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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아진 전문투자자 문턱, 증권사 "큰 손 모시기"...디테일 규제 "계륵" 평가도

중앙일보

입력

박모험(가명)씨는 사모펀드 같은 고위험 투자상품에 5억원 이상 투자할만큼 여유 있는 자산가다. 또 증권사 직원들이 금융 상품을 추천할 때, 잘못 설명한 점을 짚어낼 수 있을 정도의 금융지식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증권사에서 고위험 상품에 투자할 때마다 불만이 많다. 각종 제약 요건이 많아서다. 사모펀드는 왜 3억원 이상 투자해야 하고, 선물·옵션에 투자할 때는 사전 교육까지 받아야 하는 지 이해하기 어렵다.

키움·KB증권 전문투자자 등록 업무 시작 #"사모펀드, CFD 관심 투자자 문의 많아" #"자산 증명 서류만 13개...어중간한 정책"

 박모험씨처럼 전문성 있는 큰 손을 잡기위한 증권사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고위험 상품에 손쉽게 투자할 수 있는 개인 전문투자자 진입 기준을 대폭 완화하면서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5~6일 업계 처음으로 전문 투자자 심사·등록 업무를 시작한 키움증권에 230명의 고객이 신청했다. KB증권도 이날 전문투자자 서비스를 개시했고, 삼성증권도 13일부터 관련 업무를 시작한다. 미래에셋대우 등도 서비스 시행을 검토하고 있다.

개인 전문투자자 등록 요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개인 전문투자자 등록 요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증권사들이 개인 전문투자자 심사·등록 서비스에 나서는 것은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21일부터 달라진 전문투자자 등록 요건을 적용하면서부터다.

 이에 따르면 개인 전문투자자 등록을 위한 심사 주체가 금융투자협회에서 증권사로 바뀌었다. 필수 요건은 금융투자상품 잔고 5억원 이상에서 월말평균잔고 5000만원 이상으로 기준이 완화됐다.

 소득 기준은 '직전연도 소득액 1억원' 이상에서 '부부합산 1억5000만원 이상' 조건이 추가됐다. 회계사·변호사 등 전문가도 전문투자자 등록이 가능해졌다. 자산 기준은 총 자산 10억원 이상에서 순자산 5억원 이상(부부합산 거주 부동산 관련 금액은 제외)으로 바뀌었다.

 업계는 사모펀드와 차액결제거래(CFD)에 관심이 있는 투자자들이 개인 전문투자자 등록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개인 전문투자자로 등록되면, 사모펀드 투자시 3억원 이상의 최소 투자금액 조건이 사라진다. 1억~2억원만 있어도 사모펀드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게 된다.

 CFD는 수익률을 최대 10배로 늘릴 수 있고,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어 최근 증권사들이 내놓고 있는 서비스지만 전문 투자자로 등록해야만 가입할 수 있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투자 자산 10억~20억원 보유 고객들이 3억원 이하에서도 자유롭게 사모펀드를 투자하기 위해 전문 투자자 등록 문의를 하고 있다"며 "또 양도세를 줄이기 위해 CFD에 가입하려는 고객들의 문의도 많다"고 전했다.

 다만 업계는 이 서비스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지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이다. 등록 기준이 표면적으로는 완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더 까다로워진 점도 많아진 탓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자산 기준이다. 기존에는 '총' 자산 10억원 이상이었지만, '순'자산 5억원 이상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부부가 거주하는 부동산 관련 금액은 자산에서 제외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존에는 서울에 10억원 이상 집 한채만 있어도 조건에 충족됐는데, 거주 부동산 빼고, 부채까지 뺀 순자산만 따지다보니 오히려 기준이 강화됐다고 느낀다"며 "관련 증명서류만해도 13개나 되다보니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말했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당초 전문성이 있는 개인 투자자에게 투자 문턱을 낮춰준다고 규제 완화를 추진했지만, 해외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등 사모펀드 사고가 터지면서 어중간해졌다"며 "전문 투자자라고 인정해주면서 투자자 보호까지 해주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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