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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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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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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 오늘(1950년 1월 21일), 그는 영국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폐결핵 악화가 사인이었다. 유족은 그를 옥스포드셔주 서튼 코트네이의 교회 묘지에 안장했다. 묘비에는 출생·사망일과 ‘에릭 아서 블레어 여기 잠들다(Here lies Eric Arthur Blair)’라고 새겼다. 세계적인 작가의 묘비명치고는 평범하지만, 그의 삶과 작품을 생각하면 어울리는 측면도 있다.

그는 본명보다 필명으로 알려져 있다. 조지 오웰. 조지(George)는 영국의 흔한 남성 이름이고, 오웰은 런던 북동쪽 강 이름(River Orwell)이다. 학교(이튼 칼리지)를 마친 그는 미얀마(당시 버마)와 인도에서 경찰로 근무했다. 5년간 식민 제국주의의 실상을 목격한 그는 경찰을 그만두고 작가가 됐다. 작가 조지 오웰 하면 두 편의 소설이다. 파시즘 사회를 반대하는 풍자소설 『동물농장』(1945년)과 빅 브러더의 감시에 놓인 디스토피아 사회를 그린 미래소설 『1984년』(1949년). 이들 소설로 그는 명성을 얻었다.

그는 르포르타주(르포) 작가이기도 했다. 세계적 경제불황이 닥친 1920년대 말, 그는 런던과 프랑스 파리에서 지냈다.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1933년 첫 르포 『파리와 런던의 바닥생활』을 발표했다. 식당 접시닦이, 빈민병원 입원환자 등 자신이 겪은 밑바닥 생활을 담아냈다. 1936년에는 북잉글랜드 탄광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을 그린 르포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출간했다. 탄광 막장에 들어가 함께 먹고 지내며 취재했다. 그는 그해 말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독립노동자당 민병대원으로 참전했다. 전쟁의 어리석음과 이데올로기 문제를 다룬 르포 『카탈로니아 찬가』를 1938년 펴냈다. 몸으로 부딪히며 쓴 글은 읽는 이의 마음 깊은 곳을 찌른다.

1983년에서 84년으로 넘어가던 자정에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은 파리와 미국 뉴욕을 위성으로 실시간 연결한 생중계 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연출했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년』에 그린 비관적 미래의 전망은 빗나갔다는 취지였다. 서거 70주기를 맞아 조지 오웰의 전망과 백남준의 평가를 되돌아본다. 인터넷과 인공지능(AI)이 내 머릿속까지 들여다보는 2020년, 현장에 가는 법을 잊어가는 저널리스트가 태반인 2020년. 조지 오웰 손을 들어줄 수밖에.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