 주, 비타민C 풍부한 봄동 겉절이
눈이 녹아서 비가 내린다는 우수(雨水)가 지나면 봄기운이 돌고 초목은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겨울철 노지에 파종한 봄배추인 봄동도 이때쯤 기지개를 켜듯 잎이 크게 자란다. 봄동은 한겨울 매서운 바람과 눈을 맞고 자라 생명력이 강하다. 봄동에는 베타카로틴과 비타민C가 풍부하다. 추운 겨울과 봄 사이, 일교차가 큰 환절기에는 면역력이 떨어지기 쉽다. 면역은 각종 질병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는 방어체계다. 몸속에서 비타민A로 전환되는 베타카로틴은 상피세포를 건강하게 유지해 면역 체계를 강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 비타민C는 콜라겐 합성에도 관여한다. 콜라겐은 세포와 세포 사이를 연결하는 접착제 역할을 해 피부와 연골·치아·모세혈관·근육 등을 단단하게 만든다. 이렇게 콜라겐이 세포를 튼튼하게 하면 바이러스도 쉽게 침입할 수 없어서 면역력이 향상된다. 비타민C는 열에 약하므로 봄동은 겉절이와 같이 생으로 무치는 것이 영양소 손실 없이 조리하는 방법이다. 다진 마늘과 쪽파를 넣고 식초·매실청·액젓·고춧가루로 짜지 않게 버무린 봄동 겉절이로 겨우내 지쳐 있던 입맛을 살려보자.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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