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우중민주주의 … 천민자본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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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치적 의사결정이 집중되면 독재정치가 되고, 경제적 의사결정이 집중되면 관치 계획경제가 되거나 독점자본주의가 된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려면 권력이 분산되고 상호 견제와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시장경제를 제대로 하려면 경제주체들의 이익 추구 행위가 시장에서 견제와 균형을 이뤄야만 한다.

시장경제에서 경제주체들의 이기심에 대한 견제와 균형은 시장경쟁에 의해 이뤄진다. 정치권력이 분산될수록 국민의 인권과 자유가 증진되듯이, 시장에서는 경쟁이 활성화될수록 소비자들의 선택과 복지가 증가한다. 민주주의를 한다면서 국민정서와 떼쓰기가 법과 원칙에 우선한다면 무늬만 민주주의인 우중(愚衆)민주주의가 되듯이, 시장경제를 한다면서 경제주체들이 울타리 쌓기와 갈라먹기로 독점이윤과 공짜소득을 추구하면 천민(賤民)자본주의가 된다.

어느 사회에서나 권력은 집중을 원한다. 집권자들은 항상 정치권력의 집중을 추구했고, 기업들은 시장지배력의 집중을 추구했다. 그것이 쉽게 통치하고 쉽게 돈 버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경제에 새로운 권력이 나타났다. 노동조합을 포함한 농민, 교사, 각종 직능단체 등 이익집단들이 그들이다. 이들도 과거 독재정권과 재벌이 그랬듯이 집요하게 권력 집중을 추구하고 있다. 덩치를 키워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고 정부에 압력을 넣어 보호막을 치고 경쟁과 개방을 막아 독점이윤을 추구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려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목소리 큰 이익집단들의 주장이 한결같이 경쟁 거부, 개방 반대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들이 겉으로는 국익과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과연 이들이 남을 위해 이렇게 자기네 시간과 돈을 쓰면서 집단행동을 할까? 요즘 일부 노조가 산업별 노조로 전환을 추진하는 것도 덩치를 키워 독점이윤을 더 늘려보겠다는 전형적인 독점적 행태일 뿐이다. 각종 직능단체가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는 것이나, 농민들이 농산물 개방을 반대하는 것이나, 배우들이 스크린 쿼터를 지키자고 하고 전교조가 교육평준화에 매달리는 것은 모두 명분이야 어쨌든 경쟁 없이 편하게 먹고 살겠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이기심의 발로일 뿐이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이것을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익집단의 이기적 행동이 법질서 테두리를 넘어 불법과 폭력, 떼쓰기에 호소하고, 공권력이 무력화되면서 더 이상 견제받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견제받지 않는 독재권력이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유린하듯이, 견제받지 않는 경제권력도 국민의 선택과 경제적 복지를 제약하게 된다. 특히 조직된 이익집단이 권력화하면 그들이 획득하는 이득은 결국 조직화하지 못한 대다수의 서민과 취약계층으로부터 나온다.

헌법에 시장경제를 한다고 써있다는 것만으로 시장경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 경제가 활력을 잃고 침체상태에 빠져 있는 것은 결코 단기적인 경기순환의 결과가 아니다. 한국 시장경제의 기본 규칙과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다.

견제와 균형, 법질서 준수와 수요자 선택권의 보장은 기업뿐 아니라 노동조합과 모든 이익집단에도 적용돼야 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이다. 지금 각종 이익집단의 무분별하고 폭력적인 발호로 인해 한국 정치는 우중민주주의, 한국 경제는 천민자본주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침 며칠 전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와 경제에서 소비자 주권이 실현돼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 주권은 소비자가 선택을 할 수 있을 때 보장된다. 정치와 경제에서 견제와 균형, 그리고 공정경쟁이 확립돼야 진정한 소비자 주권이 실현될 것이다. 이제 정치인들만을 위한 정치, 이익집단만을 위한 경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