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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더미에서 찬란히 꽃핀 파리의 예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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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1호 20면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
메리 매콜리프 지음
최애리 옮김
현암사

문학 거장, 천재 화가 속속 등장 #1871~1929년 예술 전성기 연출 #일기·편지 등 방대한 자료 섭렵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 그려내

새로운 세기의
예술가들

파리는 언제나
축제

새로운 세기의 예술가들

새로운 세기의 예술가들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 『새로운 세기의 예술가들』 『파리는 언제나 축제』 3부작으로 구성된 ‘예술가의 파리’ 시리즈가 나왔다.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패한 직후인 1871년 파리코뮌 시절부터 1929년 대공황기까지 파리예술가들의 치열한 삶과 작품 활동을 씨줄과 날줄로 엮은 대하 드라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인물들이지만 그들의 세세한 삶 속으로 파고드는 여행은 전율을 불러일으킬 만큼 실감이 난다.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 이전으로 돌아가 그들과 동시대 사람이 된 착각이 들 정도다. 정치적 배경까지 포함해 연대기적 형식으로 기술돼 있지만 스토리 전개가 박진감 넘쳐 지루할 틈이 없다. 자유의 여신상 프로젝트 같은 사건들의 시말을 한꺼번에 쓰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맞춰 장면 장면으로 연결해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저자인 사회역사가 매콜리프는 일기와 편지, 회고록 등 방대한 자료를 샅샅이 뒤져 철저히 고증한 이 장편 드라마를 ‘전지적 시점’으로 썼다.

1871년 5월 21~28일 ‘피의 주간’으로 막 내린 파리코뮌 이후 파리는 그야말로 잿더미가 됐다. 하지만 폐허 속에도 삶과 예술은 피어나는 법. 파리는 내정 혼란과 전쟁 패배를 딛고 화려하게 되살아났다. 인상파 화가 마네·모네·르누아르·드가·고갱·세잔·시슬레·피사로 등 새 피가 공급됐다. 이들은 살롱전으로 대표되는 기성 화단의 무시와 조롱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새로운 화풍을 실험했으며 끝내 큰 성취를 이룬다. 시대의 반항아들인 이들의 일상을 엿보노라면 어느새 그들과 친구가 된다.

파리 센강의 알렉상드르 3세 다리에서 바라본 레쟁발리드 풍경. 파리의 최대 종합전시장인 레쟁발리드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의 현장이자 나폴레옹이 안장된 곳이다. 알렉상드르 3세 다리는 벨 에포크 미학이 구현된 대표적 건축물로 꼽힌다. [사진 현암사]

파리 센강의 알렉상드르 3세 다리에서 바라본 레쟁발리드 풍경. 파리의 최대 종합전시장인 레쟁발리드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의 현장이자 나폴레옹이 안장된 곳이다. 알렉상드르 3세 다리는 벨 에포크 미학이 구현된 대표적 건축물로 꼽힌다. [사진 현암사]

인상파 화가들의 삶은 당대 최고 문필가였던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에드몽 드 공쿠르 , 뒤마 페르와 그의 아들 뒤마 피스 등과 밀접하게 얽히고설켜 있었다. 세기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도 동시대 사람으로 대기만성 노력형 예술가였다.

고흐와 고갱의 예술적 동거와 결별, 매혹적인 대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활약과 연애담, 음악가 드뷔시와 라벨의 성공스토리, 럭셔리호텔의 대명사 세자르 리츠의 철학 등은 의미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밖에도 시시콜콜하다고 느낄 만한 예술가들의 삶의 디테일은 차고도 넘친다. 그들의 사생활, 연애담, 성격 묘사는 깨알 같은 재미를 준다.

파리는 언제나 축제

파리는 언제나 축제

공화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몽마르트 언덕에 우뚝 서 파리의 얼굴이 된 사크레쾨르 대성당,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 무대인 오페라 가르니에, 미국에 우정의 선물로 전달한 자유의 여신상도 같은 시기에 지어졌다. 이를 둘러싼 에피소드들도 흥미진진하다. 에펠탑을 철탑으로 세우자는 아이디어는 ‘강철의 마법사’ 에펠이 아닌 그의 조수들의 작품이라는 일화도 재미있게 소개된다. 오페라 가르니에를 건설한 샤를 가르니에는 철탑 설계안에 분개하며 어떻게든 그것을 중지시키려 했다.

세기말 프랑스를 휩쓸었던 반유대주의 광란의 결정판인 드레퓌스사건을 둘러싼 문화예술계와 정계, 일반 국민 사이의 거대한 분열은 1894 유죄판결부터 1906년 최종 무죄 결정까지 10여 년 지속했다. 독일 스파이 혐의를 뒤집어쓴 유대인 드레퓌스를 옹호하며 ‘나는 고발한다’는 글을 쓴 졸라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대격돌은 오늘날 우리 사회와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2권 『새로운 세기의 예술가들』은 20세기 초입부터 1차대전 말까지를 다뤘다. 이사도라 덩컨, 스트라빈스키, 샤갈, 장 콕토 등 많은 예술가가 ‘빛의 도시’ 파리로 몰려온다.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자코브 등 천재 화가들은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던 싸구려 목조 공동주택 바토 라부아르에서 새 세기의 예술을 개척한다.

1차 대전으로 기나긴 휴지기에 들어가지만 전후 파리의 예술은 다시 황금기를 맞는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과학기술은 예술의 세계도 바꿔 놓았다. 3권 『파리는 언제나 축제』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보게 된 전후 광란의 시대를 그렸다. 샤넬 패션은 혁신의 상징이었다. 건축계를 주름잡은 르코르뷔지에는 표준화된 모듈식 주택 돔-이노 시스템을 선보여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의 재건에 큰 몫을 했다.

프랑스의 이 시기는 예술과 문화가 가장 찬란하게 꽃핀 황금기였다. 이 책 3권을 섭렵한다면 풍성한 뷔페에 간 것처럼 ‘예술의 배’가 부를 것이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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