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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살아도 말 안통하는 부부, 통역이 필요할까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 (66)

봉준호 감독의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수상이 연초 화제입니다. 특히 봉준호 감독 특유의 재치 가득한 수상 소감이 주목을 받았죠. 트로피를 손에 쥔 그는 “놀라운 일입니다. 믿을 수 없네요. 나는 외국어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 통역이 여기 함께 있습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 자막의 장벽, 장벽도 아니죠.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을 뛰어넘으면 여러분들이 훨씬 더 많은 훌륭한 영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한가지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영화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영미권, 특히 미국인들은 자막 읽기를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국 영화에 익숙한 그들이 자막까지 달린 외국어 영화를 보는 수고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대해 자막의 장벽을 넘어 자막으로 된 영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을 꼬집는 유쾌한 소감이었다고들 말합니다.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과 함께 통역 최성재 씨에게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봉 감독 말의 맛을 잘 살려 해외에서 ‘기생충’에 관심을 더 갖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과 함께 통역 최성재 씨에게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봉 감독 말의 맛을 잘 살려 해외에서 ‘기생충’에 관심을 더 갖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이런 그의 수상 소감, 그리고 외국에서 출연한 여러 방송과 가진 인터뷰의 화제와 함께 봉준호 감독 특유의 유머와 달변을 적절하고 매끄럽게 통역한 최성재(샤론 최)씨 에게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직접 단편영화를 만든 경력을 가지고도 있는 그녀는 영화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통역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통역사에게 필요한 빠른 속도는 물론이고, 시간상으로 직역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의도와 상황에 맞게 디테일한 통역을 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말이 가진 맛을 잘 살려 해외에서 ‘기생충’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더불어 감독의 말맛을 잘 살린 번역 자막이 수상과 흥행에 한몫했다는 기사 또한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 20년 이상 거주해온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은 그동안 봉준호 감독의 주요 작품들을 번역해 오며 감독의 세심한 행간을 잘 살려온 번역을 해왔다고 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성공 뒤에 그의 영화가 가진 매력을 잘 살려 외국인들도 충분해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번역가와 통역가의 노력을 빼놓을 수 없겠죠.

연초부터 세계에서 인정받는 우리 영화의 기분 좋은 소식을 들려주는 봉준호 감독과 그의 영화 ‘기생충’의 기사들을 접하면서 자막과 번역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영화가 세계 모두의 공감을 일으키기까지 감독의 의도를 잘 살린 자막과 번역은 필수요소였습니다. 때때로 정확히 들어맞지 않은 외화의 자막들은 사람들의 지목을 받기도 하죠. 한 단어의 오역이 전혀 다른 문장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영화에서처럼 눈에 보이는 자막과 번역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에도 자막이나 번역이 있었으면 생각되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하는 말 중 하나일 겁니다. 같은 단어를 사용했지만 나의 의도와 상대방의 이해가 달랐을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의도가 이해되지 못하면 오해를 만들게 되죠. 자막이나 번역이 필요 없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때때로 그 오해는 반복됩니다.

잘 통하는 부부는 어떨까. 서로의 말을 경청하고, 신뢰하고 존중해 주는 것을 보고 느끼면서 우리는 안심하고 관심받고 있음을 느낀다. 그 느낌은 번역이나 통역 없이도 서로에게 전달된다. [사진 pxhere]

잘 통하는 부부는 어떨까. 서로의 말을 경청하고, 신뢰하고 존중해 주는 것을 보고 느끼면서 우리는 안심하고 관심받고 있음을 느낀다. 그 느낌은 번역이나 통역 없이도 서로에게 전달된다. [사진 pxhere]

부부 사이를 떠올려 봅니다. 잘 통하는 부부들은 어떤가요? 서로의 표정만으로도 한 번에 상대방의 상태와 생각을 유추해냅니다. 반면 누군가는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못하고 이내 역정을 냅니다. 역정을 낸다는 것은 왜 내 말을 딱 알아듣지 못하냐는 의미이기도 하죠. 저 역시 남편과의 대화에서 내 말을 왜 그렇게 받아들이냐며 말끝이 올라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을 맡았던, 서로의 배우자에게 공감받지 못하는 한 아내와 한 남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제목으로 개봉되기도 했죠. 영화 속 아내처럼 남편을 자식에게 필요한 수단적 존재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영화 속 남편처럼 말만으로 사랑을 외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성과 향상을 위한 코칭리더십』(존 휘트모어, 김영사)이란 책을 읽으며 ‘감성지능’에 대한 내용을 접했습니다. 책에서는 감성지능을 신뢰의 패러다임이라 말하며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능력이라고 설명합니다. 책에서는 감성지능의 힘을 확인하기 위한 간단한 활동을 해볼 것을 권합니다. 감성지능을 경험하기 위한 활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린 시절 같이 있고 싶었던 사람을 생각해 봅니다. 부모 말고 할아버지나 할머니, 선생님 등을 생각해 봅니다.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1. 그 사람은 무엇을 했기에 당신이 그렇게 좋아했는가?
2. 당신은 어떤 느낌이었는가?

그 사람의 태도와 행동을 생각해보고 당신의 답을 적어보세요.

이 활동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실시해보면 거의 모든 사람이 같은 답을 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성질과 특성은 국가, 문화에 상관없이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 내 말을 경청했다
- 나를 믿었다
- 나의 도전의식을 깨웠다
- 나를 신뢰하고 존중했다
- 내게 시간을 주고 관심을 보였다
- 나를 동등하게 대해줬다

나는…
- 특별한 기분을 느꼈다
- 소중한 사람임을 느꼈다
- 자신감을 느꼈다
- 안심하고, 관심받고 있다고 느꼈다
- 나를 응원하고 있다고 느꼈다
- 재미있었고 열의를 느꼈다
-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느꼈다

물론 다른 대답들도 있었지만 일관성 있게 이런 대답들이 나왔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우리는 손에 만져지는 것, 계산되는 것보다 감정적인 것들에 더 주목한 것이죠. 내가 함께 살고 있는 아내나 남편에게 마음을 쏟기 시작했던 그때, 그때의 그 사람은 그리고 나는 서로를 위해 어떤 태도와 행동을 했던가요? 서로의 말을 경청하고, 신뢰하고 존중해 주는 것을 보고 느끼면서 우리는 안심하고 관심받고 있음을 느꼈을 겁니다. 그 느낌은 번역이나 통역이 없이도 서로에게 전달되었겠지요.

세월이 흐른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을 생각해보세요. 여전히 존중과 관심을 느끼며 함께 있으면 특별한 기분이 들게 하는 사람과 살고 계신가요? 아니면 자막과 번역 없이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가 되어 버리진 않았나요? 만약 후자라면 내가 좋아했던 그 사람을 위해 했던 행동들을 다시 한번 되돌려 볼 때입니다. 내가 어린 시절 같이 있고 싶어했던 사람들이 내게 해 주었던 것들처럼 말이죠.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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