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부 변화로「개혁불가」고집서 후퇴|서독 탈출로 충격커…반체제 세력 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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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불과 한달동안 5만여명의 자국민이 서독으로 탈출하고 53년 민중봉기이후 최대규모의 시위가 계속되는 속에서도 완강하게 「개혁불가」 입장을 고집하던 동독지도부가 상당한 변화조짐을 보이고 있다.
동독 지도부에 「모종의 변화」가 있음이 감지된 것은 지난11일. 지금까지 강경 일변도로 시위를 진압하던 동독경찰들이 과잉진압을 자제하고, 드레스덴시의 시장이 반정부인사들과 대화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그런데 시위과잉진압을 자제하도록 하고 반정부세력과 대화용의가 있음을 밝힌 사람들이 바로 동독최고지도자 호네커의 수족과 같은 인물들로 현재 와병중인 호네커가 사망했을 경우 후계자로 지목되던 사람들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즉 드레스덴·라이프치히시에서 시위진압을 자제하도록 지시한 사람은 호네커 사망시 후계자 제1후보로 지목되는 에곤크렌츠. 금년 52세로 정치국원인 그는 지금도 이따금 공식석상에서 호네커의 대행역할을 맡을 정도의 실력자다.
또 한사람 드레스덴시장으로 반정부세력과 대화용의를 밝힌 한스 모드로 (61)는 현재 동독지도부중 가장 개혁적인 인물로 고르바초프의 개혁노선에 동정적인 입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 또한 「포스트 호네커」를 노리는 강력한 후보다.
이에 덧붙여 당 정치국원이며 이데올로기담당인 쿠르트 하거가 11일동독을 보다 민주적이며 개방된 사회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금까지 반개혁· 보수입장에 섰던 그가 개혁수용입장으로 돌아선 것은 그가 맡고있는 직책의 중요성으로 볼 때 큰 의미를 갖는다.
동독지도부가 이처럼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이유는 우선 대내적으로 자국민의 대량탈출로 인한 엄청난 내부충격과 그에 따른 국내 반체제 개혁세력의 활동강화를 들 수 있다.
동독 반체제세력은 최근 동독을 방문한 고르바초프를 대대적으로 환영하면서 동독에서의 소련식 개혁을 강력히 요구, 그후 수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를 계속 열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이웃나라인 폴란드와 헝가리의 눈부신 변화 영향, 그리고 소련으로부터의 개혁요구 압력을 들 수 있다. 특히 고르바초프는 지난번 방문 때 동독측에 국내 모든 개혁세력과 대화하도록 촉구하는 등 개혁요구 의사를 강력히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서방측, 특히 서독은 동독이 개혁에 착수할 것을 강력 요구하면서 동독이 개혁에 나설 경우 대규모 경제원조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하고 있다.
서독측은 11일 동독공산당 정치국성명, 시위과잉진압 자제조치 등을 「희망적 조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재 동유럽권에서 정통사회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면서 가장 완강히 반개혁의 입장을 지켜왔던 동독이 어떻게 변할지 주목된다.<정우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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