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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열병 관광통제 100일…민통선 주민들 “생계 막혔다”

중앙일보

입력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막으려다 주민 생계 꽉 막혔다. 대책 없는 출입통제 재개하라.”
“과잉통제 못 살겠다. 우리 보고 죽으란 거냐. 파주 안보관광 즉시 재개하라.”

8일 오전 10시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내인 경기도 파주시 통일촌, 해마루촌, 대성동 마을 등 3개 정착촌에 사는 주민과 문산읍 상인 등 250여명이 통일대교 남단에 모였다. 트랙터 12대를 동원하고 나와 피켓을 든 주민들은 지난해 10월 2일부터 99일째 중단되고 있는 안보관광 재개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파주 민통선 주민들은 앞선 지난해 11월 8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시위를 벌인데 이어 2개월 만에 시위를 본격적으로 재개하고 나섰다.

파주 지역에서는 지난해 9월 국내 최초로 ASF가 발병한 후 확산 방지를 위해 DMZ(비무장지대) 안보관광 중단과 민통선 출입통제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와 파주시는 ASF 확산을 막기 위해 민통선 내 주민들의 관광수입 터전이 되는 도라전망대·제3땅굴·도라산역 등에 대한 안보 관광을 통제하고 있다.

파주 민통선 주민 등 250여명, 통일대교서 시위

이완배 통일촌 이장은 “정부와 파주시는 아무런 대책 없이 3개월 넘게 안보관광을 중단하고 관광통제만 하고 있어 주민들이 생존권을 수호하기 위해 집회에 나섰다”며 “민통선 내 안보관광이 재개될 때까지 주민들은 집회를 지속해서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민통선 지역을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하고 피해주민에게 마땅한 보상을 해야 한다”며 “환경부 장관은 사람이 야생 멧돼지 접촉으로 ASF에 감염된 사실이 있는지 철저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마을 주민들과 문산읍 상인 등이 8일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에서 집회를 열고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관련, 민통선 안보관광 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조봉연씨]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마을 주민들과 문산읍 상인 등이 8일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에서 집회를 열고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관련, 민통선 안보관광 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조봉연씨]

조봉연 해마루촌 농촌체험마을 추진위원장은 “ASF 확산 방지를 위해 3개월이 넘도록 DMZ 관광, 시티투어, 임진강 생태탐방 등의 안보관광이 중단되는 바람에 관광객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민통선 주민들이 심각한 생계 피해를 보고 있다”며 “관광객이 논밭에는 들어가지 않은 민통선 관광을 무조건 막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민통선 주민들은 “안보 관광객은 차량으로 정해진 장소만 견학한다”면서 “관광객이 ASF를 옮긴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파주시 “즉각 안보관광 재개” vs 정부 “추가 울타리 설치”

이와 관련, 파주시는 지난해 말부터 안보관광 중단에 따른 주요 관광지의 관광객 감소로 지역 상권과 주민 피해가 발생하자 긴급 대책 회의를 열고, 정부에 안보관광 재개를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파주 안보 관광 지역 내 설치된 2차 울타리 내에 남은 야생 멧돼지를 모두 잡거나 죽은 야생 멧돼지의 ASF 검사를 벌여 추가 감염 가능성이 없는 경우, 위험도가 낮아졌다고 판단 가능할 때 관광이 재개될 수 있다는 검토 결과를 시에 통보한 상태다.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마을 주민들과 문산읍 상인 등이 8일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에서 집회를 열고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관련, 민통선 안보관광 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조봉연씨]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마을 주민들과 문산읍 상인 등이 8일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에서 집회를 열고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관련, 민통선 안보관광 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조봉연씨]

안승면 파주시 관광과장은 “중앙부처에 관광 재개를 계속 건의하고 있는데, 정부 측이 ‘지자체가 민통선 내 1차, 2차 울타리 외에 추가 울타리를 치고 야생 멧돼지를 다 잡은 뒤에 재개방을 검토하겠다’고 해 언제 관광이 재개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파주에서는 지난해 9월 17일 연다산동에서 국내 처음 ASF가 발병한 뒤 지난해 문산읍까지 5곳의 양돈농장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말 ASF 차단 방역을 위해 파주지역 111개 농가의 돼지 11만538마리를 전량 수매하거나 살처분 처리해 없애는 특단의 조치를 했다.

민통선 야생 멧돼지 폐사체에선 ASF 바이러스 검출 잇따라

이런 가운데 민통선 일대에서 야생 멧돼지 폐사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계속 검출되고 있다. 연천군과 파주시의 민통선 안에서 발견된 야생 멧돼지 폐사체 2마리에서 ASF 바이러스가 지난 7일 검출됐다. 이어 8일엔 강원도 화천군과 경기도 연천군 민통선 안에서 발견된 멧돼지 야생 폐사체 2마리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이로써 야생 멧돼지 폐사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발견된 사례는 연천 26건, 파주 22건, 철원 17건, 화천 1건으로 총 66건이 됐다. 정원화 국립환경과학원 생물안전연구팀장은 “민통선 내 2차 울타리 내에서는 감염된 폐사체가 더 나올 수 있어 수색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연천군 민통선 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석우 연천임진강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임진강 빙애여울은 전 세계에 3000여 마리만 남은 멸종 위기 희귀 겨울 철새인 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2호)의 최대 월동지”라며 “빙애여울을 방문하면 이색적인 겨울 생태관광과 자연학습이 가능한 데 현재 민통선 관광 중단이 겨우내 중단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빙애여울에는 지난해 11월부터 두루미와 재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3호) 600여 마리가 시베리아에서 날아와 현재 월동 중이다.

지난 1일 경기도 연천군 중면 민통선 내 임진강 빙애여울 두루미 월동지 모습. [사진 이석우씨]

지난 1일 경기도 연천군 중면 민통선 내 임진강 빙애여울 두루미 월동지 모습. [사진 이석우씨]

연천 민통선 두루미 월동지, 안보관광도 3개월째 중단

연천 민통선 내인 남방한계선 철책 부근 태풍전망대는 휴전선 남측 11개 전망대 가운데 북한과 가장 가까이 있다. 북한 최전방 지역을 망원경으로 조망할 수 있다. 중부전선의 가장 인기 있는 안보 관광지다.

인근에 임진강 빙애여울 두루미 월동지를 조망할 수 있는 임진강평화습지원도 있다. 이석우 공동대표는 “현재 연천 민통선 지역에서는 방역 활동이 철저히 이뤄지고 있는 데다 도로변의 제한된 장소에서만 이뤄지는 연천 민통선 관광으로 인해 ASF 확산 가능성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지역 관광 및 경제 활성화를 위해 민통선 생태·안보 관광이 즉각 재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일 경기도 연천군 중면 민통선 내 임진강 빙애여울 두루미 월동지 모습. [사진 이석우씨]

지난 1일 경기도 연천군 중면 민통선 내 임진강 빙애여울 두루미 월동지 모습. [사진 이석우씨]

임진강 빙애여울 위치도. [중앙포토]

임진강 빙애여울 위치도. [중앙포토]

연천에서는 지난해 9월 18일 백학면에 이어 지난해 10월 10일 신서면 등 2개 양돈농장에서 ASF 확진 판정을 받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신서면에서 또다시 ASF가 발생하자 74개 모든 양돈농가의 총 19만7000마리 돼지를 모두 살처분하거나 수매해 없앴다.

파주·연천=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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