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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대통령의 ‘가야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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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지역공약에서부터 ‘가야사 연구 복원’을 언급했다. 일본이 가야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 등 역사 왜곡에 맞선 고대사 바로 세우기, 영남·호남·충청에 퍼진 가야 유적 복원 사업을 통한 지역주의 완화 차원이었다. 취임 직후 가야사 연구 복원을 아예 국정과제로 주문했다. ‘가야 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100대 과제’에 포함됐다.

모든 길은 가야사로 통한다? #국정과제 추진 중인 가야사 복원 #부실 전시 등 무리수와 논란만

가야 유적 발굴 사업이 힘을 받고, 지자체들은 예산 따내기 경쟁을 벌였다. 가야를 테마로 한 스토리텔링 공모전도 만들어졌다. 채경진 문화재정책연구원 정책연구팀장에 따르면 “2016~17년 한건도 없었던 가야 문화재 지정은 문재인 정부 들어 5건이나 됐다. 국가지정문화재 조사와 연구 예산도 600%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도 힘을 보탰다. 지난해 11월 인도 방문 때 북부 아요디아의 ‘허왕후 기념공원’ 기공식에 참석했다. 허왕후는 가야의 중심지인 가락국 김수로왕과 결혼한 인도 공주로, 『삼국유사』에 나온다. 실존 인물이란 근거는 불분명하지만 고대 한국과 인도의 교류를 상징한다. 허왕후의 고향이라는 아요디아에는 2002년 우리 가락중앙종친회가 허왕후 탄생비를 세웠다.

그런데 최근 ‘가야 열풍’은 잇단 논란을 양산 중이다. 역사적·학술적 근거가 미약한데 성과를 과장하거나 편승하는 일들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3월 경북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에서 발굴된 대가야 흙방울은, ‘구지가’로 대표되는 김수로왕 건국신화 이야기가 그려진 유물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됐으나 학계는 억지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지난 6월 경남 창원시 현동 유적발굴도 최대 규모라고 부풀렸다가 눈총만 받았다.

보다 최근에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가야본성-칼과 현’이 논란이다. 검증 안 된 논란의 흙방울, ‘설화 속 인물’ 허왕후가 인도에서 가져 왔다는 ‘파사석탑’을 대표 유물로 전시했다. 파사석탑 옆에는 “(수로왕과 허왕후의) 만남은 기록으로 남은 최초의 국제결혼이자 다문화가족의 시작”이란 설명도 달았다. 신화와 역사를 뒤섞은 데다, 5세기 신라 유물(창녕 고분 출토)을 가락 유물로 둔갑시켰다는 학자들의 지적도 나왔다. 국립박물관에 요구되는 엄밀한 고증보다 국정과제 홍보에 힘을 쏟은 ‘코드형 부실 전시’다.

‘가야 사랑’의 시조는 김대중 대통령이다. 2000년 가야 복원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대중에게 가야를 각인시킨 허왕후 스토리는 1980~90년대 집중 부각됐다. 부산외대 인도학부 이광수 교수는 이를 역사적 실체 없이 민족주의·애국심에 기대는 ‘유사역사학’의 하나로 비판한다. 책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를 통해 “고대 한국과 인도의 접촉을 보여주는 삼국유사의 다섯 설화중 오직 허왕후 스토리만이 사실로 받아들여졌는데, 이는 반도 콤플렉스를 벗고 싶어하는 ‘위대한 한민족’ 심리를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책 『유사역사학 비판』의 이문영 씨도 “고대에 한반도와 인도가 교류했다는 주장이 민족주의적 감성을 자극하고, 한민족이 세계사의 주역이었던 것 같은 착시를 제공한다. 중국을 통하지 않고 불교와 차가 들어왔다는 점은 중국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썼다.

애초 고고학계는 가야사 복원에 기대감을 보였다. 잊힌 700년 역사를 되찾자는 의미였다. 그러나 ‘모든 길은 가야로’ 류의 잇단 해프닝들은 입맛이 쓰다. 또 역사 연구가 방향과 목적이 무엇이든 정부 정책에 맞춰 ‘국정과제’로 유도되는 방식도 부적절해 보인다. 게다가 위서 『환단고기』 열풍으로 요약되는 수구 민족주의 유사역사학의 그림자가 여기서도 어른거린다면? 이문영 씨는 “인도에서 허왕후를 띄운 세력은 힌두민족주의 정당(인도국민당)”이라며 오히려 “이들에겐 위대한 힌두의 힘이 한반도에까지 미쳤다는 것이 좋은 선전거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