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열기 뜨거운 베트남, 다음엔 골프 한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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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KPGA 프로이자 국가대표 감독 출신 설정덕 교수가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성호준 기자

KPGA 프로이자 국가대표 감독 출신 설정덕 교수가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성호준 기자

대여섯살쯤 돼 보이는 꼬마들이 베트남 호치민시의 작은 아파트 단지 앞 공원에서 축구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이 일으킨 축구 신드롬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베트남 교민 노병영씨는 “이달 초 베트남 22세 이하 축구 대표팀이 동남아시아(SEA) 게임에서 우승할 때는 2002년 한국이 월드컵에서 4강에 올랐을 때보다 훨씬 열기가 뜨거웠다. 젊은이들이 모두 나와 축제를 벌였다”고 말했다. 노씨는 “베트남 사람들은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여겼던 지역 맹주 태국을 이긴 것에 크게 고무돼 있다. 사람들의 행복 지수와 자신감도 확 오른 것 같다”고 했다.

호치민 똔득탕 대학에 첫 골프학과 #중앙대 설정덕 교수가 큰 역할

아이돌 스타들이 불러일으킨 한류와 박항서 감독의 축구붐에 이어 이번엔 한국 골프가 베트남으로 건너갔다. 호치민에 있는 신흥 명문인 똔득탕 대학은 한국의 도움으로 올해 하반기 골프학과를 개설했다. 베트남에서 처음 생긴 골프학과다. 똔득탕 대학은 중앙대의 커리큘럼을 그대로 쓴다. 중앙대 교수들이 일주일간 베트남으로 출장을 가서 집중 강의를 한다. 똔득탕대 대학원생 4명이 중앙대에서 공부하고 있다. 골프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한 설정덕(52) 중앙대 교수가 다리를 놨다. 올해 안식년을 맞은 설정덕 교수는 한국 골프를 알리기 위해 세 차례 베트남에 건너갔다. 두 대학의 업무협약을 만들고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국내 업체가 만든 골프 시뮬레이터도 이 학교에 기증했다. 똔득탕대 스포츠 과학대학 응엔 반 박 학장은 “설 교수가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도와줬다. 학자이자 프로이며 감독을 역임해 베트남 골프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박항서 축구 감독도 지난 10월 똔득탕 대학을 방문했다. 응엔 반 박 학장은 “박항서 감독의 방문에 학교 전체가 들썩였다. 특히 박항서 감독이 ‘설정덕 교수는 베트남 골프를 키울 수 있는 분’이라고 해서 자부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 감독과 설 교수는 2002년 아시안게임 당시 한국의 축구, 골프 대표 감독을 맡았던 인연이 있다. 설 교수는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묻는 사이인데, 베트남에서 수퍼스타인 박항서 감독이 친구라고 해주니 고마울 뿐이다. K-골프 발전에도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베트남의 골프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골프장 수가 100개가 안 된다. 골프 붐을 일으키려면 스타선수가 나와야 한다. 이에 대해 골프학과 학생인 응웬 슈안 티엔 닷(18)은 “축구가 그랬던 것처럼 베트남 사람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설정덕 교수는 “축구에 이어 골프도 힘을 합쳐 베트남에서 스포츠 한류 돌풍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 관계 증진에도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똔득탕대는 베트남 통일 후 첫 주석을 지낸 똔득탕의 이름을 딴 학교다. 1997년에 개교해 역사가 짧지만, 공학·경제학·외국어 등 실용학문에 특화해 빠르게 성장했다.

호치민=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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