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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재연되는 엄중한 한반도 안보 위기, 정부는 현실 직시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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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반도 안보 상황이 다시 험악해지고 있다. 북한이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미사일 엔진 연소실험을 하고,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했다. 북한은 연소실험에 이어 이달 크리스마스 이전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또는 이를 위장한 인공위성을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 이같은 도발 행위에 미국은 북한을 더욱 옥죄거나 군사옵션을 다시 꺼내 들 수 있다고 한다. 그 결과는 오로지 전쟁으로 비화할 뻔한 2017년 악몽의 재연이다. 지난 2년간 북한 비핵화를 위해 들인 공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비핵화 협상 기간이 그동안 오히려 북한에 핵무장과 ICBM 개발 시간만 벌어준 꼴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손을 놓고 있는 듯한 정부의 분위기에 우려가 크다.

북한 미사일 엔진 실험에 미국은 안보리 소집 #연말 북 ICBM 발사에 대비, 치밀한 대책 절실

지난 7일 북한이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실시한 미사일 엔진 연소시험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의미를 지닌다. 북한은 그동안 이 발사장에서 대부분 ICBM용 엔진을 시험했다. 북한은 2017년에도 3월 18일 엔진 연소시험 나흘 뒤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북한은 시험 다음 날인 지난 8일 국방과학원 대변인 명의의 발표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이라며 “머지않아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북한)의 전략적 지위(핵과 ICBM 능력)를 또 한 번 변화시키는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 말대로 발사장 주변엔 시험 흔적이 뚜렷했다. 미국의 미사일 전문가 제프리 루이스 미들버리국제연구소 비확산센터 소장이 공개한 동창리 시험장 영상에는 발사장 주변 넓은 지역의 초목이 화염에 그슬렸다.

미국은 이런 북한의 도발을 미리 감지한 듯하다. 북한의 도발 징후와 커지는 목소리 때문이다. 북한의 어투가 우선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연말 시한부가 다가온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 결심에 달렸다”“미국이 무력을 사용한다면 우리도 신속한 상응 행동을 가할 것” “우리는 더 잃을 게 없다” “트럼프, 망령된 늙다리” 등이다. 이에 대비해 미국은 평소 한반도에 보내지 않던 특수정찰기를 최근 연일 띄우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안보리 이사회를 소집했다. 오늘 열릴 이사회에선 당초 예정된 북한 인권문제 대신 미사일(ICBM) 도발 가능성과 한반도 상황을 논의할 예정이다. 회의 결과에 따라선 북한의 반발로 도발이 더 노골화될 가능성이 크다.

연말 안보 위기가 점증하는데도 정부는 말이 없다. 최근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에도 숨을 죽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국 특수정찰기의 한반도 비행에 국민 불안감이 높아지는데도 청와대 안보실이나 군과 정보당국의 설명은 없다. 북한의 이번 미사일 엔진 연소실험에 대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의 자제 발언뿐이었다. 정 장관은 어제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제4차 한·호주 외교·국방장관회의에서 “(북한은)군사적 긴장 고조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만 말했다. 이제 정부는 희망이 거의 사라진 북한 비핵화에만 매달릴 게 아니다. 엄중한 안보 상황을 먼저 직시하고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명확한 대책도 내놓아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