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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에듀] 스탠퍼드대 폴김 교수의 그림책 만들기 영어 학습법 효과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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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대학 폴 김 교수(스탠퍼드 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부학장) [사진 이은주 교사]

스탠퍼드 대학 폴 김 교수(스탠퍼드 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부학장) [사진 이은주 교사]

초등학생 글로벌 프로젝트, 전 세계 6백만부 배포되다

‘교수님, 우리 아이들이 공부의 목적도 알지 못한 채, 입시교육에 치이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지, 우리가 진정으로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고 싶습니다.’
지난해 여름, 스탠퍼드 대학의 폴 김 교수(스탠퍼드 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부학장)는 한국의 한 초등교사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그가 주도하는 ‘1001 스토리 프로젝트’(개발도상국 아이들의 경험담을 번역해 그림책으로 출간·배포하는 사업)에 초등학교 학생들이 참여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폴 김 교수는 2016년 유엔 미래 교육혁신기술에 선정된 ‘SMILE 프로젝트’를 포함해 다수의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한 세계적인 교육공학자다. 그가 승낙 메일을 보낸 지 불과 3개월 만에 학생들은 프로젝트를 완성했고, 이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지난해 말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학교를 직접 방문해 학생들을 만났다.
이메일 한 통으로 해외 석학과 학생들을 만나도록 주선한 주인공은 서울 선사초 이은주 교사(영어). 학부와 대학원에서 초등영어교육을 전공한 그는 공교육 영어수업의 혁신을 목표로 다양한 시도를 하다 우연히 폴 김 교수의 강의를 듣게 됐다. 그는 김 교수의 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들이 많은 것을 얻을 것으로 확신했다.
“평소 아이들이 일상생활에서는 잘 사용할 수 없는 ‘입시영어’를 공부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들이 그동안 공부한 지식을 타인을 돕는 데 의미 있게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어요.”(이 교사)

스토리에 맞게 그림을 그리며 그림책을 제작하고 있다. [사진 이은주 교사]

스토리에 맞게 그림을 그리며 그림책을 제작하고 있다. [사진 이은주 교사]

아이들은 진지하게 프로젝트에 임했다. 6학년 7개 학급이 모두 참여해 정규 수업 진도를 나가는 틈틈이 시간을 투입했다. 영어로 된 스토리를 우리말로 번역했고, 친구들이 번역한 문장을 검토하고 다듬었다. 스토리에 맞게 그림을 그렸고 두꺼운 보드북 재질로 책을 인쇄했다.

'우리들의 영웅, 존(John the hero)' [사진 이은주 교사]

'우리들의 영웅, 존(John the hero)' [사진 이은주 교사]

6학년 전체 아이들의 목소리로 ‘우리들의 영웅, 존(John the hero)'이라는 책을 한글·영어판 모두 녹음하는 것으로 장장 3개월에 걸친 프로젝트가 마무리됐다. 이렇게 공들인 작업을 완성한 뒤 깜짝 방문한 폴 김 교수의 등장과 강연, 이어진 질의응답은 아이들의 마음을 뜨겁게 했다.
“교수님을 만난 뒤 아이들에게서 ‘삶의 목적이 생겼다’ ‘꿈이 생겼다’ ‘공부 열심히 할 거다’란 말을 많이 들어요. 저는 이 프로젝트를 작년 한 해 동안 제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이 교사)
학생들이 프로젝트 결과물로 만든 그림책은 6백만부가 인쇄돼 전 세계로 배포된다. 이 교사는 학교의 지원 아래 올해도 계속 프로젝트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세계적 교육공학자 스탠퍼드대 폴 김 교수의 교육 프로그램 #서울 선사초 이은주 교사, 학생들과 함께 교실서 실천 #"입시 교육의 틀 깬 진짜 공부의 즐거움을 느꼈다"

먹고 만들며 꾸며가는 창의적이고 행복한 영어 공교육 수업

영어 그림책 [사진 이은주 교사]

영어 그림책 [사진 이은주 교사]

그가 이렇게 정규 수업 시간에 프로젝트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2015 개정 교육과정으로 영어 교과서의 분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교과서 분량이 줄어든 만큼 교사가 교육과정을 재구성해 창의적인 수업을 설계할 수 있었다.
영어를 포함한 교육 전반에 걸친 혁신적인 수업방법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연구를 해온 그는 인터넷상에서 3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따스의교육 이야기(blog.naver.com/cozy82)'를 운영하는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다.
이 교사가 수업 시간에 주로 활용하는 도구는 영어 그림책. 폴 김 교수의 프로젝트처럼 영어 그림책을 만들 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영어 그림책을 활용한 수업을 한다.
“영어 그림책은 창의적인 작가들의 창의적 언어 사용의 사례가 담겨 있는 좋은 자료입니다. 인공지능이 앵무새처럼 번역해줄 수 있는 단순 번역으로서의 영어가 아니라, 언어가 감각적이고 창의적으로 사용된 사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고 싶었죠.”
영어원서라면 겁부터 내는 아이들이 그림책을 긍정적으로 느끼게 하기 위해 그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적용했다. 6학년 영어 교과 과정에 포함된 서수를 가르칠 때는 유대인들이 아이에게 글자를 처음 가르칠 때 손가락에 꿀을 찍어 글자를 쓰게 하고는 꿀을 빨아 먹도록 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서수를 나타낸 재미있는 그림책을 골라 읽어준 뒤, 배운 숫자의 개수만큼 초콜릿 볼을 나눠줬다. 단순 반복적으로 나열되는 어휘를 익힐 땐 ‘foot, noon..'처럼 알파벳 ’oo'가 포함된 단어들만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동그란 시리얼 볼로 단어를 꾸며보기도 했다.
한 해 동안 공들인 수업의 결과는 6학년 학생들의 영어졸업작품에서 드러났다. 6학년 교과서에서 배운 영어 표현들만 활용해, 자신만의 그림책을 만들어보게 한 것. 아이들은 교과서 문장만으로 기발한 발상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들어냈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부쩍 상승했다.
그는 “초등학교 공교육에서 의사소통 중심의 영어수업이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났고, 해외에서 견학을 올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면서도 “아직도 많은 아이가 학교 밖에선 영어를 소리로 듣고 입으로 말하는 방법 대신, 눈으로 보고 문제를 푸는 방식의 공부를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초등학교 영어교육의 목표에 대해 “최대한 많은 영어 소리를 듣고, 영어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며, 가벼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하라”고 조언했다.

이지은 객원기자는 중앙일보 교육섹션 '열려라 공부' 'NIE연구소' 등에서 교육 전문 기자로 11년간 일했다. 2017년에는 『지금 시작하는 엄마표 미래교육』이라는 책을 출간했으며 지금은 교육전문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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