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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의 시시각각

읍참도 없고 마속도 없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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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와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70년 대한민국 선거사에 길이 남은 불후의 선거 구호다. 하나는 이승만 대통령의 여당, 다른 하나는 그에 맞선 야당이 내걸었다. 집권당은 국론 분열, 야당은 국정 혼란을 앞세워 표심을 자극했다. 따지고 보면 비슷한 구호의 무한 변형 되풀이다. 뭉쳐야 산다. 무조건 바꾸겠다고 해야 먹힌다. 정치가 모르지 않는다.

목숨 건 단식 후 전원사표 받고는 #마속으로 돌려막아 그냥 옛날정치 #통합과 쇄신은 도대체 언제 하나

불과 넉 달 앞둔 이번 총선도 예외가 아니다. 게다가 지금 야당은 두 가지 구호를 함께 거머쥐었다. 문재인 정권은 나라 전체를 싸움터로 몰았다. 오로지 지지층 결집과 확전에만 몰두한다. 매가리 없는 경제는 일본형 장기 불황의 문턱 앞이다. 일본과 싸우고 한·미동맹은 흔들려 고립무원인데 북한은 조롱하고 겁박한다. 야당 노릇엔 판이 좋다. 문제는 변함없이 죽을 쑤는 야당이다.

자기 편만 챙기는 코드 인사, 코드 정책을 손가락질하자면 자기는 좀 달라야 한다. 그런데 한국당 당직 개편은 거꾸로 갔다. 엄동설한에 노상(路上)을 고집하고 소금섭취까지 거부했다는 황교안 대표의 단식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죽기를 각오한 결기로 길을 나섰다면 진짜 ‘읍참마속’이 나와야 한다. 당직자 35명 전원의 일괄 사표를 받을 땐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마속 자리에 또 다른 마속이다. 그러곤 중진 자리에 초선 앉혔다고 ‘쇄신’이란다.

나이가 중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젊다고 구태 정치인, 정치 철새가 없는 게 아니고 귀감이 될 선배와 중진도 많다. 중요한 건 내용이고 진정성이다. 거의 반세기 전 YS, DJ의 40대 기수론이 먹힌 건 ‘우리도 이젠 할만한 때가 됐다’는 생물학적 나이론이 통해서가 아니다. 국민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 힘으로 콘크리트 같던 기성의 벽을 뛰어 넘었다.

코드 정책도 그렇다. 한국당은 입만 열면 경제와 안보는 보수라고 하지만 그런 비전과 가치관, 국가관이 행동의 선택 기준이 되는 건 별로 본 적이 없다. 당장 지금 예산 국회가 그렇다. 지위나 이익이 보장되면 굳이 당을 가리지도 않는다. 과거에만 매달리는 집권당이라고 비난하는데 과거로만 과거로만 향하기론 거기서 거기다.

지금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분들을 뽑은 ‘진박 공천’이 보수 정치가 무너진 계기다. 그건 왜 그랬느냐면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는 왕조적, 전체주의적 사고가 출발점이다. 국회의원은 그냥 벼슬길, 출세길이다. 그러니 당엔 확립된 권위에 지나치게 순종적이고 다른 목소리에 신경질적인 DNA가 넘친다. 주로 보스만 바라본다. 그리고 보스는 줄곧 ‘기승전-문재인 탓’이다.

정권 실패엔 ‘못살겠다 갈아보자’고 용기 있게 외쳐야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고, 오로지 그것 뿐이라면 곤란하다는 게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론이다. 국회의원 대출도서 1위였다는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에서 그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들으면 역설적이게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코끼리’라고 한다. 사람이란 누군가의 만들어진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건데, 반대만 하던 미국 민주당이 그래서 졌다는 것이다.

‘내려 놓겠다’ ‘변하겠다’ ‘통합해야 한다’는 말만으로 적당히 분칠하다 한국당은 선거마다 대패했다. 그러고도 여전히 바람 따라 물결 따라 흘러 다닌다. 그러니 대폭 강화한 총선 부적격 기준을 내놔도 감흥을 못산다. 오히려 국민 눈과 귀를 잡은 건 발표하던 날 한국당에 입당한 박찬주 전 사령관이었다. 설사 젊은 층과 여성을 발탁한다 해도 구색 갖추기용일 거란 냉소다.

황 대표는 엊그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모두가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지만 정작 스스로 변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일갈했다”고 한다. 한국당 처지가 지금 그렇다. 모두가 안다. 그게 한국당 쇄신론이 뜨지 않는 이유다. 한국당도 안다. 한국당이 모르는 게 아니어서 더 딱한 일이다.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