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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몸살 앓고있는 백령도…페트병 주워보니 죄다 중국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인천녹색연합 장정구 정책위원과 박정운 황해물범사민사업단장이 백령도 하늬해변으로 떠밀려온 중국산 페트병 쓰레기를 살펴보고 있다. 해변 100m에서 70여 개가 수거됐다. 강찬수 기자

인천녹색연합 장정구 정책위원과 박정운 황해물범사민사업단장이 백령도 하늬해변으로 떠밀려온 중국산 페트병 쓰레기를 살펴보고 있다. 해변 100m에서 70여 개가 수거됐다. 강찬수 기자

서해 백령도의 하늬해변.
인천 연안부두에서 출발한 여객선이 4시간가량 달려 도착하는 백령도 용기포 신항에서 북쪽으로 1㎞ 남짓 떨어진 모래 해변이다.
백령도에서도 점박이물범이 휴식하는 바위섬과 그 너머로 북한 장산곶이 건너다보이는 서쪽 해안에 해당하는 곳이다.

백령도 해변으로 떠밀려 온 중국산 생수병. 강찬수 기자

백령도 해변으로 떠밀려 온 중국산 생수병. 강찬수 기자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 바다는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印堂水)로 알려져 있다. 백령도에는 심청각도 있다.
하지만 심청을 살려준 연꽃 대신 중국산 생수 페트병만 둥둥 떠다니고 있다.

<플라스틱 아일랜드> 1. 이 많은 쓰레기들 어디서 왔을까

지난 10월 11일 인천녹색연합의 장정구 정책위원과 박정운 황해물범시민사업단장과 함께 둘러본 이곳은 크고 작은 페트병 쓰레기 천지였다.
취재 기자는 장 위원 등과 함께 군부대가 설치해 놓은 경계용 울타리 바깥 모래 해변을 걸으면서 흩어져 있는 페트병을 수거했다.

70여 개 페트병 모두가 중국산 

 백령도 하늬해변에서 수거된 페트병. 상표로 보면 모두가 중국산임을 알 수 있다. 강찬수 기자

백령도 하늬해변에서 수거된 페트병. 상표로 보면 모두가 중국산임을 알 수 있다. 강찬수 기자

3명이 100m 정도를 이동하면서 20여 분 동안 수거한 페트병은 70여 개에 이르렀다. 페트병 상표에 적힌 글씨를 보니 모두가 중국산이었다.

‘津美乐(진미락)’이니 ‘鴨綠江(압록강)’, ‘梨花谷(이화곡)’이라고 한자가 적힌 생수병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水晶葡萄(수정포도)’ 같은 음료수병도 눈에 띄었다.

모래 해변 반대쪽 경계용 울타리 너머에도 쓰레기 더미가 가득했다. 지뢰지대여서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울타리가 일부 쓰러진 탓에 그 안쪽까지 쓰레기들이 파도와 바람에 떠밀려 들어간 모양이었다. 페트병은 물론, 농구공 모양의 검은 플라스틱 부이나 스티로폼 부이도 많았다.

해변과 도로를 잇는 통문 옆에는 마대자루 7~8개에 이미 페트병 등이 가득 차 있었고, 그 옆에도 100개 정도 페트병이 쌓여 있었다. 취재팀은 이날 모아들인 페트병도 이곳에 가져다 놓았다.

자갈 사이엔 병뚜껑과 라이터가

백령도 연화리 해변에서 수거한 섬 쓰레기. 페트병은 없었지만, 플라스틱 라이터나 병 뚜껑이 많았다. 강찬수 기자

백령도 연화리 해변에서 수거한 섬 쓰레기. 페트병은 없었지만, 플라스틱 라이터나 병 뚜껑이 많았다. 강찬수 기자

백령도 서쪽 해안인 연화리 해변은 자갈이 깔려 있었다. 멀리서는 쓰레기가 보이지 않았지만,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플라스틱 생수병 뚜껑들, 일회용 라이터, 끊어진 노끈들이 자갈 틈에 흩어져 있었다.

취재팀은 대략 가로 60m, 폭 20m 면적을 정해 10분 정도 쓰레기를 모았더니 병뚜껑이 48개, 라이터가 29개나 됐다. 라이터에 적힌 글자로 파악해보니 한국산이 3개, 중국산이 6개였다.

백령도 연화리 해변에서 수거된 섬 쓰레기. 강찬수 기자

백령도 연화리 해변에서 수거된 섬 쓰레기. 강찬수 기자

쓰레기 쌓인 사곶 천연 비행장

천연비행장인 사곶 해변에도 쓰레기가 떠밀려와 주민들이 축대 아래로 옮겨놓았다. 강찬수 기자

천연비행장인 사곶 해변에도 쓰레기가 떠밀려와 주민들이 축대 아래로 옮겨놓았다. 강찬수 기자

용기포 신항에서 동쪽으로 600여m 떨어진 사곶해안. 천연비행장으로 알려진 고운 모래 해안이고, 천연기념물 제391호다. 자동차가 달리는 모습도 간간이 볼 수 있었다.

해변 가장자리 콘크리트 축대(옹벽) 아래에는 바다 쓰레기가 잔뜩 모여 있었다. 해변에 밀려온 쓰레기를 주민들이 군데군데 모아놓은 것이었는데, 여기서도 스티로폼이나 검은색 플라스틱 부이가 눈에 띄었다. 꽃게잡이 통발 6~7개가 모래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 일회용 그물도 뒤엉켜 있었다.

백령도 사곶해변에 버려진 꽃게잡이 통발. 강찬수 기자

백령도 사곶해변에 버려진 꽃게잡이 통발. 강찬수 기자

장 위원은 일회용 그물을 가리키며 “요즘은 어민들이 그물에 걸린 생선을 빨리 떼 내려고 아예 그물을 끊고 생선을 꺼내고 버린다”며 “해변에 이렇게 쓰레기를 모아놓았지만, 파도에 휩쓸려 다시 바다로 나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해변에 모인 쓰레기들은 주민들이 인천시가 지원하는 공공근로 사업으로 모은 것들이다. 주민들이 줄을 묶은 플라스틱 상자에 끌고 다니면서 해변 쓰레기를 모으기도 하고, 집게로 쓰레기를 주워 마대 자루에 담기도 했다. 60대 주민은 “일주일 사흘 정도 해변에 나와서 쓰레기를 줍는다”고 말했다.

육지로 못 가고 쌓인 해양 쓰레기

백령도 폐기물 집하장 한쪽에 쌓아놓은 해양쓰레기. 강찬수 기자

백령도 폐기물 집하장 한쪽에 쌓아놓은 해양쓰레기. 강찬수 기자

백령도가 속한 인천시의 연간 해양 쓰레기 수거 예산은 국비와 지방비를 더해 77억 원. 원래는 한강 등에서 떠내려오는 쓰레기를 한강하구와 연평도 사이에서 수거하는 데 사용하게 돼 있지만, 백령도 주변 쓰레기를 모으는 데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모은 쓰레기는 백령도 내에 쌓아뒀다가 가끔 육지로 가져 나간다. 지난 10월 12일 취재팀이 찾아간 백령도 내 건설폐기물 집하장 한쪽에는 수백 개 마대자루에 나눠 담긴 해양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어떤 마대자루는 만지면 그대로 부스러지기도 했다.
장 위원은 “섬에서 발생하는 생활 쓰레기는 섬에서 그대로 처리, 소각하지만, 해양 쓰레기는  육지로 나가 처리하는데, 마대자루 상태로 봐서는 2~3년 동안 육지로 가져가지 않은 채 계속 쌓여있었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바다 쓰레기는 스티로폼 조각 등 덩어리가 커 다루기가 어렵고, 염분도 있어 소각 시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이 발생하기 때문에 소각하기를 꺼려 전처리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섬에서는 지역 주민이나 어민이 해양 쓰레기를 보통 부두 근처에 모아 놓게 되는데, 태풍이라도 불면 기껏 모아놓은 쓰레기가 다시 바다로 날려가기 일쑤라는 것이다.
장 위원은 “수거 인력이 점차 노령화하고, 집하장도 부족하거나 부실하고, 육지로 제때 가져가지 않아 섬 쓰레기는 계속 쌓이기만 한다”고 말했다.

백령도=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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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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