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view] 김정은 “미, 핵 말고도 또다른 표적 정해”…인권 압박 염두 둔듯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당 중앙위 전원회의 결과보고에는 핵·미사일 시험 유예(모라토리엄) 파기 위협 외에도 중요한 메시지들이 숨어 있다. 1만자가 넘는 발표문 디테일에 숨은 악마가 무엇인지 전문가들의 분석을 빌어 ‘번역기’를 돌려봤다.

전원회의 결과보고 속 숨은 메시지 #“쟁쟁한 인재부대 성장 성과” 언급 #핵 폐기해도 재건 가능하다는 뜻

김 위원장은 “핵 문제가 아니고라도 미국은 또 다른 그 무엇을 표적으로 정하고…군사·정치적 위협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핵을 포기해도 미국이 다른 꼬투리를 잡을 테니 비핵화를 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인권 압박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발표문 중 국가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표현이 네 차례나 등장하는 것도 인권 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것이다. 신 센터장은 “‘미국이 근본 이익과 배치되는 요구를 한다’고도 했는데, 핵과 인권 등으로 체제를 흔들려 한다는 불만”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미래의 안전’을 포기하지 않겠다고도 두 번 말한다. ‘억제력’ ‘범접할 수 없는 힘’ 등의 표현도 다섯 차례 나온다. 이는 핵 고도화 수단, 즉 ‘미래핵’ 능력의 강화를 뜻한다는 분석이다. 지난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뒤 문재인 대통령은 “풍계리 핵실험장에 이어 동창리 엔진시험장을 폐기한다면 이는 미래 핵 능력의 폐기”라고 했는데, 이를 뒤집은 셈이다.

김 위원장은 “국방공업부문 일꾼들과 과학자들은 지난 3년 간 간고한 투쟁을 벌여 핵전쟁 억제력을 틀어쥐던 그 기세로”라고도 했다. 3년이면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등 고강도 도발이 잇따르던 2017년뿐 아니라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온 2018·2019년도 포함한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북한이 한·미에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해놓고도 핵능력은 계속 강화해왔다는 뜻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당에서 구상하던 전략무기체계들이 수중에 하나씩 쥐어졌다”며 “이런 비약은 우리의 군사기술적 강세를 불가역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CVID) 중 ‘I’(Irreversible)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표현이다.

또 핵억제력을 언급하며 “절대병기들도 성과이지만, 이 과정을 통해 과학기술의 쟁쟁한 인재부대가 자라난 것이 당이 더 소중히 여기는 성과”라고도 한 것을 보면 이는 더 명확해진다. 이른바 ‘핵 두뇌’로 일컬어지는 과학자들이 건재한 이상 핵을 폐기하더라도 충분히 재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기술력을 확보했으니 언제든 전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라며 “북한은 이제 기존에 만들어놓은 핵은 그대로 보유한 채 핵능력을 더 쌓고 그 능력을 없애는 협상으로 끌고가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이 “정면돌파전에서 승리하자면 강력한 정치외교적 담보가 있어야 한다”고 한 것은 중·러와의 관계 강화를 시사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 추가 도발 시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추진할 경우에 대비해 거부권이 있는 중·러를 확실한 우군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유지혜 국제외교안보에디터 wisepe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