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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트럭이 깡통처럼 찌그러져 있었다” 소방관들이 본 참사 살풍경

중앙일보

입력

경북 상주소방서 구조2팀 팀원들. 왼쪽부터 이택진(36) 소방교, 안재찬(49) 팀장, 최희수(47) 소방위, 김효재(32) 소방사. 신혜연 기자

경북 상주소방서 구조2팀 팀원들. 왼쪽부터 이택진(36) 소방교, 안재찬(49) 팀장, 최희수(47) 소방위, 김효재(32) 소방사. 신혜연 기자

“20년을 근무했는데 이런 현장은 본 적이 없어요. 전쟁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연쇄추돌 현장 첫출동 상주소방서 구조2팀 #안재찬 팀장과 김효재·이택진·최희수 팀원 #노력했지만…“모두 구하지 못해” 안타까움

경북 상주소방서 최희수(47) 소방위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14일 오전 4시 43분과 4시 48분쯤 경북 군위군 소보면 상주~영천고속도로 상행선(상주 기점 26.4㎞)과 하행선(상주 기점 31㎞)에서 잇따라 연쇄 추돌 사고가 벌어졌다. 추돌한 차량이 두 사고를 합쳐 50대나 됐다.

당시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해 가장 마지막에 나온 사람은 상주소방서 구조2팀 팀원들이다. 15일 오후 상주소방서 사무실에서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안재찬(49) 팀장, 김효재(32) 소방사, 이택진(36) 소방교, 최희수 소방위를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해 들었다.

14일 오전 경북 군위군 소보면 상주-영천고속도로에서 다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현장에서 차량이 불타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오전 경북 군위군 소보면 상주-영천고속도로에서 다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현장에서 차량이 불타고 있다. [연합뉴스]

20㎏ 구조장비 들고 현장으로 전력질주

당시 사고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최 소방위는 “현장에 도착했을 때 차량 여러 대가 화염에 휩싸여 있었고 화학제품 타는 연기가 심하게 났다. 타이어와 트럭 내용물들이 타는 냄새였다. 해가 뜨기 전이라 깜깜해 잘 보이지도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사고 현장에 접근하는 것도 어려웠다.  14일 오전 출동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구조2팀은 불이 나고 있는 현장 안쪽에 트럭 운전사가 갇혀 있다는 걸 파악하고 구조에 나섰다. 트럭으로부터 600m 떨어진 지점에 차를 세웠다. 2차선 도로는 뒤죽박죽된 차들로 도저히 차량이 들어갈 수 없었다.  20㎏에 달하는 유압기와 유압호스·펌프·고임목·들것 등을 4명이 나눠 들고 사고 현장으로 전력 질주했다. “한 사람당 15~20㎏씩은 든 것 같다. 지금 팔에 다들 파스 하나씩 붙이고 있다”고 이 소방교가 말했다.

14일 오전 경북 군위군 소보면 상주-영천고속도로에서 다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화재 진압 후 현장 모습. [사진 경북소방본부]

14일 오전 경북 군위군 소보면 상주-영천고속도로에서 다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화재 진압 후 현장 모습. [사진 경북소방본부]

바닥은 온통 빙판길이었다. 안 팀장은 “바닥 곳곳에 언 부분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빙판처럼 전체가 얼어 있더라고요. 뒤뚱거리며 걸어가야 했습니다”고 말했다. 출동 차량조차 휘청일 정도였다. 최 소방위는 “출동 차량에 스노타이어를 장착했는데도 커브길 이후로 계속 우측으로 밀렸다. 사고 지점에서 200m 떨어진 곳이었다. 큰일 날 뻔했다”고 했다.

구조 과정에 주변 시민들도 힘 보탰다

현장에 도착하니 트럭 운전사는 운전석에 축 늘어진 채 “아프다”는 말만 겨우 하고 있었다. 앞범퍼가 없는 대형 트럭인 탓에 잔뜩 찌그러진 차 앞 좌석에 운전자의 몸이 끼어있는 상황이었다. 운전자의 의식은 있지만, 하반신 골절로 스스로 움직이지는 못했다. 구조대는 유압기로 문을 뜯어내고 들것으로 환자를 옮겼다. 옮기는 과정에서 주변 시민들이 손을 보태기도 했다.

트럭 운전사를 구출한 뒤에는 승용차에 타고 있던 이들을 구하러 갔다. 트럭 뒤 차들은 도착 당시 이미 최성기(불이 가장 큰 상태)였다. 손 쓸 도리가 없어 불에 탄 시신들은 마지막에 수습하기로 했다. 이 승용차 역시 깡통처럼 구겨져 있었다. 운전자를 구하고 나중에 보니 조수석 쪽에 여성이 앉아있는 게 확인됐다. 화물차 범퍼가 조수석을 짓누르면서 구조대는 물론 다른 시민들도 처음에는 동석자가 있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승용차에 탔던 이들은 병원으로 옮겨진 뒤 모두 숨졌다.

안 팀장은 “불에 탄 시신까지 여섯 분을 구조했으나 결과적으로 트럭운전사 한 분밖에 못 구한 게 됐다”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시민들이 사고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신고를 해주고, 현장에서 들것을 함께 옮겨주는 등 여러모로 도움을 줬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블랙 아이스 생기기 좋은 곳…매년 출동”

소방대원들은 해당 구간이 평소에도 사고가 자주 나는 곳이라고 증언했다. 안 팀장은 “이 지역은 고가도로가 많아 블랙 아이스가 생기기 좋다. 청주에서 내려오는 내리막길이기도 하고, 커브 길도 있어 위험하다. 거의 매년 그 장소로 출동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2월 이곳에선 12중 추돌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안 팀장은 “다만 이번 사고에서는 사상자가 다른 때보다 늘어난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새벽 4시 40분쯤 출동한 구조2팀은 오후 1시가 돼서야 상주소방서로 돌아왔다. 혹시라도 차에 깔려있던 이들이 있을까 점검을 마친 뒤, 제일 마지막으로 현장을 떠났다.

상주=신혜연·김정석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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