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뒤 숨은 시진핑에 분노···대륙이 들끓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입력 2020.02.02 05:00

업데이트 2020.02.03 10:42

내가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직접 지휘하고, 대응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에서 테드로스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과 만나고 있다.[AP=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에서 테드로스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과 만나고 있다.[AP=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에서 테드로스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과 만나 한 말이다. 중국 방송 뉴스에 보도됐다.

신종 코로나가 두려운 中 공산당
시진핑 1인 체제 위기?

그런데 이후 나온 기사의 내용은 조금 달랐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여기에 주목했다. WP는 “지난달 29일 중국 관영언론은 시 주석이 WHO 사무총장에게 ‘우리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전쟁을) 집단으로 지휘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고 전했다. 지휘의 형태가 ‘내가 직접’하는 것에서 ‘우리 정부가 집단으로’ 한다고 바뀌었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WP의 분석은 이렇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위기가 예상치 못하게 눈덩이처럼 커지자, 중국 관영 언론은 시 주석의 정치적 노출을 조심스레 피하고 있다.”

지난 1일 홍콩의 한 거리에서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모습.[AFP=연합뉴스]

지난 1일 홍콩의 한 거리에서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모습.[AFP=연합뉴스]

스티브 탕 영국 런던 소아스(SOAS)대학 중국연구소장 생각도 비슷하다. 그는 WP에 "중국 인민의 인식은 (공산당) 선전 기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최근 사태에서 선전 기관들은 시 주석의 명성을 보호하는 것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리커창 중국 총리가 후베이성 우한시의 한 수퍼마켓에서 시민들과 대화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지난달 27일 리커창 중국 총리가 후베이성 우한시의 한 수퍼마켓에서 시민들과 대화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다른 근거도 제시한다. 시 주석은 춘제(春節) 당일인 지난달 25일 중국 최고 권력기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는 영도소조(특별 임무 수행을 위한 비공식 의사결정 기구)를 만들었다. 하지만 영도소조의 조장은 시 주석이 아닌 리커창 총리였다. 시 주석 자신이 주재한 회의에서 그렇게 정했다. 사건의 진원지인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를 방문한 것은 리 총리다. 춘제 연휴를 다음 달 초로 연장하는 지시를 내린 것도 리 총리였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쓰촨성 대지진 진앙지인 원촨현 잉슈진의 이재민 판자촌을 방문해 직접 채소와 고기 볶음 요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쓰촨성 대지진 진앙지인 원촨현 잉슈진의 이재민 판자촌을 방문해 직접 채소와 고기 볶음 요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물론 중국 총리는 주로 내치를 담당해 왔고, 국가 재난 상황에 맹활약하는 전통이 있다. 리 총리의 전임자인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대표적이다.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08년 쓰촨 대지진 사태 때 현장을 진두지휘해 국민의 찬사를 받았다.

중요한 건 시진핑 집권 이후 주석과 총리의 역할 분담 체제가 유명무실하다는 점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지난 2018년 12월 ‘개혁·개방 40주년 경축대회’에서 리커창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지난 2018년 12월 ‘개혁·개방 40주년 경축대회’에서 리커창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시 주석이 그렇게 했다. ‘경제는 총리 담당’이란 전통을 바꾼 게 대표적이다. 중국 최고 경제정책 집행기구인 중앙재경영도소조(中央財經領導小組)의 조장을 시 주석이 직접 맡았다. 이 기구 조장 자리는 오랫동안 총리의 몫이었다. 현재 중국 경제 정책은 리 총리가 아닌 시 주석과 그의 심복 류허 경제담당 부총리가 주도한다. WP는 “시 주석은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 회장이 되고 싶어 한다”고 평가했다.

모든 일을 자신이 봐야만 하는 만기친람(萬機親覽)의 시 주석이다. 왜 리 총리에게 코로나 사태 수장을 맡겼을까.

빅터 시 미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UCSD) 교수의 분석은 이렇다. “만일 시 주석이 이번 전염병 사태를 완벽히 제압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면 왜 직접 직책을 맡아 모든 영광을 가져가지 않았겠나.”

이번 사태가 정치적으로 위험하다는 걸 알고 리 총리에게 맡겼다는 얘기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운데)가 지난달 27일 후베이성 우한의 한 병원을 찾아 의료진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리커창 중국 총리(가운데)가 지난달 27일 후베이성 우한의 한 병원을 찾아 의료진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리 총리의 이력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감염병 사태를 겪어 봤다. 허난(河南)성 성장과 당서기를 맡았던 1998~2003년 에이즈(AIDS)가 만연해 많은 주민이 숨졌다. 당시의 정치적 위기를 잘 빠져나와 총리가 됐지만, 허난성 시절 기억은 리 총리에겐 커리어 상 큰 오점이다. 윌리 람 홍콩 중문대 교수는 CNN에 "리 총리는 (시 주석에게) 정치적 선택을 받은 것" 이라며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악화하면 비난이 리 총리에게 쏟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지도부는 요즘 ‘갈라치기 언론 대응 전법’을 쓰고 있는데, 이 역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시진핑 거리 두기' 전략이다. 중국 네티즌들은 왕샤오둥(王曉東) 후베이 성장이나 저우센왕(周先旺) 우한시장을 대놓고 욕한다. 그래도 중앙정부에 대한 비난이 오지 않는 선에선 중국 지도부는 인민의 성토를 허용하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환구시보도 칼럼에서 "우한시의 초기 대응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며 네티즌을 거든다.

저우센왕(周先旺)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장이 지난달 27일 중국 중앙(CC)TV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CCTV캡처=연합뉴스]

저우센왕(周先旺)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장이 지난달 27일 중국 중앙(CC)TV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CCTV캡처=연합뉴스]

반면 시 주석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것은 철저히 경계한다. 시 주석을 비난하는 내용의 글이 오면 SNS 접속이 막히는 일이 다반사다. 대신 전염병 사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지도자 이미지는 강조한다. 시 주석이 WHO 사무총장과 만나 “코로나바이러스는 ‘마귀’다. 이 마귀를 숨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고 한 발언이 중국 언론에 자주 나오는 이유다.

'시진핑'을 트럼프로 칭한 글을 올린 웨이보의 계정 접속이 막힌 화면. [웨이보 캡처]

'시진핑'을 트럼프로 칭한 글을 올린 웨이보의 계정 접속이 막힌 화면. [웨이보 캡처]

하지만 중국 인민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웨이보 등 중국 소셜미디어에선 교묘히 시 주석을 비난하고 있다. 한 중국 네티즌은
지난달 25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나는 이 같은 순간을 한시도 견디지 못할 것 같다. 트럼프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검열을 피하기 위해 민감한 단어인 '시진핑' 주석의 이름 대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쓴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대표적 영화 리뷰사이트 더우반(豆瓣)에선 코로나 사태를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비유하는 듯한 글도 올라왔다. 현재 이 글들은 접속이 막히거나 비공개 처리가 됐다. 샤오치양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인터넷 연구위원은 NYT에 "중국 소셜미디어는 강력한 검열에도 불구하고 온갖 화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여객기에서 내려 중국 베이징 국제공항에 도착한 승객들이 보호용 마스크를 쓴 채 공항철도를 타고 있다.[AFP=연합뉴스]

지난 1일 여객기에서 내려 중국 베이징 국제공항에 도착한 승객들이 보호용 마스크를 쓴 채 공항철도를 타고 있다.[AFP=연합뉴스]

‘코로나 역병(疫病)’은 중국 공산당에게 큰 공포인 게 분명하다. 2003년 사스 사태 당시 주중 영국 대사를 지낸 케리 브라운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대 교수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중국 공산당의 근본적 정당성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으로 규정한다. 빅터 시 교수도 “중국 당국은 바이러스가 베이징과 상하이 등 중국 주요 도시에 확산하는 ‘정치적 재앙’을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두가 안다.

현재 중국 공산당의 알파와 오메가는 시진핑이란 걸.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그가 그렇게 만들었다. 개혁·개방을 주도했던 지도자 덩샤오핑이 만들고, 후임 장쩌민이 확립한 중국의 집단지도체제를 약 20년 만에 1인 중앙집권체제로 변모시킨 것이 시 주석이다.

빅터 시 교수의 전망이다.

전임자 전통을 따르지 않은 채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스트롱맨’의 길을 걸은 시 주석이다. 하지만 대중의 지지는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면 금방 증발해 버릴 것이다."

1인 집권체제가 부메랑이 되어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시 주석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는 이를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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