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통찰] 휘둘린 외교, 미래 기술력 없으면 또 당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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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이 간다. 우리 대통령은 그냥 시진핑 하는 얘기기만 듣고 있었다. '홍콩, 신장 문제가 나오면 뚜렷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는 게 우리의 전략이었다. 그런데 중국 측 발표는 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홍콩과 신장 문제는 중국 내정임을 인정(认为)했다'라고 돼 있다.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았다. 외교 무례다. 나쁜 놈들~ 다시 중국 비난 여론이 들끓는다.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냥 중국 외교에 휘둘렸을 뿐이라고…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그런 일 자주 일어날 것이다. 힘의 역학 변화가 낳은 결과다. 힘세진 중국은 한국을 점점 더 옛 속방(屬邦) 보듯 대한다. 상대적으로 약해진 한국은 이런 중국을 제어할 힘을 점점 잃어간다. 지렛대가 없다. ‘제발 한 번 다녀가시라’며 시진핑 소맷자락을 잡고, '사드'를 해제해달라 '애걸'하는 한국을 보며 그들은 힘의 역학을 즐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회담을 갖기전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회담을 갖기전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시진핑이 온들 무엇이 달라질까. 공식적으로 시행한 적도 없다는 '사드 한한령'을 풀어달라면, "그래 이제 풀어줄게"라며 풀어줄까...중국은 계산법은 다르다. '조금만 더 흔들면 미국하고도 떼어놓을 수 있겠는데~' 그들은 지금 한국을 그렇게 보고 있다. 시진핑이 내년 한국에 온다면 그 목적 때문일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나?

중국을 움직일 지렛대가 약하기 때문이다.

그 지렛대는 무엇인가? 두 나라 숏 스토리를 보면 된다. 수교한 게 1992년이다. 천안문 사태(1989년) 여파로 개혁개방이 주춤하던 시기였다. 미국 등 서방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었다. 중국은 한국이 필요했다. 한국도 중국이 필요했다. 오로지 북한 측에 붙어있던 중국을 우리 쪽으로 끌어와야 했다. 기업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공할 시장도 필요했다.

이 메커니즘의 고리가 압도적인 기술우위다. 성공적이었다. 중국은 때론 북한 주장을 무시하고 한국 편에 서기도 했다. 기업은 맘껏 대륙 시장 개척에 뛰어들었다. 보이지 않는 여러 특혜를 얻기도 했다. 기술 덕택이다. 그들은 그렇게 한국 기술을 탐냈고, 가져갔다.

일이 터졌다. '사드' 하나로 두 나라 관계가 헝클어졌다. 중국 얼굴이 싸늘하게 돌변했다. 북한을 움직여 달라는 우리의 요구에도 꿈쩍 않는다. 중국에 진출했던 한국 기업들은 (현지 기업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싸다구’를 얻어맞았다. "싫으면 나가~!" 얼얼한 볼을 움켜쥐고 울분을 토하지만, 달리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되느냐고 항변해봐야 소용없다. 숨겨졌던 그들이 본성이 다시 살아났을 뿐이니 말이다. 중화DNA다.

한국은 매력을 잃었다. 그 매력의 실체가 한류, K-Pop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그건 끊으면 그만이다. 그게 한한령이다. 매력의 실체는 기술력이다. 그게 중국에 맞설 힘이다. 없으면 그냥 '싸다구' 신세다.

우리에게 남은 기술력이 무엇이던가? 반도체 하나다. 중국이 사드를 이유로 보복의 칼을 휘두를 때도 감히 반도체에는 손대지 못했다. 반도체 빼고는 모두 '싸다구'를 맞았다. 반도체가 있으니 이나마 한국을 돌아본다. 알량한 자존심도 지킬 수 있었다.

중국을 움직일 지렛대가 없다면 한국 외교는 중국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중국을 움직일 지렛대가 없다면 한국 외교는 중국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좋아질까?

아쉽지만 아니다.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시진핑은 문 대통령을 만난 그 날 아베도 만났다. 공산당 기관지 신화사는 한중 정상회담 결과를 전했듯, 한일 정상회담도 보도했다. 보도 전문을 보면, 몇몇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필자가 주목하는 건 이 부분이다.

시진핑은 아베와의 회담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Iot 등의 영역에서 서로 협력을 강화하자"(在人工智能、大数据、物联网等领域加强互利合作)

소위 4차산업 혁명 분야 협력을 늘려나가자는 제안이다.

문재인 대통령과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굳이 찾자면 '혁신분야 연구개발 협력을 늘린다(深化创新研发合作)' 정도다. 뭉뚱그려 애매하게 표현했다. AI, Big Data, Iot 등 구체적인 항목을 들며 제안했던 아베와의 대화와는 큰 차이다. 요즘 중국이 '역사 원수' 일본에 추파를 던지는 이유다.

한국은 미래 산업 협력에서도 멀리 두는 존재다. 필자는 이번 문-시 회담에서 중국의 그 속내를 봤다.

답은 분명하다.

시진핑 소맷자락 붙잡아 봐야 아무런 소용없다. '사드' 해제해달라고 애걸해봤자 우리만 초라해진다. 차라리 그 시간에 어떻게 하면 기술우위를 만들어갈지 고민해야 한다. 자강과 혁신이 최고의 대중국 외교 지렛대라는 얘기다. 그것 없으면 한중 협력의 미래는 없다. 휘둘릴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우리는 과연 중국에 맞설 기술우위를 창출하고 있는가?"를 말이다. 반성, 또 반성...정치권, 정부, 기업 모두 돌이켜 살펴야 한다.

차이나랩 한우덕 (http://naver.m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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