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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풀어달라” 2000명 넘어…두가지 부류의 신청자들

중앙일보

입력

9일 오후 2시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 다양한 연령대의 십여명이 ‘박근혜 대통령 형집행정지를 청원합니다’고 적힌 갈색 서류봉투를 들고 중앙지검 청사로 줄지어 들어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수감된 지 1000일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검찰에 접수된 박 전 대통령 형 집행정지 신청 건수는 2000건이 넘었다. 형집행정지는 '인도적으로 형의 집행을 계속하는 것이 가혹하다고 보여지는 사유가 있을 때 검사 지휘에 의해 수형 생활을 정지하는 것'이다.

9일 오후 2시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형 집행정지를 신청하러 온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다. 정진호 기자

9일 오후 2시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형 집행정지를 신청하러 온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다. 정진호 기자

3개월 2087명, 어떻게 모였나

형 집행정지 신청은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평일 오후 2시마다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14일에 첫 접수가 이뤄진 이후 9일까지 2087명이 참여했다.

대부분이 현장 접수다. 4개월여 동안 총 2000여명이 박 전 대통령 형 집행정지 신청을 위해 서초동을 오갔던 셈이다. 7일과 이날 중앙지검 청사 앞에서 만난 사람들은 “특정 정당이나 단체와는 관련 없다”며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힘을 보태기 위해 서초동에 나왔다”고 입을 모았다.

일종의 캠페인성 운동인 형 집행정지 신청은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과 지난 대선 자유한국당 중앙선거대책위 대변인을 지낸 정준길 변호사가 주도하는 모양새다. 류 전 위원장은 자신의 유튜브 방송과 주말 광화문 집회 등을 통해 형 집행정지 신청을 홍보한다.

유튜브나 집회 현장에서 이 소식을 듣고 참여 의사가 있는 사람들은 서초역 1번 출구에서 모인다. 그 후 류 전 최고위원 등이 운영하는 서초역 인근 사무실에서 신청서를 작성한다고 한다. 이들은 이 사무실을 ‘임시정부’라고 불렀다.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이들의 유형을 둘로 나눠봤다.

7일 서울중앙지검에 접수된 형 집행정지 신청서. 정진호 기자

7일 서울중앙지검에 접수된 형 집행정지 신청서. 정진호 기자

유형① "박근혜, 안타깝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변연우(56)씨는 “박 전 대통령 당선 전에는 ‘박사모’ 활동을 하는 등 오랜 기간 그를 지지해왔다”며 “정치 공작에 의해 박 전 대통령이 억울하게 희생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또 “주말에 광화문 집회에 나가는 것과는 별개로 법적으로도 박 전 대통령을 위한 행동을 하고 싶어 형 집행정지 신청서를 냈다”고 덧붙였다. 서초동에서 일하고 있다는 김모(71)씨는 “지나가다가 형 집행정지 신청을 하는 것을 보고 참여했다”며 “박 전 대통령은 어렸을 때 부모를 여윈 가여운 사람인데 설령 어떤 잘못을 했다고 한들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말했다.

유형② "문재인 싫다, 촛불 죄책감" 

이처럼 전통적인 박 전 대통령 지지층도 있지만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으로 형 집행정지에 참여하는 사람도 다수다. 문 대통령의 대척점이 박 전 대통령이라고 인식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류 전 최고위원은 “최근엔 박 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사람들도 많이 온다”고 말했다.

강남에서 사업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한 김효정(53)씨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비리를 알게 된 이후 형 집행정지까지 참여했다”며 “전 정부 때 세월호 집회를 지원하고 촛불도 들었지만 최근 조 전 장관 사태를 보면서 이번 정부가 위선적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김씨는 “조 전 장관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정부가 원칙까지 어기는 모습을 보면서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수감된 박 전 대통령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졌다”고 덧붙였다. 서울 강북구에 사는 박재용(32)씨는 “나는 상당히 젊은 편이지만 애초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마음이 있었다”며 “그래도 적극적으로 활동하진 않았는데 지금 정부 경제정책 등은 정말 좀 아니지 않냐. 그 분노 때문에 잠시 생업을 접고 서초동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9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범보수단체 주최로 열린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 우상조 기자

지난해 10월 9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범보수단체 주최로 열린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 우상조 기자

박 전 대통령 풀려날 가능성은

앞서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가 형 집행정지를 신청해 두 차례 심의가 열렸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4월과 9월 서울중앙지검은 “심의위원회 심의 결과 박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형 집행으로 건강을 해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는 상태’로 보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형 집행정지를 신청한다고 검찰이 심의위를 열지는 않는다"며 "형 집행정지의 법률적 요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실제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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