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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고다이라 같은 선수 우정, 도쿄 올림픽서 살아나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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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5호 02면

하시모토 세이코 도쿄 올림픽 장관

64년 올림픽 주경기장이었던 국립경기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신축한 주경기장. [연합뉴스]

64년 올림픽 주경기장이었던 국립경기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신축한 주경기장.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하는 총리대신 관저 맞은편에 정부 중앙합동청사 8호관이 있다. 그 건물 11층에 하시모토 세이코(橋本 聖子) 2020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담당 장관의 집무실이 있다.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을 총괄하는 하시모토 장관을 만나기 전 조율 작업이 필요했다. 장관 측에서는 사전 질문지를 요청했고, 인터뷰 시간은 20분밖에 줄 수 없다고 했다. 인터뷰 직전에도 담당 공보관이 “질문지에 없는 돌발 질문은 삼가 달라”고 부탁했다.

한국 언론과 첫 인터뷰 #선수 보호 차원 삿포로서 마라톤 #올림픽·패럴림픽 연계 스토리 구상 #서핑 등 젊은층 즐기는 종목 추가 #모든 경기장 티켓 100% 판매 목표

그럴 만도 했다. 전임 올림픽 담당 장관이 지난 9월 수차례 설화(說禍)로 인해 옷을 벗었고, 하시모토 장관이 부임했다.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부정적인 이슈들이 돌출되고 있다. 더구나 한·일 관계는 팽팽한 긴장 속에 있는데 부임 후 한국 언론과 첫 인터뷰였다.

하시모토 장관은 겨울·여름 올림픽에 모두 출전한 올림피언이다. ‘눈과 얼음의 도시’ 삿포로 출신인 그는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1500m에서 동메달을 땄다. 90년 삿포로 아시안게임에서는 빙속 4관왕을 차지했다. 사이클 선수로 88 서울, 92 바르셀로나, 96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메달은 따지 못했다. 95년 참의원 선거에 비례대표로 당선됐고, 일본빙상연맹 회장으로서 2014 소치 겨울올림픽을 진두 지휘하기도 했다.

하시모토 장관은 각 질문에 두 장 정도의 답변지를 준비해 왔다. 그는 “이번 대회는 동일본대지진으로부터 회복되어 가는 일본의 부흥을 전 세계에 알림과 동시에 패럴림픽의 위상을 한 단계 높여줄 기회”라고 정의했다.

64년 올림픽둥이, 이름도 성화에서 따와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내년 대회는 그동안 열렸던 올림픽과 무엇이 다릅니까.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처음으로 패럴림픽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고 실제 경기가 이루어졌습니다. 2020년은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처음으로 같은 도시에서 두 번 개최되는 대회가 됩니다. 참가국 수는 내년 6월께 확정되겠지만 역대 가장 많은 나라가 참가하는 올림픽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또한 내년 대회는 모든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티켓 판매율 100%를 실현하는 대회가 될 것입니다. 올해 일본에서 열린 럭비월드컵에서 일본이 8강까지 진출하면서 거의 모든 경기장이 관중으로 가득 찼습니다. 내년에도 이런 일이 반드시 일어날 거라 믿습니다.”
패럴림픽의 비중이 커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대회는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개·폐막식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대회로 연결시킵니다. (올림픽) 개회, 폐막, (패럴림픽) 개회, 폐막을 4부작의 스토리로 구성하는 겁니다. 이는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한층 강화시킬 것이며, 도쿄가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장벽 없는) 도시라는 점을 알리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저도 선수 시절 부상을 당한 적이 있어 장애인들의 부자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1964년 올림픽과 2020 올림픽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1964년은 제가 태어난 해입니다. 앗, 나이를 들켜버렸네요(웃음). 제 이름 세이코(聖子)도 성화(聖火)에서 따온 것입니다. 올림픽이 열린 해에 태어난 아이라는 뜻이죠. 64년은 전후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던 때였습니다. 일본은 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에 패전 이후의 경제적 번영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신칸센과 수도고속도로 건설, 쓰레기 없는 아름다운 거리 만들기에 성공했습니다. 이번 대회는 일본이라는 국가에 한정되지 않고 전 세계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책을 찾는 대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어떻게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런 글로벌한 관점이 64년과 다른 점이 되겠죠.”
대회를 위협하는 요인, 이를테면 안전·무더위·방사능 등에 대한 대책은 무엇입니까.
“최근에는 시기를 불문하고 태풍과 지진, 호우 등이 발생합니다. 우리 조직위는 어떤 경우에도 안전한 대회가 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할 것입니다. 특히 무더위 대책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습니다. 마라톤 경기는 무더위를 피해 삿포로에서 열리는 것으로 공식 결정됐습니다. (2019년 9월)  도하 세계육상대회 마라톤 경기에서 거의 절반의 선수가 기권을 하였습니다. IOC가 이것을 보고 선수의 안전을 위해 마라톤 개최지 변경을 권고했고, 일본 조직위도 받아들였습니다.”

하시모토 장관은 첨예한 이슈가 되고 있는 방사능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슬쩍 넘어갔다. 방사능 누출 지역인 후쿠시마에서 야구 경기를 열고, 후쿠시마산 농산물을 선수촌 식자재로 사용하겠다는 일본 조직위 방침에 대해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올림피언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시모토 장관은 지난 9월 “안전성이 확보된 식재(食材)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를 보여주고 사실과 다른 점이 없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제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시간 관계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올림픽 빙상 동메달, 사이클 출전하기도

이번 대회 일본 선수단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이번 올림픽에서 일본은 금메달 목표를 30개로 정했습니다. 최근에는 참가국 수가 늘어나면서 금메달이 분산되고 있습니다. 30개 금메달이라면 세계 3위 정도가 될 것으로 봅니다. 패럴림픽은 7위를 목표로 하는데 이를 상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올림픽은 자국 선수의 성적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적 여하에 따라 올림픽 붐이 일거에 일어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럭비월드컵이 그것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도쿄 올림픽에 새로 추가된 종목(서핑·스포츠클라이밍·3X3농구·가라테 등)이 어떤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십니까.
“젊은 세대의 올림픽 참가를 위해 종목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재미와 도전 등이 올림픽에서 조금씩 구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관객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의 채택으로 드러납니다. 빙상 단체전(팀추월)도 이런 움직임의 하나입니다. 이번에 추가된 종목들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스포츠 비즈니스와 밀접한 연관을 가집니다.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젊은이들이 즐기는 스포츠의 비즈니스가 보다 활발하게 전개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스피드스케이팅과 사이클로 겨울·여름 올림픽에 모두 참가하셨는데요.
“서구에서는 스피드스케이팅과 사이클을 동시에 하는 선수들이 많습니다. 육상 선수가 봅슬레이(썰매)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서구의 경우 특정 종목 선수들에 대한 심층 조사를 통해 사실은 그 선수가 다른 종목에서 더 많은 재능과 가능성이 있다는 걸 발견해 내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케이트와 사이클은 매치가 잘 되는 종목입니다. 저도 구 동독 선수로부터 자극을 받아 겨울 동안은 스케이트에, 여름에는 사이클에 도전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첫 여름 올림픽 참가가 88 서울 올림픽이었습니다. 올림픽 개막 전 서울에서 합숙을 하면서 한국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성화 주자로서 서울 시내를 뛴 경험은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하시모토 장관은 "지난해 평창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고다이라와 이상화 선수의 우정이 돋보였다”며 “일본과 한국 선수 사이의 오랜 우정은 국가 간 우정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했습니다. 이런 우정이 내년 올림픽에서도 살아나기를 원합니다. 많은 한국 국민이 내년 올림픽을 보러 오기를 바랍니다”고 인사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지난 10월 도하에서 야마시타 야스히로 도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만나 욱일기 사용과 독도 표기, 후쿠시마산 식자재의 안전성 등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대한체육회는 올림픽 출전 선수들을 위한 급식지원센터 운영 계획도 세워놨다. 일본이 진정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평화의 제전’은 깊은 생채기를 남길 수밖에 없다.

인터뷰는 예정 시간을 넘겨 40분 가까이 진행됐다. 우리는 내년을 기약하며 웃으면서 헤어졌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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