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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의 겨울 맛 더해 주는 장작 타는 소리, 그 감동이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47)

이른 아침 산막 계곡을 걸으며 물소리를 담고 영상을 찍었다. 어제의 불소리에 이은 산막소리 수집 행보다. 장작 타는 소리, 계곡의 물소리가 이토록 다양할 줄 몰랐다. 얼음 밑을 지나는 물소리가 다르고, 건너뛰는 물소리가 다르고, 활활 타는 불꽃 소리가 다르고, 갓 넣은 장작 튀는 소리가 다르다.

이 소리들을 모두 모아 한편의 비디오로 만들어 머리 복잡하고 잠 못 이루는 이 땅의 모든 분에게 들려드릴 것이다. 백 마디의 덕담보다 하나의 행동이 귀함을 알기에 다른 어떤 선물보다도 귀한 선물일 것이다. 불과 물, 산새 소리와 빗소리, 새벽이 오는 소리, 눈 내리는 소리, 닭 우는 소리…. 이 모든 세상의 소리를 모아 무언가를 만들 생각에 오늘도 가슴은 뛴다. 보라, 세상은 넓고 얼마나 할 일은 많은가?

이곳은 아직 춥다. 아침저녁으론 난로를 피워야 하는데 불쏘시개 없이 불 피우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불을 잘 피운다. 신공에 가까운 솜씨로 곡우의 찬사를 받곤 한다. 불 잘 피우는 요령은 두 가지다. 첫째, 화원(source of fire)을 오래도록 집중한다. 끈기와 일관과 인내가 필요하다. 둘째, 땔감은 밀집시킨다. 떨어뜨리면 분산된다. 모으면 시너지가 된다. 경영과도 닮았고, 정치와도 닮았다. 음악이 흐르고 난롯불은 따뜻하고. 다음 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한다. 책 읽기 좋은 날이다.

한겨울 산막은 장작 난로고 장작 난로의 핵심은 통나무다. 장작만으로 감당키에 밤은 너무 길고 추위는 깊다. 통나무라야 오래 간다. 밭에 잘 쌓은 통나무 더미에서 일고여덟 개 골라 배에 힘주고 밀어 창가에 세워 둔다. 두어개 골라 넣어두면 쉬엄쉬엄 오래 탄다. 마른 통나무만 유효한 것은 아니다. 갓 베어낸 통나무도 밑불만 튼실하면 잘 탄다.

겨울 난로지기 십여 년에 터득한 통나무 난로 신공이다. 무엇이든 오래 하면 터득한다. 이 긴긴 겨울밤, 난로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사람이라 다 사람 아니듯, 불이라 다 같은 불이 아니다. 전깃불, 히터불, 난로불, 장작불, 불 불 불…. 춤출 줄 알고 배고플 줄 알고 죽을 줄도 아니 살아있는 불인 것이다. 편이와 감동은 늘 반비례한다. 사람 또한 이와 같다. 감동 있는 사람이 되자.

불 중 으뜸은 장작불

불도 많지만 뭐니해도 으뜸은 활활 타는 장작불이지 싶다. [사진 권대욱]

불도 많지만 뭐니해도 으뜸은 활활 타는 장작불이지 싶다. [사진 권대욱]

늘 산막을 비워두는 관계로 개들에게 산막을 맡기다 보니 만날 때마다 정겹고 든든하고 미안하고 뭐 그런 살가운 감정이 무척 크다. 무엇이든 정을 준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늘 마음을 써야 한다. 마음 쓰면 붙잡히고 붙잡히면 자유롭지 못하니 애초에 정 주지 말 일인지도 모르겠다. 기백이는 불러도 대답도 하지 않고 누리는 천진난만 어디를 가나 졸졸졸…. 누리가 조금 더 커야 기백이 집 지킬 듯하니 이래저래 걱정이다.

애당초 없었으면 아쉬운 것도 없으려니 재산이건 사람이건 짐승이건 정 붙이고 살기는 쉽지가 않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알 것도 같은 오늘인데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마음을 더욱 스산케한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걸 갖지 않는 거라는데, 글쎄 그 불필요한 게 사람마다 다 다르나 적어도 산막과 기백과 누리가 내게 불필요한 것이지는 않을 듯싶다. 그렇다면 방법 없다. 불편해도 참고 견디고 즐길 도리밖엔….

산막의 터줏대감 기백이와 누리

산막의 터줏대감 기백이와 누리.

산막의 터줏대감 기백이와 누리.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더니 대백이 볼때기엔 상처 잘 날 없다. 얼마 전엔 넓적다리를 물려 쩔뚝이더니 오늘은 볼때기를 물려 살점이 뚝 떨어졌다. 사냥꾼이다. 오소리나 너구리와 싸웠겠다 싶다. 혹 모른다. 멧돼지나 늑대일지도. 그래도 아프다 소리 안 하고 씩씩은 하다. 소독약과 가루약을 뿌려줬으니 곧 나으리라 믿는다.

산막의 개들을 묶어 두니 내가 묶이더라. 개를 풀었다. 그로부터 내가 자재로웠다.

“당신 올해 소원이 뭐에요?”
“자유.”
“당신 이미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처럼 자유로운 사람 잘 없어요. 마음대로 다하잖아.”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 얼마나 구속받는 게 많은데? 조직에 구속받고, 사회에 구속받고, 법률에 구속받고, 윤리에 구속받고, 당신에게 구속받고….”
“자유에는 책임이 따라요. 그 책임이 당신을 구속하는 거예요.”

헐, 누가 그걸 모르는가? 나의 자유는 책임 안 지는 자유가 아니라 그마저 뛰어넘어야 하는 자유임을. 무책임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책임을 의식하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는 말이지. 물처럼 바람처럼 살자는데 도대체 무슨 책임이란 말인가? 이 나이에 무슨 책임질 일은 또 그리 많단 말인가? 이렇게도 외쳐보지만 바람도 물도 넘어야 할 산이 있고 가로막는 바위가 있어 내가 생각하는 자유는 죽어서나 가능한 자유.

이 세상 어디에도 없구나 뇌이는 아침이다. 물욕이 있으니 재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명예욕이 있으니 출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으니 타인의 시선과 행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이곳저곳 인연을 뿌리다 보니 무엇보다 인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진정한 자유는 욕망과 집착이 사라질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임을. 자유를 원하면 버려야 하고 자재를 원하면 끊어야 함을.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의 경지란 결국 오욕칠정(五慾七情)으로부터 자재로울 때란 말이니 내 나이 100이나 되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주)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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