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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최선’ 등번호 24번 코비…코트의 악바리 스러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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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별이 돼 떠난 NBA 전설 코비 브라이언트. [AP=연합뉴스]

별이 돼 떠난 NBA 전설 코비 브라이언트. [AP=연합뉴스]

27일 미국 텍사스주의 AT&T센터에서 열린 미국프로농구(NBA) 샌안토니오 스퍼스-토론토 랩터스의 경기. 토론토 선수들은 경기 시작 후 24초간 공격을 하지 않고 ‘24초 샷클락 바이얼레이션’에 걸렸다. 샌안토니오 선수들도 24초를 그대로 흘려보냈다.

코비 브라이언트 1978~2020 #한 경기에 81득점 NBA의 전설 #딸과 헬기로 농구장 가다 추락사 #전 감독 “훈련자세는 조던 이상” #NBA 선수들 24초 공격 멈춰 추모 #트럼프·오바마도 한목소리 애도 #우즈 “아킬레스건 다쳐도 뛴 선수”

42세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NBA 전설’ 코비 브라이언트(미국)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24’는 그가 LA 레이커스에서 2006년부터 10년간 달고 뛴 등번호를 의미했다. 이날 잠실에서 열린 프로농구 인삼공사-SK전에서도 양팀이 각각 24초와 8초를 흘려보냈는데, ‘8번’은 브라이언트가 1996년부터 10년간 달았던 등번호다.

브라이언트가 탑승한 헬기는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부서졌다. 아직 정확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당시 안개가 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연합뉴스]

브라이언트가 탑승한 헬기는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부서졌다. 아직 정확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당시 안개가 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연합뉴스]

브라이언트는 현지시간 26일 오전 10시쯤 전용 헬리콥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 북서쪽에 위치한 칼라바사스시로 가던 중 추락했다. 헬기는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부서졌고, 딸 지아나(13)를 비롯한 9명 전원이 숨졌다. 캘리포니아에 세운 맘바스포츠 아카데미에서 딸이 속한 농구팀을 가르치기로 했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농구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브라이언트는 딸 지아나에겐 자상한 아빠였다. [AP=연합뉴스]

브라이언트는 딸 지아나에겐 자상한 아빠였다. [AP=연합뉴스]

그는 남들보다 이른 18살에 NBA로 직행했다. 대부분 선수들이 택하는 경유지인 대학은 외면했다. 그만큼 농구에 대한 확신·열정이 강했고 실력도 탁월했다. 1996년부터 2016년까지 20시즌 동안 LA 레이커스에서만 뛰며 파이널 5회 우승(2000~2002, 2009, 2010)을 이끌었다. 올스타에 18차례 뽑혔고, 2008년과 12년에는 미국 대표로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2006년 1월 현대 농구에서 한 경기 81점을 몰아치며 ‘미스터 81’이라 불렸다.

브라이언트는 2006년 등번호를 24번으로 바꿨다. 학창 시절 달았던 등번호이자, 조던의 등번호 23번보다 한단계 높은 숫자다. 스포츠 브랜드와 계약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 중 ‘하루 24시간, 공격 제한시간 24초, 매시간 매초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AP=연합뉴스]

브라이언트는 2006년 등번호를 24번으로 바꿨다. 학창 시절 달았던 등번호이자, 조던의 등번호 23번보다 한단계 높은 숫자다. 스포츠 브랜드와 계약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 중 ‘하루 24시간, 공격 제한시간 24초, 매시간 매초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AP=연합뉴스]

42세 짧은 삶 … 20년간 3만3643점 득점  

하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별명은 ‘블랙 맘바’였다. 맘바는 맹독을 가진 날렵하면서도 공격적인 뱀인데, 브라이언트는 농구를 향한 열정을 상징한다고 봤다. 실제 등 번호를 24번으로 바꾼 데서도 드러나는데, ‘하루 24시간, 공격 제한시간 24초, 매시간 매초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코비를 사랑했고 자신의 동생이나 다름없었다고 추모했다. [사진 NBA TNT 인스타그램]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코비를 사랑했고 자신의 동생이나 다름없었다고 추모했다. [사진 NBA TNT 인스타그램]

2014년 12월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57·3만2292점)을 제치고 통산 득점 3위에 올라섰다(최종 3만3643점). 1980~2000년대 시카고 불스 등에서 활약한 조던은 그에겐 긴 그림자를 던졌다. 그는 늘 조던과 비교됐고, ‘조던의 아류’란 얘기를 듣기도 했다.

둘을 모두 지도했던 필 잭슨 전 감독은 “훈련에 임하는 자세만큼은 코비가 조던 이상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작 둘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브라이언트는 1997년 경기 중 조던에게 포스트업 기술을 물어볼 만큼 조던을 존경했다. 조던은 “넌 내 동생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2013년 아킬레스건 부상 이후엔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6년 4월 14일 유타 재즈전에서 은퇴 경기를 치렀다. 홀로 60점을 몰아쳐 역전승을 이끈 그는 “맘바 아웃(Mamba out·맘바는 떠납니다)”이란 말을 남겼다.

LA 레이커스에서 함께 뛴 브라이언트와 샤킬 오닐. 둘은 한때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오닐도 브라이언트를 존중했고, 브라이언트도 오닐을 빅 브라더라 불렀다. 오닐은 조카인 지아나와 형제인 코비를 잃는 슬픔을 겪는 고통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사진 ESPN 인스타그램]

LA 레이커스에서 함께 뛴 브라이언트와 샤킬 오닐. 둘은 한때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오닐도 브라이언트를 존중했고, 브라이언트도 오닐을 빅 브라더라 불렀다. 오닐은 조카인 지아나와 형제인 코비를 잃는 슬픔을 겪는 고통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사진 ESPN 인스타그램]

그는 2000년대 샤킬 오닐과 갈등을 빚기도 했고, “슛을 난사한다”는 지적도 받았다. 2000년대 성추문에도 휘말렸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타이거 우즈나 마이클 조던의 반열이 됐다. 자신의 이야기를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아카데미상을 받기도 했을 정도로 다재다능했다.

브라이언트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아카데미상을 받기도 했다. [AP=연합뉴스]

브라이언트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아카데미상을 받기도 했다. [AP=연합뉴스]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사고 당일 르브론 제임스(36·LA 레이커스)에게였다. 통산 득점 3만3655점을 기록, 그를 4위로 밀어낸 터였다. 그는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킹 제임스는 계속 전진하고 있다. 내 동생에게 높은 경의를.”

LA공항에 소속팀 레이커스 상징색 조명

팀 비행기에서 내리다가 사고 소식을 접하고 눈물을 쏟은 제임스는 AP통신에 “그의 마지막 말을 기억한다. ‘당신이 정녕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 되고자 한다면, 그 일을 위해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한다.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다’는 말이었다”며 “그는 공격적으로 무결점의 선수였다. 그의 기술과 열정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LA에서는 브라이언트를 향한 추모가 이어졌다. [AFP=연합뉴스]

LA에서는 브라이언트를 향한 추모가 이어졌다. [AFP=연합뉴스]

세계 각지에서 추도사가 이어졌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5·미국)는 27일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 최종 라운드 직후 브라이언트의 사고 소식을 캐디 조 라카바에게서 처음 접했다. 갤러리들이 우즈를 향해 ‘맘바’(브라이언트의 별명)를 외쳤을 때만 해도 무슨 일인지 몰랐던 우즈는 상황을 알고선 망연자실했다. “우린 거의 20년 동안 함께 달려왔다”던 우즈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슬프고, 비극적인 날이다. 그는 불꽃 같았다. 아킬레스건을 다쳐도 슛을 던지는 선수였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에 “끔찍한 소식”이라고 적었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코비는 코트의 전설이었다. 생각하기 싫은 날에 모든 가족에게 사랑과 기도를 보낸다”고 밝혔다. 이날 열린 제62회 그래미 어워드에서도 브라이언트 추모 분위기가 이어졌다. LA 국제공항엔 레이커스의 상징색인 보라색과 노란색 조명이 켜졌다.

박린·김지한·박소영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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