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암호화폐, 로또처럼 기타소득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서울 강남구의 한 암호화폐 거래소에 종목별 시세표가 게시돼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의 한 암호화폐 거래소에 종목별 시세표가 게시돼 있다. [연합뉴스]

기획재정부가 암호화폐 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최근 담당 부서를 재산세제과에서 소득세제과로 바꾸면서다. 재산세제과는 양도소득세, 소득세제과는 기타소득세를 다룬다.

담당 조직, 양도세 다루던 곳서 #기타소득세 맡는 부서로 바뀌어 #손실 보고 세금 내는 일 생길 수도 #정부 7월까지 과세방안 마련키로

암호화폐 과세는 단칼에 결론을 낼 수 없는 난제다. 시장에선 정부가 양도세 대신 기타소득세 카드를 만지기 시작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세청은 지난해 말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을 통한 외국인 거래에 대해 기타소득세를 부과했다.

지금까지 관련 업계에선 정부가 암호화폐에 양도세를 부과하는 것을 유력한 방안으로 봤다. 미국 등 주요국이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암호화폐 보유 기간에 따라 세율을 다르게 적용한다. 그만큼 암호화폐에 대한 과세 체계가 정교한 편이다. 다만 일본은 암호화폐 거래에 따른 소득을 ‘잡소득’으로 정의해 세금을 매긴다. 한국의 기타소득과 비슷한 개념이다.

암호화폐에 기타소득세를 물리면 번듯한 투자 자산이라기보다 일회성 투자 상품으로 보는 쪽으로 기운다. 양도소득은 부동산·주식 등을 사고팔아 남긴 차익을 뜻한다. 반면 기타소득은 상금·사례금과 복권 당첨금같이 일시적으로 발생한 소득이다. 예컨대 로또 당첨금(5만원 초과~3억원 이하)에는 20%의 세금이 부과된다.

주요국 암호화폐 과세.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주요국 암호화폐 과세.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정부가 세금을 거둬들이기엔 기타소득세 항목이 훨씬 편하다. 양도세를 매기려면 정확한 취득 가격과 양도 가격을 모두 파악해 차액을 계산해야 한다. 현재 국회에는 암호화폐를 ‘가상자산’으로 규정하고 암호화폐 거래소에 신고 의무를 부과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이 통과·시행된 뒤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거래내용을 일일이 받아야 양도 차액을 파악할 수 있다. 금융 파생상품의 경우 2016년부터 양도세를 부과하고 있다.

반면 암호화폐를 기타소득세 항목에 넣으면 최종 거래 금액에서 일정 비율의 필요 경비를 뺀 뒤 과세하면 된다. 안창남 강남대 경제세무학과 교수는 “기타소득은 일시적·우발적으로 벌어지는 소득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것”이라며 “지속적인 거래가 이뤄지는 암호화폐에 대해 로또 당첨금처럼 기타소득세를 매기는 건 행정편의적인 발상”이라고 말했다.

기타소득을 적용할 경우 암호화폐 투자로 손실을 보더라도 투자자가 세금을 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예컨대 투자금 100만원을 넣었다가 50% 손실을 보고 50만원을 찾았을 경우다. 이때 기타소득세를 부과하면 투자자는 투자 손실과 세금 부담을 이중으로 떠안아야 한다.

정부는 신중한 분위기다. 암호화폐 과세가 기타소득세로 기울었다는 관측에 대해 “너무 앞서나갔다”는 반응이다. 김영노 기재부 소득세제과장은 “(암호화폐 과세는) 여러 부서가 함께 심층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재부는 암호화폐 과세 방안을 마련한 뒤 오는 7월 말께 발표하는 내년 세법 개정안에 반영할 방침이다.

이참에 암호화폐를 단순히 과세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하고 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지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어떤 세금을 부과할 것인지를 정하더라도 새로운 형태의 소득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다양한 논란 사례가 생길 것”이라며 “암호화폐를 통한 소득을 법적으로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세종=하남현·임성빈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