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혁 자존심에 외국 지원 거부 희생자 24만 명으로 불어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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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0세기 최악의 지진 참사로 기록되는 중국 탕산(唐山) 대지진이 28일로 30주년을 맞는다. 리히터 규모 7.8의 강진으로 24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공식 발표됐지만 일부 외국 전문가들은 80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측한다. 문화혁명이 한창이던 때 발생했기에 인명 피해의 원인을 둘러싼 정치적인 논란도 적지 않다. 중국 언론은 당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획기사를 활발히 내보내며 사건을 재조명하고 있다.

◆ "정치 싸움에 빠져 지진 예보 흘려 들어"=최근 보도에 따르면 지진 발생 16일 전 탕산에서 열린 전문가 회의에서 큰 지진이 날 것 같다는 예보가 이미 나왔으며 지진국은 지진 징조가 잡힐 경우 재빨리 보고해 달라는 주문도 했다.

그러나 지도부는 이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당시 사인방(四人幇)이 주도하는 문화혁명 말기 정국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민생을 위한 재해 대처보다 내부 힘겨루기에 열중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 구조와 발표 모두 늑장=지진 발생 뒤 미국과 영국.일본 등에서 지원 제의가 왔지만 화궈펑(華國鋒) 당시 총리는 "외국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다"며 모두 거절했다. 중국의 한 언론 보도는 "그 결과 해방군의 낡은 군사용 장비로만 구조 작업을 펴는 바람에 시간을 지나치게 허비해 인명 피해가 커졌다"고 전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존심만 내세운 당시 지도부의 오판이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사망자가 24만 명에 이른다는 발표도 지진 발생 3년 뒤에나 나왔다. 피해 사실이 곧이곧대로 공표될 경우 문책을 당할 수 있는 관료들의 전횡이라는 비판이다.

◆ 인재(人災)의 요인 많아= 당시 지진은 리히터 규모 7.8이었지만 건물들의 내진(耐震) 수준은 리히터 규모 6을 겨우 견딜 정도여서 대부분 무너졌다.

일부 언론은 "당시 빵 공장 하나만 그대로 버텼는데 이는 국가 규정에 따라 내진 설비가 리히터 8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탕산 지역은 상습 지진대에 속해 있고 대형 지진이 예상돼 높은 내진 기준을 마련했으나 실제 적용은 거의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 민심 달래기 부산=중국 정부는 탕산에 초대형 지진 기념관을 짓고 3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펼쳐 당시의 불행을 씻어버릴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의 잘못을 요모조모 지적한 책의 판매를 금지하고 자유주의적 성향의 작가와 언론인들의 저술을 조심스럽게 막고 있다.

1980년대 한국 대학가의 대표적인 의식화 교재였던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이영희 저)에는 자본주의 대국인 미국 뉴욕의 대정전 때 있었던 혼란과 비교하며 대지진을 이겨낸 중국 사회주의의 건전성을 높게 평가하는 대목이 있다.

그러나 정작 중국인들은 이러한 논리에 어리둥절한 편이다. 인재 요인이 많은 데다 혼란과 아픔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이제 탕산에서 지진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중국인들 마음 속에는 아직 상처가 남아 있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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