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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안구건조증·결막염 이유로···年1678회 안과 찾은 45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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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의료 쇼핑'이 여전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사진 pixabay]

'의료 쇼핑'이 여전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사진 pixabay]

6일 오전 경기 안양시의 한 정형외과 의원. 머리가 새하얀 할머니 두 명이 진료 대기실에 앉았다. 둘 다 물리치료를 받으러 왔다고 했다. 치료실을 나온 김모(72)씨는 "3년 전부터 무릎 관절염을 앓고 있다"면서 "병원에 오면 나이 지긋한 물리치료 환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김씨는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물리치료를 받는다. 상태가 안 좋으면 두 번 간다. 어떨 때는 한의원에서 침을 맞는다. 김씨는 "물리치료 받으러 가는 게 병원 가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복지관에 마실 가는 것 같다.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치료받을 때는 좋은데, 집에 가면 금세 또 뻐근해진다. 그럴 때마다 물리치료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건보 부실 부추기는 '의료 과소비' #노인들 "물리치료 받으러 의원에…" #작년 1236명 매일 1회 이상 병원행 #건강보험 재정 100억원 넘게 사용 #"무제한 진료 못 하게 규정 바꿔야"

김씨는 한 해에 얼추 70~80번 병원에 간다. 한 번 갈 때마다 2000원도 안 낸다. 김씨는 그나마 병원에 덜 가는 편이다. A(85)씨는 무릎·척추 질환, 각종 근육통에다 망치 발가락(망치처럼 발가락이 구부러짐) 증세가 있어 병원을 달고 산다. 그는 지난해 1277번 동네 의원을 찾았다. 하루 평균 5회(공휴일·일요일 제외)꼴로 병원을 방문해 물리치료나 통증 치료를 받았다. 이뿐 아니라 905일 치 약을 처방받았다. 그는 자녀의 건강보험증에 피부양자로 얹혀있다.

의료 과다 이용 실태 들여다보니.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의료 과다 이용 실태 들여다보니.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복지관이나 안마원 가듯 병·의원을 이용하는, 소위 '의료 쇼핑'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현웅 보건정책연구실장은 최근 서울시립대 건강정책포럼에서 '국민 의료비와 건보재정의 미시적 관리' 방안을 공개했다. 신 박사는 "건보 보장성 강화 정책, 실손보험 가입 증가, 국민소득 향상 등이 결합해 의료 이용량이 급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게다가 큰 병원, 작은 병원 역할이 모호한 점, 의료 행위마다 진료 수가를 인정하는 방식, 의사 선택 정보가 미흡한 점이 비합리적 의료 이용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인만 의료 쇼핑하는 게 아니다. 지난해 최다 병원 이용자는 눈병 환자 B(45)씨다. 안구건조증·급성아토피결막염·표재성 각막염 등을 앓는다. 지난해 1678회 이용했다. 동네 의원 1622회, 중소병원 56회다. 하루 평균 6.8회꼴(공휴일·일요일 제외)이다. 2365일 치 약을 처방받았다. B씨는 2262만원의 진료비를 썼고, 1588만원은 건보에서, 나머지는 본인이 부담했다.

지난해 건강보험 가입자 1236명이 365회 넘게 병·의원을 이용했다. 남성 657명, 여성 579명이다. 여기에는 한의원 방문이 들어있지 않아 이를 넣으면 더 늘어난다. 1인당 평균 820만원의 건보 재정을 사용했다.

보사연은 또 2016년 의료 패널(정해진 대상자를 주기적으로 반복 조사하며 6640가구, 1만8049명)의 의료 과다 이용 실태를 심층 분석했다. 과다 이용 상위 3%(143만명)가 평균 70회(주 평균 3회) 이용했다. 65세 이상 노인이 61%다. 81세 여성 노인은 동네 의원·한의원을 293회 이용했고, 164회 재활치료와 물리치료를 받았다. 노인 진료비 할인 덕분에 414만원 중 49만원을 부담했다.

건보 가입자는 무제한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진료받을 수 있다. [사진 pxhere]

건보 가입자는 무제한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진료받을 수 있다. [사진 pxhere]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는 것일 뿐 병원 가는 게 아닙니다. 물리치료를 받으면 질환이 치료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하루라도 받지 않으면 몸이 뻐근하고 아파요."

한 노인은 보사연 면접 조사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른 노인은 "거의 매일 물리치료 받으러 가요. (병원이 문을 닫는)일요일 하루 안 가면 다리가 뻐근해서 너무 힘들어요"라고 말했다. 신현웅 박사는 이날 포럼에서 "하루에 다섯 군데를 걸어서 물리치료 받으러 가는 사람이 있는데, 아픈 사람 같지 않다"며 "노인들이 복합질환이 있지만 대다수가 물리치료를 받는데, 마사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건보 가입자는 무제한 병원에 갈 수 있다. 2005년까지 365일(약 처방일수 포함)로 제한했으나 이듬해 없어졌다. 다만 의료급여(주로 기초수급자)는 365일(약 처방 포함)로 제한한다. 고혈압·당뇨병 등 11가지 질환은 약 처방일수를 포함하지 않는다. 사전 승인을 받으면 365일 초과 이용할 수 있다. 과다 이용자는 지정된 병원만 이용하도록 제한한다.

신현웅 박사는 "의료급여 환자의 제한 제도를 건강보험에도 도입하고 노인진료비 할인 제도를 손봐야 한다. 물리치료를 무제한 받을 게 아니라 일정 횟수(추나요법은 연간 20회)로 제한하고 필요한 경우 추가로 쓸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은철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급한 질병을 고치기 위해 병원에 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물리치료 등의 이유로 거의 매일 방문하는 건 줄여야 한다"면서 "현재 노인외래정액제(진료비 할인제) 적용 연령을 올려서 환자 부담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주치의처럼 주민 건강을 1차 의료에서 관리ㆍ책임지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제한으로 병원을 이용하는 나라가 거의 없다. 영국 등 상당수는 주치의 같은 의사가 판단해 환자의 의료 이용방식이나 양을 결정한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정종훈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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