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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매화주, 10월 문배술···2030 홀렸다 '전통주 구독 서비스'

중앙일보

입력

가평 하면 잣 막걸리, 전주하면 이강주. 경주하면 교동법주. 설날 찾은 고향마다 한 가닥 한다는 지역 전통주들이 있다. 친척들과 모여 오랜만에 지역 전통주를 마시고 귀경길에 올랐는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면 이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2030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주목받고 있는 '전통주' 구독 서비스다.

구독서비스 하면 신문이나 잡지 구독을 떠올린다. 최근엔 음악, 도서 같은 콘텐트 구독서비스에서 음식, 생필품 영역까지 확장됐다. '신선 배송'이나 '정기배송'으로 반찬, 면도기 같은 것도 구독한다. 그리고 이젠 전통주도 '구독'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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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덤 박스에 담긴 전통주 2병…술담화 '담화박스'

술담화의 전통주 구독서비스 1월 '담화박스' 패키지에 담긴 내용. [담화컴퍼니]

술담화의 전통주 구독서비스 1월 '담화박스' 패키지에 담긴 내용. [담화컴퍼니]

만약 '술담화'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면, 설 직전 예쁘게 포장된 전통주 두 병과 우엉 부각, 전통주 스토리를 담은 큐레이션 카드를 받았을 테다. 술은 대전 지역주인 청주 '하타'와 약주 '단상지교'다.

술담화의 구독 서비스는 한 달에 한 번 계절과 절기에 맞는 전통주 2병과 큐레이션 카드, 유기농 안주를 패키지로 '담화박스'에 넣어 소비자에게 배송한다. 재미있는 점은 어떤 전통주가 올지 모르는 '랜덤 박스' 형태라는 점이다. 이재욱 담화컴퍼니 공동대표는 "친구가 새로운 술을 소개해주는 기분으로 전통주와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라며 "선물을 받는 기분으로 색다름을 느낄 수 있게 기획했다"고 말했다.

술담화의 2019년 '담화박스' 리스트

술담화의 2019년 '담화박스' 리스트

매월 3만 9000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이지만 구독자는 1년 사이 2000명을 넘겼다. 구독자의 84%가 2030이라는 점도 의외다. 이 대표는 "젊은 구독자가 많다 보니 커뮤니티도 생기고 오프라인 행사도 추진된다"고 설명했다. 소셜네트워크 인스타그램에 '술담화'를 찾아보면 1만 3700명이 팔로우하고 있다. 양조장을 찾아가는 영상이나, 외국인 시음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통주 이야기를 담아내자 '팬'을 자처하는 구독자도 늘고 있다.

직접 전통주 사진을 찍고 요약 노트를 제공해 스토리텔링을 한 점이 차별화 포인트가 됐다. 이 대표는 "일률적인 술 소개가 아니라 특정 전통주의 맛과 즐기는 방법, 언제 어울리는 전통주인지 추천 안주는 무엇인지, 양조장이나 술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포함해 이야기와 함께 술을 즐길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술담화는 젊은세대가 전통주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트를 선보이고 있다. [담화컴퍼니]

술담화는 젊은세대가 전통주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트를 선보이고 있다. [담화컴퍼니]

생산자인 양조장 입장에서도 새로운 판로도 찾고 마케팅도 되니 반응이 좋다. 지난해 담화박스로 고객이 받아본 전통주만 2만병가량이다. 소매가 4만 6500원 정도 하는 '담화박스' 패키지를 3만 9000원에 서비스할 수 있는 것도, 양조장 등 생산자의 협조가 있었던 덕분이다. 이 대표는 "전통주를 좋아하는 젊은 세대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기에 커뮤니티를 키워나가며 우리 술의 매력을 더 많이 알리고 싶다"고 했다.

우리 술 전문가가 만든 술 구독 서비스

이수진 대표가 운영하는 '술펀'은 2014년부터 전통주를 소개해온 국내 최초 전통주 플랫폼이다. 사회적기업으로 지역양조장 살리기와 우리 술 알리기에 주력하던 술펀은 지난해 8월 전통주 구독서비스 '술을 읽다'를 시작했다. 매달 3만 3000원을 내면 전국 각지에 전통주를 배송해 주는 서비스다. 술에 담긴 이야기와 제조자의 목소리, 양조장 소식을 담은 잡지도 함께 배송된다. 이 대표는 "지난해 8월 15일 '대한 술독립 만세'라는 기치로 구독서비스를 시범 오픈했다"며 "조금씩 입소문이나 구독자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술을 읽다'의 1월 테마는 '겨울을 이겨내다'. 안동지역 맹개마을의 겨울 밀향기가 묻어나는 '진맥소주'가 주인공이다. 안동소주 1병과 생 배즙 1팩, 배 도라지즙 1팩, 진저에일 1캔이 세트로 묶여 구독자들을 찾았다. 생 배즙과 도라지즙은 안동진맥 소주와 함께 칵테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안내 영상도 제작했다.

술펀은 지역양조장과 오랜 관계를 기반하기에 양조장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잘 전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술펀]

술펀은 지역양조장과 오랜 관계를 기반하기에 양조장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잘 전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술펀]

진맥소주는 이 대표가 소개해 준 전문가들이 양조장 '맹개술도가'의 신제품 개발을 도와주며 새로 탄생한 지역 술이다. 술펀에서 브랜드 컨설팅도 도와줬다. 지역 작은 양조장과 오랜 관계를 맺어온 술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대표는 "'술을 읽다'는 지역 양조장 이야기를 소비자에게 전해 생산자에게는 마케팅을, 소비자에게는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술을 소개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술을 읽다' 서비스는 올해부터 본격적인 확장에 나선다. 시범 기간 선보였던 시도를 기반으로 풍성한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목표는 올해 말까지 구독자 2000명을 확보하는 거다. 이 대표는 "처음 술 구독 서비스는 술을 받아보는데 초점이 있었지만, 전통주로 만들 수 있는 칵테일 재료를 넣어주거나 했을 때 반응이 훨씬 좋았다"라며 "술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을 술펀만의 콘텐트로 삼아 차별화된 멤버십 커뮤니티로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원엽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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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전통주 챙기지만...

 우리나라에는 1200개의 양조장에서 2000종의 전통주가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유럽의 '와인'이나 일본의 '사케', 남미의 '데킬라'처럼 글로벌한 인지도를 쌓지는 못했다. 정부가 2017년 7월 예외적으로 전통주 온라인판매를 허용한 이유다. 하지만 여전히 전통주에 대한 수요는 많지 않다. 국내 주류시장 14조원 가운데 전통주 시장은 약 450억원 규모로 0.3%에 불과하다. 지난 21일 국세청이 '국내 주류 산업 진흥 지원안'을 발표하며 인터넷 홈페이지가 아닌 스마트폰 판매 등을 허용한 것도 우리술 쇠락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술펀 이수진 대표는 "정부 정책 자체는 반갑지만 전통주도 제품이고 양조장도 사업체"라며 "전통주 시장 자체가 커지고 양질의 상품이 나와 고객이 전통주를 먼저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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