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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야수’ 폼페이오, 2020년은 결단의 해…백악관 입성 기로에 서다

중앙일보

입력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2020년은 그에게 중대한 결단을 내리는 해가 될 전망이다. [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2020년은 그에게 중대한 결단을 내리는 해가 될 전망이다. [연합뉴스]

1986년 미국 웨스트포인트 육군 사관학교 졸업식에 있다고 상상해보자. 새하얀 군복 차림으로 소위로 막 임관해 경례를 하는 젊은 군인들 사이, 낯익은 얼굴 두 명이 보일 것이다. 한반도 정세의 핵심 인물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다. 웨스트포인트 동기인 이들은 34년 후인 지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외교ㆍ안보 분야 참모다. 폼페이오는 수석 졸업자였다.

그 중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각별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말 방한해 경기 오산 공군기지에서 주한미군 장병들을 만났을 때 장녀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과 폼페이오 장관을 연단으로 불렀다. 그리고는 “아름다운 커플 아니냐”라며 좌중의 박수를 유도했다. 그리고는 폼페이오 장관에게 “마이크, 이건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 아냐?”라며 활짝 웃었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두 참모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준 셈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판문점에서 깜짝 회동을 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의 기분이 한창 들떴을 때였다.

지난해 6월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기도 오산 미군 기지에서 연설 중 폼페이오 장관과 장녀 이방카를 불러들이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6월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기도 오산 미군 기지에서 연설 중 폼페이오 장관과 장녀 이방카를 불러들이고 있다. [뉴시스]

폼페이오 장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애정은 워싱턴 정가에선 유명하다. 미국의 종합주간지 뉴요커는 지난해 8월 ‘마이크 폼페이오: 트럼프 담당 장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폼페이오가 국무부 장관(Secretary of State)이라기 보다는 트럼프 담당 장관(Secretary of Trump)라는 언어 유희성 헤드라인이다. 그만큼 폼페이오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신뢰는 두텁다. 트럼프가 군 출신 인사들을 편애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폼페이오는 각별하다는 게 워싱턴의 정론이다.

폼페이오 역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해왔다. 여기 사진 한 장이 말해준다. 지난해 1월, 북ㆍ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일행이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들으며 다들 표정이 굳어있는 가운데 유독 폼페이오 한 명만 환한 미소를 만면에 띠고 경청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월 백악관에서 북한 대표단을 접견하고 있다. 모두의 표정이 심각한 가운데 폼페이오 장관(오른쪽에서 두번째)만 환히 웃는 표정이다.                       [트위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월 백악관에서 북한 대표단을 접견하고 있다. 모두의 표정이 심각한 가운데 폼페이오 장관(오른쪽에서 두번째)만 환히 웃는 표정이다. [트위터]

백악관 사정에 정통한 미국 외교소식통은 지난해 기자에게 “폼페이오의 중요한 역할은 트럼프 대통령을 힐링해주는 것”이라 귀띔한 적이 있다. 한국의 외교소식통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유독 폼페이오 장관을 찾는다는 얘기가 들려온다”며 “군인 특유의 충성심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탄핵이 갈라놓은 브로맨스  

그러나 사랑은 영원하지 않은 법.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 사이의 브로맨스에도 지난해 말부터 적신호가 켜졌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리면서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핵심은 트럼프가 지난 7월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를 하면서 협박을 했다는 것이다. 올해 대선 레이스의 강력한 라이벌인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아들의 우크라이나 회사 근무 관련 스캔들을 조사하라고 압박하면서, 응하지 않을 경우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를 끊겠다는 게 협박 내용의 핵심이다. 외교 관계인만큼 관장하는 장관은 물론 폼페이오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 사이가 서먹해졌다는 얘기가 돈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 사이가 서먹해졌다는 얘기가 돈다. [AP=연합뉴스]

탄핵 절차의 시작이었던 하원 청문회에서 윌리엄 테일러 우크라이나 대사 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자 브로맨스엔 금이 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람들은 실수를 하기 마련이지만 폼페이오가 그(테일러)를 임명한 건 실수”라고 트윗으로 공개 불평을 한 것이다. 이 시점을 전후해 워싱턴 정가에선 “폼페이오가 캔자스 상원의원 출마를 염두에 두고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해졌다. 일종의 출구전략이다.

사실 폼페이오의 꿈은 국무부 장관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에겐 원대한 꿈이 있으니, 바로 백악관 입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맹목에 가까운 충성을 보인 것도 ‘포스트 트럼프’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나왔다. 폼페이오는 캔자스주 하원의원 시절엔 트럼프 당시 대선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의 눈에 든 뒤 중앙정보국(CIA) 국장 직에 이어 국무장관을 맡으면서 그는 표변했다. 스포트라이트도 즐겼다. 수차례 북ㆍ미 대화에서 키맨으로 활약하며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지난 2018년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는 폼페이오 장관. [연합뉴스]

지난 2018년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는 폼페이오 장관. [연합뉴스]

여기서 잠시 의문. 왜 굳이 캔자스 상원의원을 찍고 가려는 것일까.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명쾌한 답을 내놨다. "미국에선 장관직만으론 백악관 입성이 힘들다. 주지사 또는 상원의원으로 일반 유권자들과의 접촉면을 늘린 후에 가는 게 정석이다."

CIA 국장→국무장관→상원의원→백악관?  

우크라이나 사태는 그에게 여러모로 시험대다. 최근 국무부 내에서 폼페이오 장관에 대한 인기가 바닥을 쳤다는 얘기가 들린다. 외교를 관장하는 국무부 장관이 동료와 후배 외교관의 편에 서지 않고 어정쩡한 입장을 취했다는 이유에서다. 포기 바텀(Foggy Bottomㆍ국무부가 있는 지역) 사정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원래도 국무부 내에서 ‘외교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평이 있었는데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로 인기가 바닥을 쳤다”고 전했다. 그로서는 이래저래 국무부 탈출을 실행에 옮길 때가 무르익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공화당에서도 폼페이오의 출마에 대해선 호의적이라고 한다. 중앙일보 취재 결과 미치 맥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폼페이오 장관에게 “출마해도 괜찮다”는 뜻을 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지난달 31일 통화에서 “공화당 내에선 99% 이상이 폼페이오의 캔자스 출마에 문제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공천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얘기다.

대선의 꿈을 키우고 있는 폼페이오 장관은 일반 시민과의 접촉면도 넓히고 있다. 사진은 그가 국무부 행사에서 방문객들과 셀카를 찍는 모습. [AP=연합뉴스]

대선의 꿈을 키우고 있는 폼페이오 장관은 일반 시민과의 접촉면도 넓히고 있다. 사진은 그가 국무부 행사에서 방문객들과 셀카를 찍는 모습. [AP=연합뉴스]

캔자스는 마침 현직 공화당 의원인 팻 로버츠가 83세 고령 등을 이유로 불출마를 선언한 상황. 공천만 된다면 무주공산이다. 폼페이오 역시 지난해 북ㆍ미 대화가 한창인 가운데 주류 언론을 빼놓고 캔자스 지역 라디오 방송인 KCMO와 인터뷰를 하는 등, ‘캔자스 연가’를 불러왔다. 최근엔 개인 계정을 개설했는데, 백악관 크리스마스 트리에 있는 캔자스 관련 장식을 사진 찍어 올리는 등 의도를 더 노골화하고 있다. 이밖에도 앞치마를 두르고 반바지만 입은채 부엌에 있는 모습이나, 애견 사진을 찍어올리는 등, 유권자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본격화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최근 시작한 개인 트위터 계정.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일을 하는 친근한 이미지를 담았다. [트위터]

폼페이오 장관이 최근 시작한 개인 트위터 계정.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일을 하는 친근한 이미지를 담았다. [트위터]

하지만 역시 발목을 잡는 건 우크라이나 사태다. 제임스 김 선임연구위원은 지난달 31일 통화에서 “탄핵 절차에서 폼페이오가 주요 플레이어인만큼 (의회가) 소환권을 발동한다면 폼페이오로서는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게 도리”라며 “상원의원 출마 선언은 6월까지 하면 되니 그때까지 여러 가능성을 저울질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일단 상원의원 출마 가능성을 부인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폭스 앤 프렌즈’ 프로그램에 출연해 “내 인생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왔지만 (캔자스 상원의원 출마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여기(국무부)에 머무르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일하는 임무(mission)를 계속 수행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국무장관 공식 계정에서도 1일(현지시간) "지난해처럼 앞으로도 미국의 외교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물론 진심인지는 그만이 알 것이다.

다시 웨스트포인트 졸업식으로 돌아가보자. 폼페이오는 이런 선서를 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며, 속임수를 쓰거나 도둑질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참고 넘기지도 않겠습니다.” 정치인으로서의 그의 삶이 이 선서에 부합할지는 2020년이 말해줄 터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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