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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경찰에 침 뱉고 욕설하고…시위 아니라 폭력이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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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 회원들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하다 이를 제지하는 경찰의 멱살을 잡고 있다. [뉴스1]

보수단체 회원들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하다 이를 제지하는 경찰의 멱살을 잡고 있다. [뉴스1]

“니가 뭔데 막아, 너도 빨갱이지, 이 XX야.”

16일 오전 11시쯤 국회의사당 본관 앞.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500여명의 시위대 중 한 명이 20대 경찰관의 멱살을 잡았다. 이들은 “공수처ㆍ선거법 날치기한 국회의원들을 잡으러 가자“며 본관 안쪽으로 난입하려던 참이었다. 이를 제지하려던 경찰에게 시위대는 욕설을 하고 침을 뱉었다. 근처 천막에서 농성을 하던 정의당 당원들은 시위대에게 머리채를 잡혔다. 경찰은 시위대 중 한 명을 경찰관 폭행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했다.

국회는 즉시 출입구와 정문을 봉쇄했지만 시위대는 끝없이 몰려들었다. 오후에 정문 앞에서 또 한번 경찰과 시위대 사이 충돌이 벌어졌다. 경찰이 “시민들의 안전을 생각해 물러가달라”는 경고를 해도 통하지 않았다. 수백 명의 시위대와 경찰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선 “사람이 깔렸다”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주춤한 경찰 틈을 뚫고 난입한 시위대는 꽹과리와 북을 울리며 동상에 올라가 고함을 질렀다.

오늘 오후 2시쯤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안쪽으로 진입하려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박사라 기자.

오늘 오후 2시쯤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안쪽으로 진입하려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박사라 기자.

한 50대 여성에게 다가가 “왜 이렇게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국회에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게 무엇이 잘못됐느냐”며 호통을 쳤다. 이들이 분노한 나름의 이유는 있다.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서다. 모두 찬반 갈등이 심한 법안들이다. 자유한국당은 이를 ‘2대 악법’으로 규정하고 이날 국회 앞 본관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행사는 1시간 만에 끝났지만 시위대가 “국회의원들에게 직접 항의하겠다”며 국회에 남아 농성을 벌인 것이다.

법안 항의한다더니 의원 폭행까지 

하지만 이들의 항의 방식을 정상적인 민의(民意) 전달이라 할 수 있을까. 이날 시위대가 여당 의원들과 접촉할 기회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오후 3시 20분쯤에는 국회의사당 후문을 나오려던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시위대가 발견하고 다가갔다. 그러나 이들이 홍 의원에게 전달한 건 법안에 대한 항의가 아닌 “이북으로 가라” “빨갱이 ”같은 원색적인 폭언에 불과했다. 같은 시각 의원회관으로 이동하던 설훈 최고위원은 시위대에게 맞아 안경이 날아갔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차량이 주차된 곳 앞에는 “개XX”라고 적힌 팻말이 놓였다.

문희상 국회의장에 대한 욕설이 적힌 팻말.

문희상 국회의장에 대한 욕설이 적힌 팻말.

한국당 지도부는 시위대를 자제시키기는커녕 불씨를 키웠다. 황교안 대표는 한 차례 물리 충돌이 벌어진 뒤에도 “여기 들어오신 게 승리한 거다”며 시위대를 독려했다. 심재철 원내대표는 “처음부터 국회 진입을 허가해주면 될 것을 왜 문을 걸어 잠그냐”며 되려 국회 사무처를 비판했다. 하지만 이날 집회는 엄연히 불법이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회의사당 청사로부터 100m 이내의 장소는 시위가 금지돼 있다. 국회 바깥에서만 신고 절차를 거친 뒤 시위가 가능하다. 정치권이 관행적으로 ‘규탄 대회’ 또는 ‘결의 대회’라는 이름으로 내규를 어겨가며 국회 안에서 집회를 열어왔을 뿐이다.

인근 경찰 업무 마비…일부 폭행도 당해 

통제 안 된 분노는 1000여명의 경찰들이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수많은 경찰이 시위대에게 밀쳐지고, 욕설을 듣고, 침을 맞았다. 인근 경찰 업무도 마비됐다. 관할인 영등포경찰서로는 시위대를 감당하지 못해 인근 마포경찰서와 용산경찰서에서도 지원 인력을 투입했다. 경찰 관계자는 “서에 인력이 전부 시위 현장에 나가 있는 바람에 정상적으로 업무를 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과거에도 국회에 지지자들이 난입한 사례는 있지만 이렇게 많은 인력이 국회를 점거한 적은 없었다. 매주 국회나 청와대 앞에서 자유롭게 벌어지는 집회는 민주주의의 상징이지만 그 안까지 마구잡이로 들어가는 건 얘기가 다르다. 국회의원의 멱살을 잡고 ‘내 말대로 하라’며 위협하는 걸 민주주의라 말할 사람은 없다. 국회 안에서 몸싸움을 하던 의원들을 비난하던 게 누구인가. 폭력이 아닌 대화와 타협으로 정치를 하자며 ‘국회선진화법’을 만든 정치인들은 어디 갔는가. 힘의 논리로 연말을 마무리하는 국회의 풍경은 씁쓸하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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